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계절을 지나면서 저는 재즈가 단지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 혹은 정신에 가깝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서로 다른 악기들로 하나의 음악을 완성해 가는 재즈 밴드의 음악들은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방과 대화하는 자세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가르쳐 주었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오직 그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감각에 집중해 음악을 창조하는 즉흥연주는 삶의 많은 것들을 틀 안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경직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었고요. 수십 년간 지켜져 온 어떤 경향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자기만의 문법을 발명한 재즈 뮤지션들의 이야기는 창작을 위한 영감이 되어 주었습니다. 때로 그 영감이 그들처럼 대단한 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으로 바뀔 때면, 부드러운 재즈의 스윙 리듬에 몸과 마음을 맡기며 긴장을 풀었습니다.
---「‘프롤로그’」중에서
마일스 데이비스가 이토록 큰 존경을 받는 이유는 수십 가지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그가 직접 제시한 답변을 먼저 들어 보는 게 좋겠습니다. 1987년, 백악관에서 열린 레이 찰스 기념 콘서트에서 그가 이곳에 어떤 업적으로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한 백인에게 마일스 데이비스가 건넨 답변입니다. “난 음악을 네다섯 번 정도 변화시켰지요. 당신은 하얗게 태어난 것 빼고 어떤 중요한 일을 하셨나요?”
그렇습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캐릭터는 판도를 변화시키는 자, 즉 ‘게임 체인저’입니다. 그는 재즈라는 음악이 변화하지 않고 기존의 형식에 안주해 있을 때마다 등장해 아주 굵은 획을 그으며 재즈의 판도를 바꾸어 버렸죠. 재즈를 즐기던 사람들은 그가 새로운 시도를 선보일 때에서야 비로소 재즈가 한동안 어떤 형식 안에 정체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습니다. 예상할 수 없는 시점에 과감한 변화를 추구하는 그의 스타일은 자칫 지나치게 낯선 시도로 외면당할 수도 있었겠지만, 단 한 음만 들어도 ‘아, 이게 재즈다’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완벽한 트럼펫 연주 실력 덕분에 그의 시도는 단순히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닌, 새로우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변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Think Different’」중에서
Q. 재즈의 어떤 성질이 디자인 작업에 영감이 되나요?
A. 디자인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창작 활동이 재즈의 성질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재즈에는 테마와 주선율이 있고, 그 위에 솔로 연주자들이 반복과 변주를 통해 자기 색깔을 입히잖아요. 디자인 역시 바탕이 되는 원리와 중심이 되는 시각적인 단서 위에 반복과 변주를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에요. 그것 외에도 즉흥, 감각, 개성, 자유 모두 좋은 단어들이에요.
Q. 실제로 디자이너님의 작업물을 보면서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소중히 하신다는 걸 느껴 왔어요.
A. 그런 편이에요. 억지로 쥐어짜거나 논리적으로 구축하듯이 만드는 것보다는 제 주변에 산재해 있는 많은 것들 속에서 발견해 내는 방식의, 즉흥성과 속도감을 좋아해요.
---「‘반복과 변주 위에 자신의 색을 입히는 법’」중에서
「썸머타임」은 미국의 작곡가 조지 거슈윈의 재즈 오페라 작품 〈포기와 베스〉의 대표적인 아리아입니다. 앞서 말했듯 희귀하다는 것은 감독이 이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증거이기도 한 법. 베토벤의 「월광」과 「첼로 소나타 1번」, 바흐의 「토카타 E 단조」 같은 클래식 음악이 높은 비중으로 언급되는 이 영화에서 어째서 재즈 곡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까요. 그 답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저자 주. 유서 깊은 고전 영화와 예술 영화를 레이저디스크, DVD, 블루레이 디스크 등의 매체로 개발하고 판매하는 기업)에서 발매한 블루레이 속 에드워드 양 감독의 인터뷰 영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어 원 앤드 어 투(A One And A Two)’에 대해 “재즈 뮤지션들이 잼 세션 전에 언제나 중얼거리는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인생은 재즈 운율 같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때론 잔인한 계절을 지나야 한다’」중에서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고 썼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좋아합니다. 청춘 중에서도 위태로운 청춘이지 요.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리는 외모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우수에 젖은 듯 느슨하게 진행되는 트럼펫 소리와, 상처뿐인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청년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유명했던 정통 재즈 뮤지션들을 꺾고 인기투표에서 1위를 할 만큼 반짝였던 쳇 베이커의 스타성은 오늘날에도 밀레니얼 세대들의 재즈 바이닐 레코드에 대한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끝내 비극적이었던 삶, 그 외로운 영혼이 전하는 위로와 사랑을 그의 음악 속에서 느껴 보세요.
---「‘JAZZ MUSICIAN 15’」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