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이민화의 큰누나가 전하는 말이다. 어릴 적 이민화는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는 아이였다. 위인전이나 영웅담에서 흔히 나오는 ‘싹이 남달랐다’거나 ‘동네 아이들을 이끌고 골목을 누볐다.’ 같은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도전과 혁신의 DNA를 심다」중에서
이민화는 진로를 전자공학으로 바꿀 때까지도 전자공학이 무언지 몰랐다고 한다. 당시 전자공학과는 의대보다 입학이 어려웠으며 대부분의 수석 합격자는 전자공학과에서 배출되었다. 훗날 그들이 한국 IT산업을 이끈다. 과정이야 어떠했든 이민화는 고3 때 이과로 전과한 덕에 문과와 이과 친구들 모두와 교류할 수 있었다. 고교 동창은 주로 문과고 대학 동기들은 이과다. 양쪽을 넘나든 교류는 훗날 메디슨을 일구고 이끌어가는 자산이 된다.
---「도전과 혁신의 DNA를 심다」중에서
신화(神話)의 시작이 늘 거창한 건 아니다. 산속의 작은 옹달샘이 넘쳐흘러 내가 되고 그 내들이 합쳐 도도한 강을 이루고 끝내 바다에 이르듯, 거대한 역사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훗날 세계적인 의료기 업체로 성장하는 메디슨의 출발도 ‘거창’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농담처럼 창업한 작은 기업 하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진 것이었다. 그 중심에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이민화가 있었다.
---「메디슨 그 빛과 그림자」중에서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토지, 물, 공기 등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기업 역시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금 외에도 시장, 기술, 인력, 환경 등 여러 조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민화가 이끄는 벤처기업협회는 이런 요소를 갖추기 위해서는 법적 뒷받침이 필수 요건이라고 판단했다. “벤처기업을 위한 법을 따로 만들지 않아도 중소기업지원법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벤처는 일반 중소기업과 다르다. 벤처만의 기술과 인력을 위한 한계의 극복이 절실했고, 이를 위해 벤처기업특별법이 필요했다.
---「대한민국 벤처신화를 이끌다」중에서
직선적 성격에다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높은 사람이라도 양보하지 않았으니 좋은 소리만 나올 리 없었다. 물른 이민화가 개인을 위해 싸운 게 아니라는 사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보다 집단을 위해, 나라 경제를 위해, 벤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상대방대로 지켜야 할 게 있었을 테니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얻는 부정적 평가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면 ‘쌈닭’ 정도의 별명은 피할 길이 없다.
---「남겨진 숙제#1 단호한 쌈닭」중에서
오래전부터 이민화의 머릿속에는 세계지도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몸이 대한민국에 머물러 있을 때도 머리 한쪽은 끊임없이 그 지도에 있는 길을 누비고 다녔다. 그는 ‘세계화로 가는 길’이라는 화두를 놓은 적이 없었다. 틈만 나면 “기업이 세계화 구축을 완료하면 전 세계 영업망을 바탕으로 기술혁신이 가속화되고, 전 세계 서비스망을 바탕으로 고객의 문제가 파악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나라 위한 씨앗을 뿌리다」중에서
이민화는 실험적인 수업방식을 시도했는데, 예를 들면 강의 시간에 페이스북 화면을 띄워놓고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하나하나 답변했다. 학생 개개의 니즈(needs)에 부합할 수 있도록 맞춤 수업을 한 것이었다. 아울러 조교가 강의 내용 중 콘텐츠 관련 정보 등을 검색해서 학생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방식을 취했다.
---「교육에서 미래를 캐다」중에서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이유는 벤처기업, 혁신기업, 중소기업의 협업으로 가능했다고 본다. 이것은 일본에 없는 것이다. 일본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기업 비중은 크겠지만 디지털산업에서는 굉장히 뒤떨어진다. 그것은 이민화 같은 혁신 벤처기업가가 일본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재 한 명만 있더라도 세상이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에게 이민화 회장님의 대체재가 없는 한 그분의 열정이라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
---「남겨진 숙제#2 정부 3.0시대」중에서
창조경제연구회는 비영리 기구였지만 스스로 세운 미션은 국가혁신이었다. 국가혁신을 위해서 정책을 연구하고, 사회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하고, 대안으로 기술을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 정책이 어떻게 보완돼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민화가 그리는 그림은 우리 미래의 모습이었다. 한국경제가 급격히 성장할 수 있던 배경은 인구증가에 있었는데, 인구증가는 곧 노동력의 증가이며 경제 볼륨이 커질 수 있는 기회였다.
---「시대, 그 너머를 밝히다」중에서
이민화가 백수가 되면서 아내는 날마다 함께 하는 유일한 ‘절친’이 됐다. 메디슨에서 일할 때는 골프장 근처에도 가볼 기회가 없었는데, 일이 없어지면서 골프를 배우고 아내와 골프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민화로서는 거의 신천지였을 것이다. 그때의 심정을 “세상에 이런 삶도 있었구나”하고 기록할 정도였다. 운동할 시간도 생겼고 책 읽을 시간도 많아졌으니, 이민화로서는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절이었다.
---「이민화 뒤의 이민화」중에서
세상은 가만히 있으면 발전하지 않는다. 미래를 만들고 도전하고 시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발전해 왔다. 이민화 교수님은 그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고자 했다. 이 책을 통해 미래를 그리고, 현재를 발전시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싶다. (문건기 해치랩스·한국디지털에셋 대표이사)
---「남겨진 사람들_후배들 인터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