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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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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548쪽 | 610g | 135*195*35mm
ISBN13 9791138477871
ISBN10 1138477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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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드잡이를 해봤자 ‘혼자 떠드는 수상한 남자가 있다’라고 신고당할 뿐이야. 그렇게 되면 곤란하지 않겠어? 애써 도망쳤는데.
“……그러니까 브레이크를 풀라고. 그러면 큰 소리를 낼 이유도 없잖아.”
─그럴 수는 없어. 너와 달리 나는 치료받는 게 싫지 않아. 이대로 달릴 바에는 보호 조치를 당해 다시 돌아가는 게 낫겠어.
가이토의 말투에서 강한 결의가 느껴졌다. 다케시는 핸들을 쥔 오른손에 힘을 실었다.
“……알았어, 쉴게. ……쉬면 되잖아.”
1분쯤 침묵한 뒤 다케시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가이토에게, 여전히 브레이크를 잡고 있는 자기 왼손에.
--- p.13

‘에일리언 핸드 신드롬.’
다케시가 무슨 SF영화 제목 같은 이름의 질환이라고 진단받은 것이 석 달 전이다. 음울한 분위기의 중년 주치의는 뇌질환이나 정신질환을 계기로 한쪽 팔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팔의 행동은 매우 다양해, 물건을 집거나 글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뺨을 때리기도 한단다. 그 모습이 마치 한쪽 팔에 ‘무언가’가 기생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에일리언 핸드 신드롬’ 혹은 ‘외계인 손 증후군’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그 자체도 극히 드문 질환인데 다케시의 증상에는 다른 에일리언 핸드 신드롬 환자와는 명확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왼손에서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이다.
가이토의 목소리가.
처음 왼손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가이토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다케시는 혼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 이해했다. 자기 왼손에 형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 pp.13~14

─내 영혼이 네 왼손에 깃들었다고? 오컬트 같은 얘기네.
“오컬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아. 너는 가이토야. 그 증거로 너는 내가 모르는 것까지 알잖아. 내 뇌가 만들어낸 환상이라면 그럴 리 없잖아.”
─꼭 그렇지도 않아. 인간의 뇌는 대량의 정보를 축적하고 그 일부만 꺼내 쓰지. 나는 너와 다른 부분의 뇌를 써서 생각할 거야. 그래서 네 안에 잠들어 있는, 네가 꺼낼 수 없는 정보에 접근한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너는 과거의 기억도 가지고 있잖아. 내가 모르는 가이토의 기억도.”
─맞아. 하지만 그건, ‘가이토’라는 인격을 만들어내기 위해 네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가짜 기억일지도 몰라.
“그런 어려운 소리는 집어치워! 너는 가이토야! 분명 가이토라고!”
─……아, 알았어.
가이토는 조금 당혹스러우면서도 기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케시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 의사가 너를 없애게 놔둘 순 없어. 절대로…….”
--- pp.21~22

“죽은…… 거야……?”
발밑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으악…… 아아악!”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다케시는 소리라고 할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면서 물러나 피 묻은 손바닥을 청바지에 문질렀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가이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죽었다고……. 살해당했어…….”
─알아. 그러니까 더 진정해야지. 일단 범인이 주위에 없는지 확인해.
살인범이 아직 주위에 있을지 모른다. 다케시는 그제야 그 가능성을 깨닫고 서둘러 주위를 둘러봤다. 보이는 한 주위에 인적은 없었다.
─어쨌든 당장 범인에게 공격당할 위험은 없겠다.
“이제…… 이제 어떻게 하지?”
─지금부터 생각해야지. 잠깐 기다려.
“하지만 사람이 죽었어. 경찰을 불러야지…….”
─멍청이! 상황을 좀 생각하라고!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되다니…….”
─네 몸 좀 봐.
“몸?” 다케시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손바닥과 청바지에 온통 피가 묻어 있다. 뺨이 굳었다.
─이제 알았냐? 지금 경찰이 오면 틀림없이 네가 첫 번째 용의자야.
--- pp.30~31

끔찍한 미래상에 다케시는 갈라진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경찰은 현장에서 도망친 남자가 너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낼 거야. 어쩌면 이미 너를 찾기 시작했을 수도 있지. 일반에 공개하지 않더라도 경찰 내부에서는 지명수배 될 테고.
“그 정도는 알아.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좋냐고!”
─설명할 테니까 흥분하지 좀 마. 일단 체포되면 무죄임을 증명하기는 정말 어려워. 그러니까 경찰에 출두한다는 선택지는 잊어. 도망치는 동안에 경찰이 진범을 찾아준다면 아주 좋겠지만 그건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틀림없이 경찰은 너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너를 쫓는 데 전력을 다할 테니까. 이상의 사실로 판단컨대 살인 혐의를 벗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그런 방법이 있어? 어떻게?”
─간단해. 진범을 찾아야지. 나와 네가.
“뭐?” 목소리가 갈라졌다. “무슨 소리야? 혼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혼자가 아니지.
왼손이 오른쪽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나도 같이 할게. 정보도 있고.
--- pp.50~51

가이토의 지시가 울렸다. 다케시는 턱을 당기고 “이 사파이어라는 거, 뭐예요?”라고 물었다.
“어? 몰라? 가지고 있으면서?” 아야카가 아이섀도를 칠한 눈을 부릅떴다.
(…)
“그걸 마시면 어떻게 되는데요?”
“……정말 기분이 좋아져. ……정말.”
아야카가 열에 들뜬 듯 중얼거렸다.
“배 속에서 불이 나. 나와 내 주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자신이 녹아드는 것만 같지. 따뜻한 액체 속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
“어쨌든 그렇게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약이야. 혼자 하는 사람, 커플로 즐기는 사람, 그리고……”
왠지 자조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아야카가 용기를 던졌다.
“모든 걸 잊고 싶은 사람일까.”
“모든 걸……?” 다케시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용기를 잡았다.
“응. 그걸 마시면 불쾌한 것들을 다 잊을 수 있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잊고 행복해지지…….”
다케시는 아야카의 설명을 들으면서 용기에 든 액체를 바라봤다.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살인범으로 쫓기는 것도, 교복 입은 소녀도, 그리고 석 달 전 일어난 그 사고도…….
--- pp.105~108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세요? 오늘 처음 만났는데.”
“오늘 처음 만난 네가 나를 도와줬잖아. 누가 그렇게 도와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도시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돕지 않거든. 하지만 너는 달랐어.”
아야카가 다케시의 빗장뼈 근처에 뺨을 댔다. 다케시는 잠자코 아야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 도시에 있으면 어느새 내가 사라질 것만 같아……, 없어질 것 같아…… 너무 무서워. 그런데 너무 무서워서, 더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해서, 사라지고 싶어.”
사라지고 싶다. 그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그것은 지난 3개월 동안 자신도 내내 품은 마음이었으니까. 다케시는 아야카의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을 줬다. 아야카의 입에서 살짝 한숨이 흘렀다. 고개를 든 아야카가 촉촉한 눈동자로 다케시를 봤다.
“네 도움을 받았을 때, 아주 조금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보답하고 싶었어.”
--- p.116

“이야기를 잘 들으라고. ‘초기’라고 했잖아. 이따금 사용한다면 사파이어는 천사의 약이지. 하지만 말이야, 상용하면 다른 얼굴을 보게 돼.”
가즈마는 의미심장한 말이라도 하려는 듯 말을 끊고 턱을 당겼다.
“악마의 얼굴이지. 일단 사파이어의 쾌감을 잊지 못해 사용 횟수가 늘어. 일단 이러기 시작하면 다음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만 남았지. 늘 사파이어만 생각하고 사파이어의 약효가 끊어진 상태를 견디지 못해. 결국은 사파이어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게 돼. 여기까지 오면 이미 인간으로의 존엄성은 종이짝처럼 가벼워진다고. 그게 바로 사파이어의 노예라는 거야.”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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