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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책소개

목차

제1수 독록편(獨?篇)
제2수 높은 산에 올라 먼바다를 바라보네(登高丘而望遠海)
제3수 따뜻한 봄의 노래(陽春歌)
제4수 양반아(楊叛兒)
제5수 제비 한 쌍의 이별(雙燕離)
제6수 산사람이 술을 권하다(山人勸酒)
제7수 우전에서 꽃을 따며(于?採花)
제8수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을 한탄하는 노래(鞠歌行)
제9수 그윽한 골짜기의 샘물(幽澗泉)
제10수 왕소군. 첫째 수(王昭君 其一)
제11수 왕소군. 둘째 수(王昭君 其二)
제12수 중산왕 유자첩의 노래(中山孺子妾歌)
제13수 형주의 노래(荊州歌)
제14수 벽사 놀이 공연의 고취곡 <치자반> 곡사(設?邪伎鼓吹雉子班曲辭)
제15수 만남의 노래(相逢行)
제16수 옛날에 그리워하는 이 있어(古有所思)
제17수 오랜 이별(久別離)
제18수 연밥 따며 부르는 노래(採蓮曲)
제19수 백발의 노래 두 수(白頭吟 二首)
제20수 백발의 노래. 둘째 수(白頭吟 其二)
제21수 임강왕과 강개한 선비의 노래(臨江王節士歌)
제22수 사마 장군에 대한 노래(司馬將軍歌)
제23수 임금의 길(君道曲)
제24수 신발 끈 매어 주는 사람(結襪子)
제25수 젊은이들 모인 곳에서 협객과 사귀네(結客少年場行)
제26수 장간 마을의 노래. 두 수 중 첫째 수(長干行 二首 其一)
제27수 장간 마을의 노래. 두 수 중 둘째 수(長干行 二首 其二)
제28수 임금께서 회중궁(回中宮)으로 가시네(上之回)
제29수 옛 밝은 달의 노래(古朗月行)
제30수 외로이 만나지 못하네(獨不見)
제31수 하얀 모시 춤의 노래. 첫째 수(白紵辭 其一)
제32수 하얀 모시춤의 노래. 둘째 수(白紵辭 其二)
제33수 흰 모시 춤의 노래. 셋째 수(白紵辭 其三)
제34수 기러기 울음소리(鳴雁行)
제35수 여인의 박복한 운명(妾薄命)
제36수 유주의 북방 말 탄 협객의 노래(幽州胡馬客歌)
제37수 문 앞에 마차 타고 온 손님의 노래(門有車馬客行)
제38수 군자는 염려하는 바가 있으니(君子有所思行)
제39수 동해의 용감한 부인(東海有勇婦)
제40수 황갈 칡(黃葛篇)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제1수 독록편(獨?篇)
제2수 높은 산에 올라 먼바다를 바라보네(登高丘而望遠海)
제3수 따뜻한 봄의 노래(陽春歌)
제4수 양반아(楊叛兒)
제5수 제비 한 쌍의 이별(雙燕離)
제6수 산사람이 술을 권하다(山人勸酒)
제7수 우전에서 꽃을 따며(于?採花)
제8수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을 한탄하는 노래(鞠歌行)
제9수 그윽한 골짜기의 샘물(幽澗泉)
제10수 왕소군. 첫째 수(王昭君 其一)
제11수 왕소군. 둘째 수(王昭君 其二)
제12수 중산왕 유자첩의 노래(中山孺子妾歌)
제13수 형주의 노래(荊州歌)
제14수 벽사 놀이 공연의 고취곡 <치자반> 곡사(設?邪伎鼓吹雉子班曲辭)
제15수 만남의 노래(相逢行)
제16수 옛날에 그리워하는 이 있어(古有所思)
제17수 오랜 이별(久別離)
제18수 연밥 따며 부르는 노래(採蓮曲)
제19수 백발의 노래 두 수(白頭吟 二首)
제20수 백발의 노래. 둘째 수(白頭吟 其二)
제21수 임강왕과 강개한 선비의 노래(臨江王節士歌)
제22수 사마 장군에 대한 노래(司馬將軍歌)
제23수 임금의 길(君道曲)
제24수 신발 끈 매어 주는 사람(結襪子)
제25수 젊은이들 모인 곳에서 협객과 사귀네(結客少年場行)
제26수 장간 마을의 노래. 두 수 중 첫째 수(長干行 二首 其一)
제27수 장간 마을의 노래. 두 수 중 둘째 수(長干行 二首 其二)
제28수 임금께서 회중궁(回中宮)으로 가시네(上之回)
제29수 옛 밝은 달의 노래(古朗月行)
제30수 외로이 만나지 못하네(獨不見)
제31수 하얀 모시 춤의 노래. 첫째 수(白紵辭 其一)
제32수 하얀 모시춤의 노래. 둘째 수(白紵辭 其二)
제33수 흰 모시 춤의 노래. 셋째 수(白紵辭 其三)
제34수 기러기 울음소리(鳴雁行)
제35수 여인의 박복한 운명(妾薄命)
제36수 유주의 북방 말 탄 협객의 노래(幽州胡馬客歌)
제37수 문 앞에 마차 타고 온 손님의 노래(門有車馬客行)
제38수 군자는 염려하는 바가 있으니(君子有所思行)
제39수 동해의 용감한 부인(東海有勇婦)
제40수 황갈 칡(黃葛篇)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李白,태백太白, 이한림李翰林,청련거사靑蓮居士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별칭으로 적선謫仙이라 불리기도 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로 이사해 서안도호부 관할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이백을 낳았고, 부친이 다시 사천성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으로 옮겨 옴에 따라 이백 또한 이곳에서 어린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별칭으로 적선謫仙이라 불리기도 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로 이사해 서안도호부 관할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이백을 낳았고, 부친이 다시 사천성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으로 옮겨 옴에 따라 이백 또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725년(25세) 촉 땅을 떠나서 장강을 따라 삼협을 거쳐 강남 일대를 유람했으며 산동, 산서 등지를 떠돌며 도교(道敎)에 심취했다. 742년(42세) 도사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수 없자 3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장안을 떠나 다시 방랑의 길로 들어선다.
755년(55세) 안녹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백은 안휘성 선성(宣城)에 있었다. 57세에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의 막료가 되었으나, 영왕이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숙종이 즉위하자 이백도 역도로 몰려 강서성 심양(尋陽)에 투옥되었다. 송약사(宋若思)가 구명해 그의 막료가 되었으나 끝내 귀주성 야랑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 삼협을 거슬러 무산에 당도했을 때 특사를 받아 강릉으로 내려가며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지었다.

이후 노쇠한 이백은 금릉과 선성을 오가다가 당도(當塗) 현령으로 있던 친척 이양빙(李陽?)에게 몸을 의탁했다. 762년 병이 중해지자 이백은 자신의 원고를 이양빙에게 주고 「임종가(臨終歌)」를 짓고는 회재불우의 한 많은 한평생을 끝마쳤다. 우리에게는 당도에 있는 채석기(採石磯)에서 노닐다 장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이 훨씬 더 익숙하다.

이백은 굴원 이후 가장 뛰어난 낭만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당시의 민간 문예뿐 아니라 진한(秦漢)과 위진(魏晉) 이래 악부 민가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다. 더구나 그는 도가에 심취해서 그의 시는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환상적인 경향 또한 짙다. 이백의 문장은 거의 모든 문장 형식을 망라하고 있어 그가 다양한 종류의 글에 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을 대붕大鵬에 비유하며 기상을 떨치고자 하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에는 호방하고 높은 기상이 빛나며 타고난 상상력으로 불후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가 남긴 시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인들에게도 영향을 많이 미쳤으며 지금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를 애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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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시문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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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의 시문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서 이백의 시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번역하는 모임이다. 2013년 2월 결성되었으며 매주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이백의 시문을 강독하고 토론하고 있다. 2017년 중국 안후이성 마안산시를 방문해 중국이백연구회와 학술 교류를 시작했다. 그간의 역서로는 『이백시전집 I(고풍)』, 『이백시전집 II(등람)』, 『이백시전집 III(행역)』, 『이백시전집 IV(회고)』, 『이백 시전집 Ⅴ 한적』, 『이백 시전집 Ⅵ 회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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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128*188*30mm
ISBN13
9791128865596

책 속으로

독록산의 물에는 진흙이 있어
물이 흐려 달이 보이지 않네.
달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래도 괜찮으나
물이 깊어 지나는 사람 물에 빠져 죽는다네.

월 땅의 새는 남에서 날아오고
오랑캐 땅의 기러기 역시 북으로 넘어가네.
내가 활을 당겨 하늘 향해 쏘려 하나
새들이 중도에 돌아갈 길을 잃을까 가엽네.

낙엽은 떨어져 나무와 이별해
표표히 바람 따라 떠도네.
나그네는 의지할 곳 없으니
슬픔이 이와 같다네.

비단 휘장 펼쳐 올라가니
마치 누군가 들어오는 듯.
밝은 달빛이 곧장 들어오니
딴마음 없음을 알 수 있으리라

웅검이 벽에 걸려 있으니
시시때때로 용의 울음을 우네.
무소와 코끼리는 베지 못하고
녹이 슬어 이끼가 자라네.
나라의 치욕을 씻지 못했으니
어찌 공명을 이룰까?
운몽택의 신령한 매
솔개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네.
군왕을 위해 한 번 치니
구천의 하늘에서 붕새를 잡네.
---「독록편」중에서

왕소군이 옥안장 털고
말에 올라 고운 뺨에 눈물 흐르네.
오늘은 한나라의 궁녀
내일 아침엔 흉노의 첩.

昭君拂玉鞍, 上馬啼紅頰.
今日漢宮人, 明朝胡地妾.
---「왕소군. 둘째 수(王昭君 其二)」중에서

소첩의 머리카락이 막 이마를 가렸을 때
꽃을 꺾어 들고서는 문 앞에서 장난했지요.
낭군께서는 죽마 타고 오셔서
우물 난간을 맴돌며 푸른 매실을 갖고 놀았죠.
함께 장간리에 살면서
우리 둘은 어릴 때부터 거리낌이 없었답니다.
열넷에 그대 아내 되어서는
부끄러워 웃은 적이 없었지요.
머리 숙여 구석진 벽만 마주해
그대가 아무리 불러도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어요.
열다섯 살에야 비로소 활짝 웃게 되었고
죽어 먼지와 재 될 때까지 함께하길 바랐지요.
함께하자는 굳은 약속 늘 마음에 품었건만
어찌하여 망부대를 오르게 되었을까요?

열여섯에 그대 먼 길을 떠나
구당협의 염예퇴로 가셨지요.
오월에는 위험해서 접근도 못할 것이고
원숭이 소리가 하늘에서 애절하겠지요.
문 앞에서 머뭇거리던 임의 발자취에는
하나하나마다 푸른 이끼 끼었네요.
이끼가 무성해 쓸어 낼 수도 없는데
이른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집니다.
팔월에 날아든 나비
짝지어 서쪽 뜰 풀밭을 날아다녀요.
이에 슬퍼져 소첩의 마음 상심하니
근심에 고운 얼굴 늙어 가지요.
언제 삼파에서 내려오시려거든
미리 집으로 기별하셔요.
맞이하러 가는 길 멀다 하지 아니하고
곧장 장풍사까지 가오리다.

---「장간 마을의 노래. 두 수 중 첫째 수(長干行 二首 其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선 이백은 당대 시단 나아가 중국 역대 시단을 통틀어 시성(詩聖)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시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백에 대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태백시집』을 제외하고는 그의 시에 대한 완역이 없어 학자들이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이러한 반성에 기초해 몇몇 사람들이 뜻을 모아 『이백 전집』을 역주하고 해설해 출판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민간의 노래, 악부(樂府)

악부시라는 명칭은 원래 한대(漢代) 악부시에서 유래한다. 즉, ‘악부(樂府)’라는 관청에서 수집한 민간 가요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악부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을 갖는다. 첫째, 시가의 내용 면에서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하는 현실성이 강하다. 둘째, 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어가 평이하고 그 음절은 간결하다. 셋째, 그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우며 격률에서도 엄격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한대 이후로 많은 시인이 이를 모방해 창작했는데 이를 모두 악부시라 한다. 또한 한대 이후의 악부시 중 시 제목에 ‘가(歌)’, ‘행(行)’, ‘음(吟)’ 등이 포함된 것들을 가행체 시(歌行體詩)라 하는데, 이도 역시 악부시에 속한다. 다만 이를 조금 더 자세히 구분하면 악부시는 서사성이 강하고, 3인칭 시점이 많은 반면, 가행체 시는 서정성이 강하고 1인칭 시점 위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백의 악부시

이백의 현재 전해지는 작품 가운데 악부시의 비중은 상당하다. 이백의 전체 작품 약 1000여 수 중 현전하는 악부시는 전체의 약 16%에 해당하는 160수다. 또한 송대에 편찬한 『악부시집(樂府詩集)』에는 약 450여 수의 초당(初唐), 성당(盛唐) 악부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161수가 이백의 악부시다. 전체 초성당 악부시 가운데 이백의 악부시가 약 36%를 점하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이백은 초성당을 대표하는 악부시 시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많은 수량의 악부시를 창작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지의 다양한 악부 민가를 접하게 되었고, 또 이러한 악부 민가로부터 적지 않은 시적 영감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백의 악부시는 그 창작 수량뿐만 아니라, 예술적 성취에서도 역대로 매우 탁월한 평가를 받았다. 명대의 호진형(胡震亨)은 “이백은 악부시에서 가장 심오하다. 옛 악부 시제(詩題)를 모방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어떤 것은 그 본래 뜻을 사용했고 또 어떤 것은 새로 바꾸어 새 뜻을 지어냈다. 그 뜻을 합쳤으되 다른 듯하고, 그 뜻이 다르되 합친 듯하니, 옛것을 모방하는 교묘함을 지극히 다했다”라고 호평했고 현대의 푸루이(傅如一)는 “이백의 전체 시작(詩作)의 정수는 거의 다 이 악부시에 모여 있으니, 그의 총명함과 재주 역시 가장 통쾌하게 발휘되어 있다”고 했으며, 페이페이(裴裴)는 “창작 개성으로 볼 때, 이백은 감정을 크게 토로할 때 자유분방하게 구사했는데, … 자유분방한 감정은 어떠한 속박에서도 벗어날 것을 요구하니, 이러한 까닭에 이백은 악부시에서 뛰어남을 보였다”라고 호평한 바 있다. 이백의 악부시는 시대의 아픔과 백성의 고통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이백 특유의 자유롭고 낭만적인 개성이 현저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백 특유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가운데 과장과 상징 수법 등이 변화무쌍하게 사용되어 뛰어난 예술적 경지를 이루고 있다.

『이백 시전집 8 악부 2』에는 이백의 악부시 35제(題) 40수가 수록되어 있다. 원전의 편차를 그대로 따랐기에 창작 시기와는 상관없이 수록되었으며, 그 내용도 다양하다. 이백 악부시의 대표작인 〈독록편(獨?篇)〉, 〈왕소군(王昭君)〉, 〈장간 마을의 노래(長干行)〉 등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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