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大器者 直要不受人惑 隨處作主 立處皆眞
(여대기자 직요불수인혹 수처작주 입처개진)
큰 그릇이라면 남에게서 얻어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르는 곳마다 스스로 주인이 되는 현실을 창조하고, 선 자리가 모두 진실해야 한다.
임제의현 선사, 《임제어록》
---「‘어떻게 세상을 간파하고 움직이는 리더가 될 것인가’」중에서
“아직 우리의 고난이 다 끝난 것이 아니오. 우리가 겪어 내야 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고가 닥칠 것이오.”
고난이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잔잔한 호수와 같은 삶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삶은 바다와 같다. 바다에는 시시때때로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고 짐작할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파도에 높은 지점과 낮은 지점이 있듯이 꼭 그렇게 우리 삶에는 기쁨과 희망도 있고 고통과 절망도 있다.
---「‘1장 2강. 호메로스, 《오디세이아》_길은 잃어도 목적지는 잃지 마라: 오디세우스의 목적’」중에서
“왜 그렇게 응석을 부리는가? 그대는 더 현명해져야 한다.”
우리가 겪는 많은 상황은 미로를 헤매는 것과 비슷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답을 알 수 없고, 실제로 가 보지 않으면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답답한 상황에 빠진 나에게 만약 누군가가 외부의 높은 위치에서 미로를 내려다보며 길을 알려 준다면 어떨까?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미로 안에서 헤매고 있다면 미로 밖에서 조언해 주는 사람의 지혜를 뛰어넘기란 힘들다.
이렇듯 누군가가 다른 관점에서 충고해 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현실의 문제를 좀 더 빨리 해결하거나 최소한 큰 실패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1장 4강.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_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빠져나오라: 파에톤과 이카로스의 추락’」중에서
“내가 세상에 남긴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방황하지 않는 삶이 있을까? ‘방황(彷: 헤맬 방, 徨: 헤맬 황)’이란 그야말로 ‘헤매는 것’이다. 모두에게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다면 좋겠지만, 실상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헤맬 수밖에 없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헤매는가? 감당하기 힘든 운명의 무게에 짓눌려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 수 없어서, 혹은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우리는 각기 다양한 이유로 방황한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방황하는 존재가 아닐까?
고전의 작가들은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인 ‘방황’을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작품에서 보여 주었다.
---「‘1장 6강. 괴테, 《파우스트》_스스로 얻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원하라: 괴테와 파우스트의 욕망’
나를 따르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키루스의 아버지 캄비세스의 말을 기억하자.
“사람은 복종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믿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복종한다.”
---「‘2장 1강. 페르시아 제국 건설_상대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주라: 키루스의 그릇’」중에서
이번에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막대한 빚을 지면서까지 사재를 털어 로마의 민중을 위해서 검투사들의 시합과 연회를 열고, 공공 공사를 진행할 정도였다. 로마 시민들은 그에게 열광하였다. 문다 전투1에서는 55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200개가 넘는 투창 속으로 뛰어들면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리하여 그의 병사들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용감하게 싸워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실제 황제는 아니었지만, 당대에 황제와 같은 권력을 누렸다.
---「‘2장 4강.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_큰일을 하려거든 적을 만들지 마라: 카이사르의 처세’」중에서
“상주고 벌주는 데 차이가 있으면 안 됩니다. 사사로운 정에 치우쳐 안팎으로 법률이 다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2장 6강. 진수, 《삼국지》_원칙을 지키는 만큼 힘을 얻는다: 제갈량의 원칙’」중에서
“나는 이 사람보다 지혜롭다. 왜냐하면 이 사람도 나도 사실상 아름다움이나 선을 모르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모르니까 그대로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깨달은, 오직 그것만으로도 더 지혜롭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에서 명성이 높은 정치가, 작가, 장인 등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대화를 나누었는데, 결국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저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자기가 가진 지혜가 사실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내가 가장 지혜로운 자다.’
---「‘3장 2강.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_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출발이다: 소크라테스의 지식’」중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이자, 고대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5현제 중 마지막 황제이다. 그는 후기 스토아 철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황제였다. 그는 황제라는 신분임에도 사치와 안락을 누리지 않았다. 전쟁터에서도 병사들과 같은 평범한 군복을 입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에게는 현실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였다. 치세 기간에 지진, 역병, 속주의 반란 등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독백하는 듯한 글 《명상록》을 쓴 이유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힘을 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는 《명상록》에서 철학의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루었을 정도로 깊이 사색하는 철인 황제였다.
---「‘3장 4강.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_어떤 고비에서도 중심을 찾는 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품격’」중에서
德不孤, 必有隣. (덕불고 필유린)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3장 7강. 공자, 《논어》_존경받을 만한 리더가 되어라: 공자의 군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