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르티아 센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에 따라 여러 개의 변화하는 정체성(가족, 직업, 문화적, 생물학적, 철학적, 지역적, 영적 정체성 등)을 지닌다고 말한다. 그 여러 정체성 중 하나만이 유일한 정체성인 양 사람들을 그 안에 가두어두려는 유혹, 또는 그들이 거기에 스스로 갇히도록 내버려두는 유혹이야말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폭력의 주요 원인이라고 센은 분석한다. 누군가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핵심 부분이야말로 각 개인을 그 누구와도 다른 존재인 동시에 모두와 동등한 사람으로 만든다. (…) 이런 독특함은 올리버 색스가 어렸을 때부터 경험한 어려움,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몰이해, 장애로 인한 결핍을 ‘보완’하려는 엄청난 노력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어쩌면 그는 얼굴의 특징을 기억에 새기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향해 나아가려는 열의를 갖게 되었으며, 에마뉘엘 레비나스(프랑스 철학자이자 『탈무드』 주석가)가 ‘진정한 얼굴’이라고 부른 것을 찾아 나서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얼굴, 너무나 내밀해서 오로지 정신과 마음의 눈만 다가설 수 있는 얼굴 말이다.
---「추천 서문」중에서
체코 태생인 부모님은 파리에 사는 체코인 소모임에 자주 참석했다. 나는 가끔 그 모임에서 관심사인 천문학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곤 했다. 나는 일고여덟 살 때부터 수년간 천문학에 푹 빠져 있었다. 어른들은 땅딸막한 꼬마가 이런저런 별의 특징에 대해 말하는 걸 재미있어했다. 어쩌면 아이가 흥분해서 떠든다고 생각하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정신과 의사가 그곳에 있었다면 ‘정신병’을 이겨내도록 내게 약을 주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시기에 사회적인 담화, 즉 관계를 만들어내는 담화, 더 근본적으로는 말한 사람을 ‘정신이 온전한 인간’으로 보게 만드는 담화를 할 능력이 거의 없었다. (…)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은 스위스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다.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사실 난 그때 엄마 아빠의 바로 앞의 덤불 속에 있었다. 하지만 두 분의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생기면 때 소리 질러 답해야 한다고 내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장. 어떤 틀에도 맞지 않는 아이」중에서
나는 공놀이를 할 줄 모른다. 사실 내겐 공놀이가 아니라 아이들이 하는 ‘이상한 게임’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규칙과 그때그때 정해지는 실행법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놀이를 하려면 공의 궤적을 3차원으로 시각화하는 판단력과 섬세한 운동 기능 등 상당한 신체 능력을 지녀야 하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내게 어려운 일들이다. 부모님은 물건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내게 왼손만 두 개 있어서 그렇다고 말하곤 했다. 아이들은 축구장에서 그보다 훨씬 못된 말을 했다. 하지만 가장 기운 빠지는 일은 아마도 그것을 하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축구라는 게임을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금세 더러워지는 공을 차서 이런저런 방향으로 밀어내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
어느 날 아버지는 슈퍼마켓에서 천문학을 다룬 얇은 책 한 권을 사주었다. 나는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고 내용을 통째로 외웠다. 내 기억에 그날부터 천문학에 푹 빠져든 것 같다. 이후 아버지의 직장 동료가 『하늘과 우주』(Ciel et Espace)라는 잡지를 선물했다. 그로써 아주 오래 지속될 하나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몇 달 동안 나는 잡지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잡지를 앞표지 왼쪽 맨 윗줄부터 뒤표지 오른쪽 맨 아래에 있는 글자까지, 광고는 물론 바코드까지 죄다 외웠다. 그러고 나서야 난 외우지 않고도 잡지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참 후에는 잡지를 처음부터가 아니라 특정 부분(예를 들어 16쪽에 있는 기사)부터 읽기 시작해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으로, 나는 기사와 광고의 차이를 이해했다. 물론 이 과정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1장. 어떤 틀에도 맞지 않는 아이」중에서
자폐인에게 가장 큰 불안을 안겨주는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예정된 일에 변화가 생기는 상황이다. 만약 누가 10시에 끝난다고 말했는데 선생님이 10시 2분에도 계속 말하고 있다면 자폐를 지닌 사람은 엄청나게 불안해진다. 이는 두 가지 규칙이 상충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10시에 교실에서 나와야 한다고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가 권위를 앞세워 교실에 남아 있으라고 명령(직접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하고 있다. (…)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수업이 8시 10분에 있다면 몇 시에 집에서 문을 닫고 나가야 할까? 몇 시에 양치질을 해야 할까? 필요한 물건이 가방에 들어 있는지 몇 시에 몇 번이나 확인해야 할까? 필요한 물건은 뭐지? 정해진 교과서와 공책 외에도 귀마개나 간식, 우산, 우산이 바람 때문에 망가질 경우를 대비한 보조 우산, 학교에서 정전이 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손전등, 화재 대피용 노끈, 집 근처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가이거계수기 등은 어느 정도 얼마나 필요할까?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에 늦게 도착하면서도 태평하게 앉아 있는 열등생의 태도는 자폐인에게는 ‘넘사벽’으로 느껴진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키면 어느 정도까지 스트레스를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할까? 이 모든 질문에 답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다. 더욱이 이 질문들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아마도 학교를 그만두어야만 발견할 수 있다.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왕위 계승 분쟁이 결국 해당 주역들의 자연사와 함께 종결된 것처럼 말이다.
---「1장. 어떤 틀에도 맞지 않는 아이」중에서
시앙스포에 도착한 첫날,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몰랐다. (…) 나는 그날 아침 매우 일찍, 그러니까 적어도 소집 두 시간 전에 도착했다. 얼마나 일찍 가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컴컴한 새벽 거리에서 혼자 닫힌 문 앞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장소와 시간을 착각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며 기다렸다. 나는 쥘 베른이 묘사할 법한 행성 간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이,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보조 식량부터 화장지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것들이 담긴 큰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2장. 규칙은 어디까지 규칙이지?」중에서
가장 거북했던 순간들을 거론할 차례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뒤(신랄한 사람은 이것도 수업의 연장이라고 하겠지만) 작은 식당 혹은 카페에서 만나곤 했다. 하지만 난 식당과 카페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른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 난 식당에 혼자 가지 않았고, 특별히 ‘허가받지’ 않고도 식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학급의 학생 하나가 나더러 그 자리에 오라고 거듭 권했다. “그러지 말고 오라니까! 와, 조제프.”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유로 모임에 초대받자 나는 겁을 먹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 학생은 나름대로 상황을 해석한 끝에 자기가 내 음료수 값을 내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도망쳤다. 내 판단도 부정확했다. 1년 내내 한 번도 내게 친밀감을 보이지 않다가 어째서 갑자기 나를 초대하는 걸까? 내게 별안간 분풀이를 하려는 걸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걸까? 식당에 간다니 무슨 엉뚱한 생각인가? 그런 모임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학기가 끝났고 이제 집에 가서 여름내 책을 읽을 수 있는데 굳이 식당에 갈 이유가 있을까? 오렌지주스는 집에서도 마실 수 있는데….
---「2장. 규칙은 어디까지 규칙이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