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6월 05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28쪽 | 366g | 135*193*17mm |
ISBN13 | 9788960907423 |
ISBN10 | 8960907421 |
발행일 | 2022년 06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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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28쪽 | 366g | 135*193*17mm |
ISBN13 | 9788960907423 |
ISBN10 | 8960907421 |
MD 한마디
[김소연 시인의 가족과 시에 관한 단상들] “나는 엄마를 오래 싫어했다.” 김소연 시인의 신작 산문집의 고백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년시절의 추억부터 엄마와의 일화, 시 쓰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적어냈다. 시인만이 포착할 수 있는 풍경, 자신의 업에 관한 진지한 성찰들을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에세이. - 김유리 에세이 MD
책머리에 1 엄마를 끝낸 엄마 2 입이 있다는 것 경주시 천군동 적산가옥 등 돌림 걸어서 그곳에 가기 조금 다르기 손전등을 비추며 걷던 밤 장소애場所愛, topophilia 간극의 비루함 속에서 기도를 잠시 멎게 하기 나를 애태우는 ‘무’ 빵과 너 실수가 찬란해지는 일 쓴도쿠와 쓴도쿠의 반대말 한결 같은 무능 모든 이의 시점 3 덧없는 환희 4 막연漠然함에 대하여 아등바등의 다음 스텝 소리하지 않는 바위 피부 뜯기 어금니를 깨무는 일 내가 시인이라면 어깃장의 시간들 얻기 2030년 1월 1일 화요일 맑음 내일은 무얼 할까 나무젓가락과 목각 인형 평화롭게 5 편지 두 상자 |
글쓰기만 생각하는 시인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이라는 부재가 붙은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 EBS 윤고은의 북카페 금요일 프로그램에 김상혁 시인과 함께 출연해 시와 산문, 소설 등에서 문장을 골라 읽으며 글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털어놓는 재간둥이 김소연 시인을 오래전부터 좋아했었다.
방송 시간에 시에 대해,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게 사유를 펼치는 진중하고 심지 곧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부분들을 책 속에서 발견하게 될 때, 역시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내내 안심이 되고 듬직했다.
시인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시 쓰기를 생각하는 모습들이 좋아서 닮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몰입해서 밤새워 읽었는데 별수 없이 시인의 아픔과 함께라서 읽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 귀하고 존경스러웠다. 엄마에 대한 사유는 조금 복잡했는데 애증의 관계란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큰딸로서 엄마의 마지막을 살뜰히 보살피는 모습을 볼 때,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시절이라 설움이 많았다. 엄마를 사랑하고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문구들이나 사유들이 많아서 연필로 줄을 긋는 부분과 중요해서 페이지를 접게 되는 부분도 많았다. 나누어진 부분별 뚜렷한 특징은 없이 그가 글을 쓰는 작가이기에 대부분 글쓰기에 대한 글들이라고 생각되었다.
1부 엄마를 끝낸 엄마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착취하는 사람이었고, 오빠보다 뒤에 서 있기를 지나치게 종용해온 억압의 주체였다” 어머니와의 애증의 관계와 마지막 그 후의 화해의 사유들이 적혀 있다.
2부 입이 있다는 것 외 14편의 에세이 : 일상과 이어진 글쓰기에 대하여
3부 덧없는 환희
온통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쉼보르스카가 모두에게 말을 걸 때에는 누군가가 제외되는 일이 없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도. 시에 관심 없는 사람도. 시를 폄하하는 사람마저도. 쉼보르스카는 시 속에 담는다. 모두를 위한 시를 쓰기 때문에 쉼보르스카는 거기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여기에 나타나는 느낌을 준다. 내가 쉼보르스카를 좋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말이 김소연 시인이 글쓰기를 할 때의 마음가짐임을 보여주고 있다.
4부 막연함에 대하여 외 11편의 에세이 : 책과 영화 등에서 이어진 글쓰기에 대하여
「조금 다르기」에서 “나는 언젠가부터 조금 다른 나의 의견과 일상과 나만의 발견은 그건 공간에 전시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들, 조금다른 각자의 의견은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고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알리는 듯하지만, 그만큼 각자의 삘은 비대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나도 비밀로 하고 싶은 것이 점점 많아져 간다.” 각종 SNS나 매체 등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랑삼아 드러내고 있지만, 어쩌면 자신의 뚜렷한 의견이나 속깊은 진실들은 말하지 않고 조용한 비밀이 되어 더 외로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장소애場所愛,topophilia」에서 “장소에 대한 뒤늦은 나의 애착은 좋은 장소를 갈망하고 그곳에 나를 두기를 욕망하는 것과 반대 방향에 있다. 좋은 장소가 아니라 문제적 장소, 헐벗은 장소, 사람들의 세간살림이 뻔히 들여다보이고 식구들의 양말과 티셔츠를 쪼르륵 내다 넌 빨래가 깃발처럼 펄럭이는 장소에 나의 애착이 가닿는다”고 했다. 그런 자리를 시의 장소라고 믿고 있고 머물고 싶다고 쓰고 있다. 그런 장소들이야말로 그가 시를 찾고 시를 쓰는 목적인 듯하다.
「간극의 비루함 속에서」에서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 문장이 아니라 맥락이, 맥락이 아니라 노래 비슷한 것이, 노래가 아니라 울먹임이, 울먹임이 아니라 불꽃이, 불꽃이 아니라 잿더미가 비로소 백지 위에 하얗게 쌓인다. 시는 온갖 실패를 겪어가며 끝장을 본, 한 줌 재인 샘이다”라고 시를 쓰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여 그 불꽃같이 타오른 생각이 한 줌 재로 남을 때 비로소 시가 된다는 그의 글쓰기의 자세가 존경스럽다.
시집 전체에 낮은 어조로 조곤조곤 적어내는 내용들은 왠지 눈물을 머금은 듯 촉촉한 느낌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참고 있는 느낌이다. 생각조차도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할 것 같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 또한 조심하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의미 있는 글을 쓰고자 고민하는 흔적이 가득해서 배워나가고자 한다.
조만간 나에게도 이와 같은 시간이 오겠지? 가슴이 먹먹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믿기지 않고 상상 또한 하고 싶지 않아 더더욱 그랬던 듯하다. 온전히 홀로 서기를 해야 될 시기. 엄마 아빠 누구도 목 놓아 부를 수 없게 될 그 날. 죽음에 심히 매달릴 필요는 없지만 나는 두렵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데, 함께할 수 있는 나날들이 나에게는 얼마나 남았을지 차마 묻고 싶지조차 않다. 초반에 만난 저자의 글이 나를 이와 같은 생각으로 이끌어 준 측면도 있다.
여기 모인 글들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시간 속에서 썼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하여 한자리에 오래 웅크려 있었다. 자주 지쳤고 쉽게 엉망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열렬히 지키고 싶어 했다. 균형을 찾기 위해 자주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은 이를 악물고 가장 열심히 산 시간이라는 것을, 여기 모인 글들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인내심이 자애로움으로 변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요원한 줄로만 알았던 회복이 내 주변에 도착해 있다는 것도 지금은 알 수 있다. 회복을 갈망해온 울퉁불퉁한 시간을 이 책의 목차로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 -P8~9
모두가 속도 내어 달린다. 나 또한 열심으로 레이스에 임한다. 뛰어나지 못해 제저리걸음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로지 나만 뒤쳐지는 이상한 나날들이 불안과 우울을 초래한다. 그 때마다 저자는 글을 썼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난 울었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무기력에 짓눌려서, 숨이 막혀서.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감정, 늘 내 주위를 맴돌던 실체 모를 두려움이 엄습하는 걸 느꼈다. 동시에 안도했다. 오로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위로,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담담했다. 충분히 나이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연령대가 과연 존재하는가 의문은 들지만, 차츰 저자를 잊어가던 엄마가 그에게 선사한 아픔은 결코 작지 않아 보였다. 20년도 더 전에 사망한 아들만은 영특할 정도로 또렷이 기억하면서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딸은 왜 알아채지 못하는지. 섭섭함은 내 것이 아님에도 내 안에서 몸집을 불렸다. 왠지 성장 과정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 모른다며 저자의 나날을 내 멋대로 상상했다.
기억이라 하는 것은 오묘해서 아찔한 순간조차도 아름답게 변모시킨다. 동생의 머리카락을 맘껏 잘라낸 오빠를 향한 감정은 미움으로 채 영글기 전에 의기양양함이 돼 저자의 어깨에 힘을 부여한다. 좀 더 소리 내어 울고 전적으로 타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기억 속 살아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 하나뿐임에도 저자는 슬퍼하기 보다 살포시 미소를 머금는다. 뚜렷하진 않아도 지난날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혼자라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있는 모양이다. 막연했는데, 저자의 경험이 왠지 모를 위안이 되어 나를 감싼다. 꼭 어금니 꽉 깨물고, 억지로 견디려 안간힘을 쏟지 않아도 살아지는 게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금니를 바득바득 갈아가며 누군가를 인내하려고 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가장 큰 애정’(P166)이라는 저자의, 정확히는 도시로 내려온 숲속의 고라니 같은 표정의 최승자 시인이 했다는 말에 대한 믿음이 내 안에 일었다.
무언가 꽉 참는 그런 것이 연상되었다. 나도 마침,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불만에 가득 차 있거나, 힘든 상황에서 어금니로 인내하고 있는 그런 상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런 마음이어서 이 책을 고르고 샀겠지만 이미 읽고 있던 책이 있었기 때문에 사자마자 바로 읽지는 못했고, 책을 살 때의 감정이나 정서가 이미 희석되어 버린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 책은, 어금니를 꽉 깨무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잘한 이야기 가운데 딱 한 번, 어금니 깨물기,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그 부분도 내가 생각했던 그런 이미지와는 조금 결이 다르게 다가왔다.
책 표지가 주는 느낌이 있다, 어머니와 딸이 바닷가 해변에서 찍은 사진이 바로 그것인데, 이 사진이 책 제목을 희석시킨다. 뭔가 제목과 맞지 않아 보이는 사진인 것이다.
실제 책의 저자와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데, 이 책은 그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어쩌면 저자가 어린 시절, 그렇게 원망하고 싫어했던 어머니를 마주하는, 어머니를 다시 소환하는, 어머니에게 헌사하는 그런 책이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뭔가 거창한 은혜 보답이나 감사함 그런 것들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엄마를 오래 싫어했다." (15쪽)
첫 문장이다.
엄마에 대한 헌사치고는 고약하다. 평소 김소연 시인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첫 문장이 주는 놀라움은 바로 작가가 이 글을 쓰는 자세임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모든 감정이 담담하게 그리고 거짓없이 이 책에서 글로 채색된다.
나 역시, 엄마를 오래 싫어했기에, 나는 이 첫 문장에서 단박에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용기가 너무 가상했고, 이렇게 글로 풀어낸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엄마에 대한 나의 감정은, 지금은 밝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는 가족들에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 감정은 다 사라졌다.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만 기도할 뿐이다.
아마 작가도 그런 마음이 된 것 같다. 엄마가 엄마이기를 끝내고, 어린아이로 돌아가버린, 그래서 '엄마를 끝낸 엄마'를 요양원에서 마주하는 작가는, 이제 엄마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즈음부터 나도 엄마에 대한 오랜 감정을 잊어버리기로 작정했다. 엄마는 엄마를 끝낸 사람처럼 존재하고 있는데, 나 혼자 엄마를 엄마로 기억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였다." (16쪽)
내 엄마도 그렇다. 얼마 전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추석 지나면 엄마를 데리고 치매검진을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지난 주 전화했을 때, 이사하느라고 전화가 늦었냐는 말을 들었을 때, 뭔가가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사는 올 1월에 했고, 이사한다고 작년부터 얘기했고, 이사하는 날 이사 잘했다고 했고, 이사 잘했냐고 물었고, 그때가 벌써 7개월이 지나, 새집에서 잘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뜬금없이 이사하느라고 전화가 늦었다고 물어보니, 사실 그때 가슴이 철렁했다.
작가에게도 이제 예전 엄마는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작가는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엄마는 울기 시작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웃고 농담하면 그제야 울음을 지우고 웃었다. 엄마는 엄마를 끝내고 나의 자식이 되어 유리 벽 너머에 앉아 있었다. (24쪽)
글은, 이야기는, 작가의 사유를 따라 이리저리 방랑을 한다. 진짜 어금니 깨무는 이야기도 나오고, 우주가 아무 것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는 nothong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쏟아지는 sns의 다양한 지리적 장소에서의 동시적인 글과 사진으로 인해 작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작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에게 손편지를 쓴다. 몇 년에 걸쳐 구애편지를 쓴 아빠의 편지를 받고, 단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던 엄마는 여전히 작가의 편지를 요양원에서 받고도 한 번의 답장을 하지 않는다. 대신 아빠의 모든 구애편지를 보관했던 것처럼, 정신없는 와중에도 딸의 편지를 고이 간직한다.
또, 나는 책을 통해 '쉼보르스카'라는 작가도 알게 된다. 그녀는 말한다. 쉼보르스카 시인은, 누구에게 말을 거는 듯한 시를 쓴다고. 그래서 나도 쉼보르스카의 시를 만나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쉼보르스카는 쓰기를 말하기와 겹쳐서 말한다. 시를 대화를 위한 입술처럼 사용하는 듯하다. 말을 건네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쉼보르스카에겐 있다고 느끼게 된다." (130쪽)
시를 입술처럼 사용한다,는 저 표현은 가히 절창이다. 시보다 더 시다운 표현이라, 내 감정이 얼얼해진다.
작가는 걷기를 발견하고 이제는 뛰기까지 할 모양이다. 덥다는 핑계로 걷기마저 고양이 걸음을 하는 내게, 그런 한두 문장도 자극이 되었다.
"걷는 일이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일이었다면, 달리는 일은 육체를 흔들어 깨우는 일이었다." (182쪽)
책 앞 표지 안쪽에, 김종삼 시인의 "평화롭게" 한 구절이 작가 사인처럼 박혀 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평화롭게, 김종삼)
책을 다 읽고 나면,
김소연 작가에게 멍한 상태로 빠져들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배치된 김종삼의 시로 인해, 시멍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 책은 읽는 내내, 그 평화로움이 온 전신을, 온 영혼을 감싸, 따사롭게 독서를 하게 한다.
책을 읽고 있지만, 내 영혼은 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책이다. 평화로운 책이다.
그녀의 다른 책들도, 시집들도 모두 읽고 싶어진다. 계속 그녀의 글로 평화롭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