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가축이 몇 마리인지 알기 위해 손가락을 사용했습니다. 가축이 많을 때는 손가락만으로는 부족하니 돌멩이나 조가비도 썼을 테지요. 그러나 이것들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흩어지고 바스라져서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요.
다행히 우리는 또 다른 유물을 통해 초기 인류가 수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막대기나 뼈에 새겨진 ‘금(줄)’을 통해서지요. 체코에서 발견된 3만 년 전의 늑대 뼈에는 수를 나타낼 때 새긴 것으로 보이는 금이 남아 있는데요. 첫째 줄에는 25개, 둘째 줄에는 30개의 금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금이 다섯 개씩 한 묶음으로 표시된 건데요. 바로 ‘5의 배수’로 수를 나타낸 것입니다.
--- p.12, 「결정적 질문1」 중에서
현재 쓰고 있는 10진법 숫자는 바로 약 2,000년 전의 인도에서 시작된 거예요. 그런데 인도 숫자가 아라비아로 전해지며 아라비아 번역본으로 전파되었고, 아라비아 번역본은 라틴어로 다시 옮겨져 유럽으로 전해졌어요. 이때 라틴어 번역본에는 아라비아어판이 원전이라고 밝혀져 있었어요. 이것이 우리가 인도 기원의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게 된 이유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 체계가 표준화된 것은 1442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서양 최초로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고 나서랍니다.
--- p.42, 「결정적 질문2」 중에서
셔블 경의 함대는 어느덧 영국 남서부 끝자락,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흩어져 있는 실리제도 부근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심한 안개 탓에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어요. 안개를 뚫고 북상하던 중 그들은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경도를 잘못 계산한 것이었지요. 총사령관은 자신의 해군 경력을 통틀어 최악의 판단 착오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안개 속을 헤매던 몇 시간 전에 한 선원이 다급히 총사령관을 찾아왔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줄곧 함선의 위치를 계산해 보고 있었는데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고 알린 것이었지요. 그런데 당시 영국 해군은 병사들이 본분을 벗어나 항로를 따지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어요. 이러한 규정을 그 선원도 물론 알고 있었고요. 하지만 그의 계산에 따르면 워낙 엄청난 위험이 닥칠 판국이라 목숨을 걸고 장교들에 게 알린 것이었지요.
--- p.87, 「결정적 질문3」 중에서
과학자들이 미적분이라는 새로운 도구로 무장하면서 우리 생활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린 현이 만들어 내는 음악에서 열의 전달에 이르기까지, 팽이의 운동에서 기체와 액체의 흐름까지 모두 미적분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도구는 너무나 강력해서 열전도 현상, 방사성 원소의 붕괴, 바이러스 증식, 건물의 설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자연과학과 공학에서 중요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환율이나 주가 변동, 물가 지수 등 금융시장의 변동을 분석하고 예측할 때도 미분방정식이 활용되고 있답니다.
--- p.125, 「결정적 질문4」 중에서
1927년 영국의 물리학자 패짓 톰슨은 얇은 표적에 음극선을 발사해서 전자가 회절하는 모습을 사진 건판에 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로써 전자의 파동성을 밝혀낸 것이었지요. 조지 패짓 톰슨은 조지프 존 톰슨의 아들이에요. 아버지는 1906년에, 아들은 1937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지요. 그런 데 재미있는 점이 있답니다. 전자를 처음 발견한 조지프 톰슨은 전자가 입자라는 사실을 증명한 반면, 아들인 조지 톰슨은 전자가 파동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거예요. 미시 세계의 입자-파동 이중성은 2대에 걸쳐 노벨상을 안겨 준 것이었지요.
--- p.146, 「결정적 질문5」 중에서
단추나 바늘, 천 등을 팔았던 그라운트는 어느 날 〈사망자 수 보고서〉라는 자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것은 주간 사망자 수를 행정구역별로 집계한 보고서였습니다. 끔찍한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604년부터 런던에서 발행하고 있었지요. 그라운트는 이 보고서의 수치를 이용해 남녀노소의 비율과 수명, 건강, 생식력, 계절, 풍토에 따라 자그마치 63개 항목의 병명을 나열했어요. 그리고 이를 통해 출생 시 남녀성분비가 일정하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명했지요.
(중략) 이러한 그라운트의 연구는 결국 통계학이라는 학문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또한 개인과 집단의 다양한 관계를 다루는 사회학이 그의 연구 덕분에 과학적이고 정량적인 학문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답니다.
--- pp.168~169, 「결정적 질문6」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