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이지 않음의 쓰임
三十輻, 共一?, 當其無, 有車之用. ?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삼십복, 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 선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鑿戶?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착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바로 거기가 비어 있어서 수레가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바로 거기가 비어 있어서 그릇의 쓰임이 있게 된다. 문과 창문을 내어 방을 만드는데, 그 안이 비어 있어서 방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있음’으로써 편리하게 되고, ‘비어 있음’으로써 작용이 가능한 것이다.
※ 장자가 “사람들은 쓸모 있음의 쓰임만 알고 쓸모없음의 쓰임은 모른다(人皆知有用之用, 不知無用之用).”라고 했듯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과 실질을 숭상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쓸모없다고 여기는 텅 빈 공간의 소중함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릇은 비어 있어야 무언가를 담을 수 있고, 집도 빈 공간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실용적인 경영학과 공학 분야에만 집중 투자하면서 기초과학과 인문 예술 분야를 홀대하다 보면 곧 발전의 한계에 봉착하고 불균형 성장을 초래하게 된다. 채움과 비움, 긴장과 이완, 일과 놀이, 쓰임과 쓰이지 않음의 조화가 필요하다.
공원이 없는 아파트 숲은 얼마나 답답한가.
뿌리로 돌아감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靜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정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부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全, 全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전, 전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비움에 이르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히 해라. 만물은 다 함께 자라는데, 나는 그것을 통해 자연의 순환하는 이치를 본다. 만물은 무성하지만, 제각각 자신의 뿌리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일러 정(靜)이라 하는데, 이것을 명(命)으로 되돌아간다고 부른다. 명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늘 그러한 이치(常)라 하고, 늘 그러한 이치를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 늘 그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면 경거망동이 일어난다. 늘 그러한 이치를 알면 포용하게 되고, 포용력이 있으면 공평하게 되며, 공평할 줄 알면 두루 보편적이 된다. 두루 보편적인 것은 하늘에 부합하는 것이며, 하늘에 부합하는 일이 곧 도이다. 도에 맞게 하면 오래갈 수 있으며,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다.
※ 봄에는 나무에 물이 오르고 온갖 꽃이 핀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생명을 하늘로 밀어 올린다. 그러다가 가을에는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모든 잎을 대지에 떨구고 나목으로 겨울을 지낸다. 늦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은 땅을 비옥하게 하고 자기의 뿌리로 돌아간다.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평정함을 유지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생명이 이렇게 순환하는 것, 이것이 도이다.
풍속이 타락하면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대도폐, 유인의, 지혜출, 유대위,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큰 도가 무너지니 인과 의가 강조되고, 지혜가 출현하자 큰 거짓이 생겨나고,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자 효성이나 자애를 강조하고, 국가가 혼란할 때 충신이 있게 된다.
※ 정의가 강조되는 사회는 정의롭지 않고, 공정성이 논의되는 시대는 공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이 민주와 정의를 표방하는 정당을 만들고, 올바른 방법을 취하지 않으니 온갖 꼼수를 쓰게 되고,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져 하극상이 벌어지자 충효를 강조한다. 큰길인 대도를 가지 않으니 문제가 발생하고 일이 꼬이게 된다. 일이 자꾸 꼬이고 풀리지 않으며 결국 원칙과 정도를 생각해서 풀어 나갈 수밖에 없다.
큰 도가 행해지는 세상에서는 효도와 자애라는 말이 사라지고, 인과 의가 강조될 필요가 없다. 이는 마치 해가 뜨면 횃불이 빛을 잃고, 달이 밝으면 별들이 빛을 잃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자연스럽고 겸손하게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以生而不辭, 功成而不名有, 衣養萬物, 而不爲主.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이불명유, 의양만물, 이불위주.
常無欲, 可名於小. 萬物歸焉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상무욕, 가명어소. 만물귀언이불위주, 가명위대. 이기종부자위대, 고능성기대.
큰 도는 범람하는 물과 같아서 왼쪽과 오른쪽에 두루 미친다. 만물이 그것을 의지하여 태어나고 자라지만 어느 것 하나 물리치지 아니하고, 공을 이루되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며, 만물을 양육하면서도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다. 늘 욕심이 없기에 작다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만물이 그 품에 돌아오지만 그것들의 주인 행세를 하지 않기에 크다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그래서 위대함을 이룬다.
※ 성인은 평생 진리를 전파하고 인류를 사랑하면서도 티를 내거나 자취를 남기지 않기에 참으로 위대하다고 칭송받는다. 선을 행하고도 선하다는 마음을 갖지 않고,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더욱 위대한 존재가 된다.
기독교 《성경》에 “낮추면 높아질 것이고, 자기를 높이려고 하면 낮아질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노자도 “도는 두루두루 그 영향을 미치고 편재하지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일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공을 세우고도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만물을 다 길러 내면서도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 자연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스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어디 그러한가.
일한 뒤에는 말이 많아지고, 공을 세우면 자랑하고 싶고, 잘된 자식은 내가 잘 키워서 그렇게 된 것이고, 훌륭한 제자는 내가 잘 가르쳐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