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푸코 작품 약어
머리말 들어가며 미셸 푸코가 다트머스대학에서 행한 두 강연 주체성과 진실(1980년 11월 17일) 그리스도교와 고백(1980년 11월 24일) ‘진실과 주체성’에 관한 토론(1980년 10월 23일) 미셸 푸코와의 대담(1980년 11월 3일) 옮긴이 해제 찾아보기 |
저미셸 푸코
관심작가 알림신청Michel Paul Foucault
미셸 푸코의 다른 상품
역심세광
관심작가 알림신청심세광의 다른 상품
물론 우리가 자연과학의 역사를 연구하고자 한다면 생산 테크닉과 기호학적 테크닉을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는 않더라도 유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 계획은 주체의 인식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저는 다른 테크닉을 배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배 테크닉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성현상의 경험을 연구하면서 저는 어떤 사회가 되었든 간에 모든 사회에는 다른 유형의 테크닉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개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들을 변형시키고 수정하게 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그들 자신의 신체, 영혼, 사유, 품행에 상당수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해서 일정한 완결 상태, 행복의 상태, 순수한 상태, 초자연적인 힘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일련의 테크닉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테크닉들을 ‘자기 테크닉’, 혹은 ‘자기 테크놀로지’라 명명하도록 합시다.
--- p.40∼41 자기 테크놀로지의 장 안에 있는 자기 테크닉들 가운데 자기 자신에 관한 진실을 발견하고 〔공식적으로-옮긴이〕 표명하는 쪽으로 향하는 테크닉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내 인간에 대한 통치에서 사람들은 복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관한 진실을 생산하고 공표해야 하는데 그러한 절차들 가운데 의식 점검과 고백은 가장 중요한 절차라고 생각됩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의 행동 지침에서 시작해, 제가 강연 서두에서 논의했던 뢰레가 추천하는 괴이한 치료법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유구하고 대단히 복잡한 하나의 역사가 존재합니다. --- p.44 이러한 고백과 조언의 실천은 그리스인들이 오랫동안 gnome라 불러왔던 것의 범주 내에 존속하고 있습니다. 그노메는 의지와 인식의 일치를 지시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또한 진실이 강력한 힘 속에서 출현해 사람들의 영혼에 각인되도록 만드는 격언을 지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 혹은 헬레니즘과 로마 철학 내에서 모델로 제시된 이런 유형의 주체는 기원후 1세기와 같이 늦은 시기에 이르기까지 격언적 자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격언적 자기 내에서 진실의 힘 과 의지의 형태가 일체를 이룹니다. --- p.59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제가 방금 언급한 의무들과는 또 다른 진실의 의무를, 그것들과는 매우 다른 형태의 진실의 의무를 요청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범했을 수도 있는 과오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노출된 유혹을 알아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에서 각자는 이러한 것들을 타인들에게 말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자신에 관해 증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p.66 반면 정통 그리스도교의 주된 특징들 중 하나, 그리스도교와 불교 간의 중요한 차이들 중 하나, 그리스도교가 신비주의자들을 불신하는 주된 이유들 중 하나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가장 항구적인 역사적 특징들 중 하나는, 진실 의무의 이 두 체계, 즉 하나는 빛에의 접근과 관련된 체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진실을 밝혀내고 자기 안에서 진실을 발견해내는 것과 관련된 체계가, 루터 이후 개신교에서도 상대적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영혼의 비밀과 신앙의 비밀, 자기를 비추는 빛과 성서를 비추는 빛은 정확하게 동일한 유형의 빛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서로 다른 방법에 호소하며 특유의 테크닉들을 사용합니다. --- p.68∼69 요컨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참회는 늘 자기 자신을 드러낼 의무를 통해 현시되는 생활 방식이었고 또 정확히 말해 엑소몰로게시스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엑소몰로게시스는 징벌과 범죄를 조정하는 정확한 상관관계의 사법적 원칙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엑소몰로게시스는 극적인 과장과 최대한의 연극성이라는 법칙에 따르고 있습니다. 엑소몰로게시스는 또한 언어 표현과 현실 간의 일치에 기초한 진실〔진리〕의 원리도 더 이상 따르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엑소몰로게시스에는 참회를 말로 표현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백도 없고 죄들의 언어적 열거도 없으며 죄들에 대한 분석도 없습니다. 신체적이고 상징적인 표현들만 있습니다. --- p.74 왜냐하면 사탄의 군림 아래서 인간 존재는 자기 자신에 집착하고 있었고, 신으로 향하는 움직임으로서의 구두 표현 행위는 사탄을 포기하는 것,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두 표현 행위는 자기희생입니다. 사유들을 구두로 표현하는 이 항상적이고 철저하며 희생적인 행위에, 수도원 수도사들에게는 의무였던, 항상적이고 철저하며 희생적으로 이 사유를 구두로 표현하는 행위에, 이 항상적인 구두 표현 행위에 희랍 교부들은 엑사고레우시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p.92 먼저 보시다시피 새로운 유형의 자기가 등장합니다. 혹은 적어도 자기 자신과 맺는 새로운 유형의 관계가 등장하죠.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것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의 자기 테크놀로지, 혹은 철학적 자기 테크놀로지가 목표로 삼았던 바는 기억의 형태로 인식의 주체와 의지의 주체를 항상적으로 중첩시킬 수 있고 또 중첩시켜야 하는 자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리스도교 내에서 우리는 훨씬 더 복잡한 자기 테크놀로지의 전개를 보게 됩니다. 이 자기 테크놀로지는 존재의 인식?세계의 인식 혹은 자연의 인식?과 자기 인식 간의 차이를 유지하고 있고, 이 자기 인식은 해석되어야 할 객관적 소여의 장으로서 사유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구체화됩니다. 그리고 해석자의 역할은 사유의 가장 미세한 움직임들을 꾸준히 구두로 표현하는 작업을 통해 수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테크닉과 결부된 그리스도교적 자기를 인식형이상학적 자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 p.94 제게 권력이라는 건 실체, 유체流體, 형이상학적 심급 혹은 그런 유의 어떤 것이 아닙니다. 저는, 권력이 관계들로, 사람들 사이의 힘의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점은 이 관계들이 힘의 순수하고 단순한 관계들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들은 몇몇 원리들에 따라, 일정한 테크닉들, 일정한 대상들, 일정한 전술들 등에 의해 조직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점은, 주어진 한 사회 내에서 이 권력관계들은, 균질하게 분배되거나 되는 대로 분배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타자들에게 작용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자들과 동일한 가능성을 부여하지 않는 일종의 불균형의 경향을 띠고 그런 불균형에 의해 조직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불균형은 전자의 전술적 상황 혹은 전략적 상황이 후자의 그것들과 동일하지 않은 데서 기인하고, 이 불균형을 저는 ‘통치’라고 부르겠습니다. --- p.114 어떤 의미에서 저는 모럴리스트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인간 실존의 임무들 가운데 하나, 의미들 가운데 하나?인간의 자유는 이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는 그 어떤 것도 결정적인 것, 건드릴 수 없는 것, 자명한 것, 부동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결정적이고 비인간적인 법을 부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어나 저항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이 모든 형태의 권력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이해되는 통치라는 유형의 권력, 어떤 사회집단이 다른 사회집단에 행사하는 그런 유형의 권력으로 이해되는 권력이 아니라 말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현실, 진실, 선으로 부여된 것을 그야말로 부동하는 것으로 만들고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모든 것을 ‘권력’이라 명명합니다. --- p.142 |
현대 주체와 자기 해석학의 계보를 추적한 명저
다트머스대학에서 행한 이 푸코의 강연이 제기하는 문제는 “현대 주체의 계보학”이다. 그러므로 “주체 철학”과는 반대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주체의 계보학”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선 주체가 보편적이거나 시간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기라는 것, 그리고 현대의 주체도 이런 유형의 자기이고 이 자기는 구축된 것이라는 사실, 외부로부터 이 주체를 구축시키는 규범들 간의 관계,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작업을 가하는 자기 실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여기서는 중요하다. 그런데 현대의 주체화가 갖는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진실과 맺는 관계, 더 정확히 말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 말하기, 자기해석학, 성공적인 주체화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자기 욕망에 대한 진실 말하기의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이다. 언제 그리고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 말하기가 고안된 것일까? 더 나아가 어떤 계기로 이러한 개별적 주체화와 권력의 전략들 간의 관계가 형성되게 되는 것일까? 왜냐하면 진실과의 관계는 고대부터 주체화 실천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 진실과의 관계는 고대의 주체화에 개입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탄생과 더불어서도 주체화에 개입하고 오늘날의 주체화에도 여전히 개입한다. 하지만 동일한 방식으로 개입하지는 않는다. 자기 점검과 고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이 두 강연에서 푸코는 현대의 자기해석학이 영혼의 지도라는 그리스도교의 자기 테크놀로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소크라테스의 자기 인식과 현대의 주체성 간에 연속성을 설정하는 것은 오류라고 주장한다. 이 강연에서 푸코는 고대의 자기 돌봄 혹은 자기 배려와, 4-5세기 그리스도교 영성이 정착시킨 주체의 해석학을 가르는 차이와 거리를 명확히 해명하고, 그리스도교 자기해석학의 핵심을 이루는 의식 점검과 고백이 현대 주체의 계보의 두 중요한 근간이라고 주장한다. 푸코는 첫 번째 강연 〈주체성과 진실〉에서 자기 테크놀로지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자기 점검과 고백을 다룬다. 푸코는 이 두 테크닉을 역사 속에 위치시키고, 그리스-로마의 자기 인식의 계율이 “당신의 영적 인도자에게 당신의 모든 생각을 고백하라”는 수도원의 계율로 변화된 것, 요컨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발생한 변화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푸코가 보기에 이 변환은 현대 주체성의 계보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 변환에 의해 자기해석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강연에서 푸코는 「분노에 관하여」에서 세네카가 자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분석하고, 「평상심에 관하여」에서 드러난 세레누스의 고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기 점검과 고백이 헬레니즘 시대와 제정 시대 철학에도 존재했지만 이것들이 자기의 해석학적 분석으로 귀착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고대에 이 자기 테크닉들은 그것들이 지향하는 목적인 자기 제어를 위해 사용되었고, 스승과의 상황적이거나 일시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체계화되었기 때문이다. 즉 개인으로서는 자기에 관한 분석적 탐험을 시작할 필요도, 자기의 내밀한 진실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일 필요도 전혀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강연 「그리스도교와 고백」은 엑소몰로게시와 엑사고레우시스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그리스도교의 참회 의식들과 수도원 제도들에서의 의식 지도에 대해 분석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엑사고레우시스라는 특별한 테크놀로지다. 죄인은 영적 지도자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들을, 말을 통해 상세하고 분석적으로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 그것도 영적 지도자의 의지에 완전히 복종하는 관계 내에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이 테크놀로지는 함축하고 있다. 즉 복종의 원칙에 따라 고백을 통해 항상적으로 복종하는 관계와 자기 의지의 항상적 포기나 자기희생의 결과를 낳는다. 특히 자기 점검의 대상은 행위가 아니라 사유가 된다. 푸코에 따르면 말로 표현하는 이 철저한 고백은 자기와 자기 자신의 사유의 항상적 점검과 결합해 주체 구축 차원에서 중대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한편 자기 포기와 자기희생은 자기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조건인 동시에 자기 발견의 결과이기도 하다.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긴장 속에서 구축된 자기와의 관계가 “인식형이상학적 자기”를 규정한다. 이 인식형이상학적 자기는 자기 분석, 자기의 언어화가 그 자신에게 폭로하는 바들의 항상적 해석의 결과물이 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자기는 실천과 행동의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구축하고 변형시키는 자기 실천의 대상이었다. 진실을 주체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주체의 해석학, 수도원의 고백 모델과 더불어 서구는 진실의 주체화를 건너뛰는 자기 실천으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서구는 자기 진실의 고백을 통해 복종을 목표로 하는 주체의 대상화를 거치는 자기 실천의 단계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오늘날 현대 주체의 존재 방식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의 진실을 고백하는 실천, 자기의 해석학적 고백은 현대인의 복종의 근본적인 형식으로 자리잡고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푸코의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