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철학과 예술의 관계라는 문제를 제시한 결정적인 창시자로 확인되며, 이 문제는 하이데거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 p.21
니체의 텍스트는 결코 변증법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대화로서의 철학이라는 플라톤주의적 형상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니체는 자신을 변증법적 성격이나 변증법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드러내는 사상가입니다.
--- p.22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의 철학적 행동을 인류 전체의 역사를 두 토막으로 부수는 이미지를 통해 이해하며, 그러한 행동을 새로운 시대의 절대적인 열림으로, ‘새로운 달력’으로, 그러니까 프랑스 혁명이라는 새로운 달력을 실제로 구성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기획에 필적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 p.47
저는 니체가 의심의 여지 없이 철학을 혁명의 경지로 가져가고자 노력했던 사상가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 p.47
니체는 철학의 보통명사들에 대한 진정한 증오를 느낍니다. 진리, 선, 미, 정의, 부정의, 술어 등, 요컨대 철학을 구성하는 보통명사들의 그물망 전체에 대해, 그는 모든 가치의 전복이라는 몸짓을 통해 완전히 끝장내버리기를 작정하는 것이지요.
--- p.63
니체는 혁명과 전적으로 다른 관계를 맺는 사상가입니다. 그의 질문은 결코 혁명 이후의 정세를 안정시키거나 이 사건 너머 사유의 새로운 시대를 권장하는 따위의 것이 아니지요.
--- p.79
니체의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은 그것이 스스로 되기를 열망했거나 공표했던 것?즉 세계의 역사를 둘로 쪼개는 것?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테제는 프랑스 혁명이 아무것도 둘로 쪼개지 못했다는 것으로, 그 중요한 근거는 세계의 역사가 여전히 기독교적인 것으로 유지되었고, 그것이 기본적으로 오래된 가치들의 요소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 p.80
프랑스 혁명은 혁명이 아니며, 철학적 행동이라는 요소로 보자면 니체적 혁명만이 하나의 혁명이 될 터인데, 그 이유는 니체적 혁명은 알려지지 않은 폭발물을 사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p.81~82
한편으로 《안티크리스트》와 기독교에 반대하는 법의 기획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말미에 제시되는 강령(계획)의 개선들 사이에서,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저는 어떤 모방적 유사성을 감지합니다.
--- p.88
여명이 드러나는 그 지평의 황홀함에 사로잡혔던 1888년, 니체의 철학적 행동은 절대적인 단절이었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사건, 인류의 역사를 둘로 쪼개는 균열을 생산하는 것이며, 오래된 세계 또는 오래된 가치들의 해석이라는 관점에서 완전하고도 긍정적인 새로움이 도래하게 하는 것입니다.
--- p.93
원정치적 행동이 창조해야 하는 것은 곧 세계를 긍정하는 역량입니다. … 그것은 바로 원정치적 행동이 모든 잠재적 주권에 내재하는 긍정적 역량의 해방이라는 점입니다.
--- p.138
철학이란 거짓 이름들을 동원하여 우리가 거기 있는 것을 기쁘게 긍정하지 못하게 막는 우울증적 징후라는 것이 바로 반철학의 결정적인 평결이지요.
--- p.170
파르메니데스 이후로, 철학과 반철학 사이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 p.185
모든 반철학은 데카르트의 긴 추론의 연쇄로부터 하이데거의 은밀한 시론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형태로 주어짐에 상관없이 적합한 언어의 가정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 p.204
니체가 고지하는 것, 즉 그가 원하는 것?그가 주창자가 되는 단절?은 정확히 근대성과의 단절, 근대성의 교정, 근대성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 p.290~291
위대한 예술의 기원적 주형은 그리스의 비극입니다.
--- p.292
에우리피데스는 예술을 철학에 종속시키는 자입니다. 그의 범죄는 바로 그런 것이며, 이는 또한 동시에 연극의 탄생이기도 합니다. 비극의 삭제와 소멸을 통한 연극의 범죄적인 탄생이 있는 것입니다.
--- p.299
니체는 연극과 철학의 기원적 공속성을 완벽하게 인식합니다. 철학은 비극의 연극화에 책임이 있으며, 또한 비극의 종말 혹은 ‘비극의 자살’에 책임이 있습니다.
--- p.301
위대한 예술은 음악적으로 신화를 떠받치거나 혹은 시적으로 행위를 떠받치는 것이 되며, 보다 근본적으로 볼 때 도취로 꿈을 감쌀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 p.305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이 신화들로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디오니소스적 가곡은 신화의 복귀를 고지한다고 하지만, 그는 바그너의 음악이 신화적 꿈의 도취를 간직할 피난처가 아님을, 그의 음악이 사실상 신화의 시뮬라크르를 만들어내며, 그 본질은 퇴폐적인 심리학임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 p.312
위대한 예술의 복귀에 대한 전망은 영원회귀의 교설을 은밀하게 지탱하는 것임을 저는 깊이 확신합니다. 그 ‘복귀’는 본질적으로 위대한 예술이 복귀할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입증됩니다.
--- p.320
만일 위대한 예술의 예술가가 원정치적 단절의 전형이 아니라면(이 예술가가 바그너적 의미의 협잡꾼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더 이상 독일이 원정치의 현장이 될 수 없다면,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다른 전형이, 이 행동의 다른 장소가 있는가(어느 나라, 어떤 형세의 나라들)? 바로 거기서 니체는 방황할 것이며, 엄격한 의미에서 그는 이 유럽의 방랑자가 될 것입니다.
--- p.359
여하튼 20세기 내내 니체의 사유로부터, 즉 그의 반철학으로부터 다음 질문의 심각성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예술과 철학 사이의 관계에 있어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 p.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