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를 좋은 것, 지속가능을 위해 필요한 것 같은 식의 두루뭉술하거나 추상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이해는 아마추어적이다. 비즈니스에선 버려야 할 태도다. 비재무적 지표에 해당하는 ESG가 궁극에는 경영 성과와 재무적 지표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돈이 되는 ESG, 구체적이고 계산적인 ESG, 냉정하고 실행 중심의 ESG여야 한다. 더 이상 구호로 외치는, 감상적이고 정치적인 ESG는 그만 해야 한다. 이제 ESG의 진화가 필요하고, ESG 2.0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이제 한국 기업에겐 착한 ESG가 아니라 합리적 ESG가 필요하다. 방어적 ESG가 아니라 공격적 ESG가 필요하다. 더 이상 따라가기만 하지 말고 선도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결국 ESG를 통한 비즈니스 전환에 성공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가 결정할 것이다.
--- p.20-21
요즘 기업들의 가장 관심사이자 핵심 과제인 ESG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연결된 화두다. 아울러 젠더, 다양성 이슈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 또한 페미니즘이나 단순한 당위성이 아니라 비즈니스 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이슈들이다. 부정적 리스크를 줄이거나, 사회적인 기여와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 ESG 1.0에서의 접근이었다면, ESG 2.0에선 모든 ESG 화두가 비즈니스 성과와 연결되어 접근되어야 한다. 더 이상 선의가 아니라 비즈니스로서 ESG 경영을 시작해야 한다.
--- p.83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ockRock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의 별명은 월스트리트의 해결사다. (중략) 매년 1월에 발표하는 래리 핑크의 CEO 연례서한은 투자기관과 글로벌 기업 모두가 주목한다. 2020년 1월의 CEO 연례서한에서 기후변화 리스크가 곧 투자 리스크라며,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런 메시지는 글로벌 기업에겐 경고이자 압박이 된다. 블랙록에서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기업으로서도 긍정적이다. 반대로 블랙록에서 투자를 받았다가 철회된다는 것은 기업에겐 부정적인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기점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탄소감축 목표를 발표하고, ESG 경영이 전 세계적 화두가 되고, ESG 투자 열풍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CEO 연례서한은 금융의 근본적인 재편, 곧 금융자본의 방향성에서 ESG를 강조하고 있다.
--- p.125-126
ESG 2.0에 대한 국내 기업의 관심이 더 커져야 할 시점이다. 블랙록은 국내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등 주요 대기업을 비롯해 금융지주사들의 대주주다. 국내 기업 중 블랙록이 2~4대 주주로 있는 기업만 80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ESG에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블랙록이 국내 기업에도 ESG 경영에 대한 구체적 요구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ESG 워싱과 쇼잉으로 소극적인 활동을 하는 기업에 경고와 압박을 하는 건 당연해진다.
--- p.128
CSR, 워라밸, ESG의 공통점은 바로 자본주의다. 그리고 영국이다. 등장 순서로 보면 CSR, 워라밸, ESG 순서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ies,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개념이 태동한 건 18세기 영국이다. 근대적 기업의 형태가 등장한 시기이고,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에 대해 경영자들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다. 18~19세기 노동자들의 주거환경과 교육, 의료, 위생은 열악했다. 노동자들은 문맹이 많았고, 병에 걸리는 경우도 많았고, 병에 걸려 무단결근하거나 전염병이 돌아 생산이 중단되는 일도 많았다. 결국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내에 병원을 만들고, 직원주택을 건설해 주거환경을 개선했고, 숙련된 노동자를 경쟁사에 뺏기지 않으려고 임금을 올려주고, 직원과 직원 가족 전용의 학교와 체육시설 등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CSR인 셈이다. 엄밀히는 노동자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다. 노동생산성을 위해서,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다. 영국은 산업혁명 후 노동조합 운동이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라는 것도 CSR 태동과 무관하지 않다.
--- p.184-185
2022년 3월 25일 SK텔레콤 정기 주주총회에서 유영상 사장은 “ESG 경영이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주요 경영 현안이다. 본업과 연계한 ESG 2.0 활동으로 고객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다”라고 했다. 국내 기업 중 ESG에 가장 선제적으로 접근한 SK그룹에서 ESG 2.0이란 화두가 제시된 것이다. 특히 본업과 연계된 ESG 2.0 활동이란 말은, ESG를 비즈니스 모델로 인식하고 비즈니스로 전환하는 단계에 진입하겠다는 경영 전략을 의미한다. ESG 전략이 ESG 1.0에서 ESG 2.0으로 진화한다는 선언인 것이다.
--- p.215
탄소배출권(Carbon Credit)은 새로운 탄소감소에 기여한 기업에 주는 인센티브다. 기준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탄소배출권을 확보해서 파는 기업은 수입이 생기고, 탄소배출권을 사야 하는 기업은 지출이 생길 수밖에 없다. 테슬라가 전기차를 팔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처음 흑자를 낸 건 2020년이다. 매출액 315억 3,600만 달러에 순이익 7억 2,100만 달러였다. 전기차 50만 대를 팔았지만, 흑자의 원동력을 탄소배출권이라고 해도 비약이 아니다. 전기차를 만들어서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다른 자동차 업체에 팔아 15억 8,000만 달러를 벌었다. 탄소배출권 수입이 없었다면 첫 흑자를 2020년이 아닌 2021년으로 미뤘어야 했다. 테슬라에 탄소배출권은 좋은 수익원이다.
--- p.233
마이크로소프트는 핀란드에서 특별한 난방 발전을 위해 설비투자를 한다. 청정에너지 생산업체 포툼(Fortum)과 협력하는 프로젝트인데 2억 유로가 투입된다.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센터를 활용한 난방이다. 데이터센터는 서버에서 열이 많이 발생하기에 냉각이 필수다. 그런데 이 열을 단열 파이프 시스템과 연결해 헬싱키와 주변 지역의 난방으로 쓰는 프로젝트다. 핀란드는 화석연료에 의존해 지역난방을 주로 하는데, 이를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열로 일부 대체하여 연간 40만 톤의 탄소배출 절감이 예상된다고 한다. IT 서비스가 계속 확대될수록 클라우드 컴퓨팅을 위한 데이터센터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오는 열을 난방으로 활용하는 것은 전 세계로 확대할 일이다. 아울러 데이터센터 서버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도 계속 개선되어야 한다.
--- p.246
현대백화점은 업계 최초로 재생용지로 쇼핑백을 만들었다. 백화점 쇼핑백은 브랜드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주요 도구 중 하나다. 명품과 고급 이미지가 강한 백화점에서 쇼핑백은 아주 공들여 고급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현대백화점은 기존 고급용지를 대신해 100% 재생용지로 쇼핑백을 만들고, 사용 후 재활용을 고려해 코팅이나 은박 등 일체의 추가 가공을 하지 않았다. 현대백화점은 연간 800만 장 정도의 쇼핑백을 사용하는데, 재생용지로 대체하면서 나무 약 1만 3,200그루(약 2,000톤)를 보호하고, 약 3,300톤의 CO2 배출을 절감한다. 솔직히 삼성전자의 폐어망 재활용보다는 현대백화점의 재생용지 쇼핑백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 p.304
그린 워싱이 친환경 활동을 부풀리거나 속이는 것이라면, 워크 워싱(Woke Washing)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깨어 있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거나 오히려 내로남불의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빅테크들이 젠더 다양성이나 인종, 노동, 환경, 차별, 동물윤리 등의 문제에선 깨어 있는 척, 진보적 행동과 메시지를 말하지만 세금 회피라는 측면을 보면 이들의 사회적 메시지가 얼마나 이중적이고 가증스러웠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SG가 확산되는 초반에는 E 중심으로만 활동했다면, 이제 ESG 2.0 단계로 진입하면서 S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기업들로선 이제 E, S, G 모두에서 질적 개선이 필요하다.
--- p.354-355
기후위기가 심각한 위기가 되었고, 넷제로는 전 세계적 과제가 되었고, 사회적 책임과 노동, 인권, 다양성에 대한 요구는 더 커졌다. 기업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기 위해서라도 ESG는 필요하고, ESG의 진화가 결국 답이다. 당연히 리더도, 리더십도 진화해야 한다. 변화에 민감하고, 과감하게 결단하는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ESG 2.0 시대에는 트렌드와 미래에 더 민감한 리더가 필요하다.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보고, 더 깊은 인사이트를 가질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 p.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