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제주에 있다. 방송 일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벌여놓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인간관계의 폭과 깊이도, 관심사도 육지에 있을 때와는 꽤 많이 달라졌다. 시간이 흘렀고 세상이 변하기도 했지만 나는 제주가 나에게 다른 세상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을 연 것은 나였지만 그 문 안에서 나름 잘 살고 있는 건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떠오르는 많은 이들에게 여러모로 고마울 따름이다. 제주에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제주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도 알 수 없다. 적당히 힘을 주었다 뺐다 하면서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다 보면 어디든 닿겠지. 아마도 이 책이 둥둥 떠 있다가 닿은 ‘어딘가’ 중 한 곳이 아닐까 싶다.
---「프롤로그 _ 무사 제주에 살앙수꽈?(왜 제주에 살아요?)」중에서
장마철에 내려와 두 계절을 보내고, 드라마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즈음 그 미친 노을을 만났다. 하루 종일 랜선 회의에 손가락과 귀는 마비될 것 같은데 조연출의 갑질에 딥빡이 왔던 날이었다. 후끈했던 정수리를 식혀준 주황빛에서 보랏빛, 이어서 쪽빛, 계속 이어서 칠흑으로 물들어 가던 바다 위 노을. 그날 알았다. 노을은 해가 바다 너머로 떨어진 직후부터 더 작열한다는 것을. 남은 태양 빛이 사라지고 낚시꾼들의 붉은 실루엣이 검은 바다 빛에 섞일 때까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오늘 무엇 때문에 화가 났던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다. 아니 다짐했다.
‘제주에 살아야겠다. 제주에 살면 살 수 있겠다.’
---「육지 사람이지만 제주 사람이기도 하고요?!」중에서
쓸데없는 경험은 없는 것인지, 쫓겨난 집에서 연습처럼 했던 셀프 인테리어가 두 번째 집과 ‘아베끄’를 만드는 데 든든한 자산이 되어 주었다. 첫 번째 집은 아파트와 오피스텔에서만 살던 서울내기가 처음 시골집에서 살기에 연습용으로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었다. 첫 번째 집에서 조명 달고 삭아서 부서지는 콘센트 교체 작업을 하며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되뇌었는데, 그걸 두 번째 집에서 써먹게 되다니! 오래된 시골집을 책방과 북스테이로 꾸미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첫 번째 집에서 한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진정,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는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익숙한 (쫓겨난) 그 집 앞」중에서
아무도 날 대견해하거나 대단하다고 해주지 않으니 셀프로라도 칭찬해야지 뭐. 더 큰 사업을 하는 사장님들한테는 별거 아닌 구멍가게였지만 적어도 나에게 ‘아베끄’는 별거였다. 엄청난 별거였다. 평생 갑을병정정정으로 살겠거니 했던 프리랜서 작가가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대표님’이 되었다는 것이 감개무량했다. 그 사업주, 대표님이라는 것이 갑을병정정정보다 더 정정정정정정……이라는 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순진한 초보 사장이었다. 가수가 노래 제목 따라가듯, 자영업자도 가게 이름 따라가는 게 아닌가 싶다. ‘avec(~와 함께)’.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고, 받고 있다는 걸 한껏 느끼고 나니 고마운 마음이 차올랐다. 책방 이름을 ‘아베끄’로 짓길 정말 잘했단 생각을 두고두고 했다.
---「내가 책방 사장님이라니! 내가 자영업자라니!」중에서
실제로 ‘오, 사랑’에서 멘탈에 기름칠을 하고 간 친구들이 농담으로 했던 말이 ‘공황 라운지’였다. 도시에서는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던 그들은 3평 남짓한 ‘오, 사랑’을 가리켜 ‘숙면의 방’ 혹은 ‘불면 치료실’이라고 했다. 며칠 잠만 푹 자도 사람이 윤기가 돈다는 걸 연구하는 임상실험실 같기도 하다. 생활 소음 없이 조용하고, 스트레스와 물리적으로 멀어졌다는 것이 숙면을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영업 비밀인데, ‘오, 사랑’에는 특별 주문 제작한 매트리스가 깔려 있다. 내 잔소리를 들으며 뒹굴뒹굴하던 지인들을 제주공항에 배웅해 주고 오는 길은 괜스레 뿌듯하다.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당분간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해 준 거 같아서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간다. 어쭙잖게 이런 생각까지 해 본 적도 있다. ‘나 하나쯤은 이렇게 시골에서 충전기 역할을 해도 괜찮겠구나.’ 물론 지인들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다. 나를 금능의 날강도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공황 라운지 ‘오, 사랑’」중에서
책방 손님들은 사장님에게 호감도가 높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하고 싶은 ‘제주 살기’와 ‘책방’을 둘 다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대입시켜 부럽다거나 응원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나 따위가 누군가의 버킷리스트라니. 내가 이런 말을 들을 만큼 잘 살고 있는 건 아닌데? 갸웃하면서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샀다는데, 누군가 나와 ‘아베끄’를 예뻐해 준다는데, 나쁠 이유가 없지, 땡큐지. 속 빈 강정이라 할지라도 오늘 하루도 누군가의 버킷리스트가 되어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냈다.
---「인간애 소멸 직전 만난 귀인들(feat. 아베끄 동화)」중에서
안내문을 써서 붙일 때 마음도 단단해졌던 걸까? 손님들이 글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지에 대해서는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건 내가 컨트롤할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이 가게의 주인으로서 가게의 규칙 안내는 해야 한다는 것까지가 나의 영역이었다. 이제야 조금은 진정한 자영업자가 되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수월해진 것은 안내문을 보지 못하고 (혹은 봤어도 모르는 척하고) 들어오자마자 사진을 찍는 분들에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죄송하지만 사진 촬영은 책 구매 후에 해주세요.”
---「분노의 공지사항」중에서
‘도시’라는 두 음절에서 나는 회색 냄새는 사람을 참 숨 막히게 해요. 당장 이 도시만 아니면 숨을 쉴 수 있을 것처럼. 근데 언니…… 나는 도시가 너무 숨이 막혀 섬에 들어왔는데 ‘섬’에서는 도시와는 다른 외로운 냄새가 나요.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만은 아니에요. 도시를 벗어나도 그곳이 먹고 사는 것과 연결되면 다시 숨 막히는 곳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오는 외로움이랄까. 도시만 벗어나면 숨도 잘 쉬어지고 덜 외로울 줄 알았는데. 그리움의 대상은 미화되고 가진 것들을 폄하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도시는 좀 억울할 거 같아요. 우리, 도시를 너무 미워하지 말자고요.
---「Letter 3. 우리는 언제부터 도시를 미워하게 됐을까요?」중에서
혹여라도 제주 혹은 전국에 있는 여느 시골집 리모델링, 귀촌 귀농에 판타지나 로망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할 게 있다. 〈삼시세끼〉나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집은 스태프들이 수리해 준 집이거나 세트장일 뿐, 시골집이 자기 혼자 관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라! 정겨운 시골집 하나 개조해서 장사나 할까 하는 계획이 있으시다면, 리모델링할 돈으로 땅 사서 신축 건물을 짓는 걸 추천하는 바입니다. 당연한 말을 뭐 이렇게 장황하게 푸느냐 싶겠지만 정말 장난이 아니다. 물론 고쳐놓고 보면 뿌듯하다. 보면 볼수록 그 세월의 묵은 때에 정이 가는 것 역시 신축은 비할 바가 못 된다. 올드패션, 레트로, 빈티지 감성이 달리 유행이겠는가. 그 맛에 시골집에 사는 거겠지만.
---「눈을 낮추든가 돈이 많든가」중에서
이제는 아베끄 생일이라고 의관을 갖추거나 목욕 재계를 하지 않는다. (머리나 감고 나가면 다행이게.) 변변찮은 기념 이벤트도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아베끄쟝 생일부터 아베끄 생일까지 두어달 동안 쌈박한 이벤트를 준비해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결국 시간에 쫓겨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까지 계획에 넣어 본다. 아마도 5월 5일 되어서야 ‘에라 모르겠다, 이벤트는 무슨 이벤트냐’ 하면서 헐레벌떡 머리도 못 감고 연두색 대문을 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벌써 5년 : since 20170715 + 20220505」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