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어링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았다 - ‘마이너스’를 지향하기 동문서답의 정치 - 우아하고 통쾌하게 말하는 법 이론은 장례식을 거쳐 진보한다 - 새로운 앎을 만드는 횡단의 사고 ‘지금 여기’를 포착하는 선구안 - 지식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시작된다 “너의 위치를 알라” - 앎의 출발, 위치성 지식은 ‘발명’된다 - 종이 신문과 검색창의 차이 혼자란 무엇인가 -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말은 본디 칼이다 - 말하기와 듣기의 공중 보건
2장 파국의 시대, 공부란 무엇인가
우리는 착취하는 자의 언어로 말한다 - 욕망하는 자와 해방되는 자 공부는 변태의 과정이다 - 읽기와 이해하기의 차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유의 시대 - 혼자, 둘이, 여럿이 하는 공부 ‘노아의 쪽배’까지 부수지 않으려면 - 인공 지능과 인문학의 융합? 융합은 관점이다 - 생태주의, 평화주의, 여성주의 공부의 기준이 다양한 사회가 대안이다 - 영어 공부는 필요한가? 학교에 가면 공부한다는 환상 - 학교란 무엇인가 공부는 쓰기다 - 표절을 넘어 다운로드의 시대에서
3장 다른 것을 다르게 보기
주류 언어가 나를 삼켜버릴 때 - 우리에겐 자기 언어가 필요하다 소통은 불가능하다 - 수많은 차이의 교차로에서 하나, 여럿, 그 너머 - 다양성이라는 세련된 탈정치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생각하기 - 새로운 말이 필요한 이유 모두가 억울한 ‘내 나이’ - 나이, 계급, 젠더가 뒤엉킬 때 환원주의, 매력적인 깔때기 이론 - 모든 이슈에 젠더가 동원되는 이유
4장 고정된 프레임을 넘어서
꿀 한 통을 얻으려면 지구가 필요하다 - 태초에 꽃, 꿀, 벌이 있었다 물과 기름을 섞는 법 - 절충은 융합이 아니다 오리지널 돈가스는 없다 - 우리말과 한글의 차이 우리는 있는 곳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된다 - 공간으로 사유하기 태초에 목소리‘들’이 있었다 - 흑서와 백서를 넘어 문명은 충돌하지 않는다 - 비교가 고정 관념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프레임을 택할 것인가 - 프레임 이동의 정치학
“주류 언어가 나의 삶을 삼켜버릴 때, 현실이 교착 상태에 빠져 공동체가 고통받을 때 새로운 말을 찾는 과정이 융합이다.”
융합은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공부법이다.《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에는 새로운 앎을 생성하는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와 그 예시를 보여주는 29편의 글이 실려 있다.
새로운 언어를 창안하는 융합적 사고는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가에 따라 공동체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새로운 앎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희진은 기존의 논리를 답습하는 정의롭지 않은 지식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융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당파성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융합은 약자와 지구에 봉사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작더라도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적더라도 최선을 다해 다른 세계를 만들고 싶다. 자본에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많은 글 쓰는 이들의 고민일 것이다. …… 나는 내 글이 ‘보편적인 독자’를 초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다. 내 글은 당파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에서 실패한다면, 그 또한 쓸 이유가 없다. 나는 이 문제에 융합으로 ‘대응’해 왔고 이 책에서 독자들과 공유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 ‘머리말’ · 13, 14쪽
1장 생각대로 살지 않으려면
1장은 융합적 사고를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관한 글을 모았다. 흔히 공부라고 하면 플라톤과 공자로 대표되는 고전을 공부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사상도 부분적 지식에 불과하다. 정희진은 새의 위치에서 전체를 보겠다는 조감도로는 건물 내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대상 전체를 포괄하고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보편 지식이란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모든 지식은 누군가의 위치에서 출발했음을 깨닫고 세상이라는 지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려면 자신이 뿌리 내리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2장 파국의 시대, 공부란 무엇인가
2장은 융합적 사고로 공부하는 법을 다룬 글을 모았다. 왜 고학력자가 ‘범람’하는데도 문해력은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는가? 정희진은 입시나 취업 준비같이 천편일률적인 공부만 지속하는 사회를 문제 삼으며 그 대안으로 새로운 공부법을 제시한다. 공부는 사유라는 외로운 노동을 혼자서 감당하며 자신의 몸을 변환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읽기, 여행, 경험 등 여러 공부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쓰기가 최고의 공부법이라고 말한다. 글을 쓰면서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있고, 그 과정을 반복하며 새로운 지식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이를 메우는 과정이 곧 공부이며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3장 다른 것을 다르게 보기
3장은 다양한 대상을 한 단어로 뭉뚱그려 설명하는 게으름을 비판하고 다른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다룬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차이의 교차로에 놓여 있다. 하지만 차이는 필요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왜 같은 ‘국제 가족’이어도 외국인 배우자가 ‘미국 신랑’이면 글로벌 패밀리, ‘베트남 신부’면 다문화 가족으로 불리는가? 남성 중심주의와 인종주의가 반영된 이러한 인식은 ‘다문화’를 둘러싼 논의를 납작하게 만든다. 정희진은 각자 자기 입장이 있는 이질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세상 모든 가족은 다문화 가족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국가, 젠더 따위를 기준으로 삼아 일방적으로 그어진 경계를 허물고 자신이 직접 관계를 구획하는 작업이 곧 새로운 사유로 향하는 출발점이다.
4장 고정된 프레임을 넘어서
4장은 대상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선을 허무는 방법에 관한 글을 모았다. 세상은 한 화면에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팬데믹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은 집은 안전한 공간이라는 프레임에서 시작되었다. 주거가 불안정한 사람,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집이 지옥인 사람도 있지만 이들의 존재는 프레임 밖에 놓여 있다. 정희진은 어떤 현실에 집중할 것인지 선택하는 능력과 안목이 개인과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현실은 우리가 고른 프레임에 맞춰 재구성된다.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새로운 언어는 기존의 프레임을 해체하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