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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리뷰 총점9.4 리뷰 27건 | 판매지수 5,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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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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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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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678g | 148*225*30mm
ISBN13 9791191998184
ISBN10 119199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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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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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1988년에 퇴임해 2021년에 사망했다. 최고 권력자 자리에 8년 남짓 앉았다 내려온 뒤 ‘전임 대통령’으로 33년을 산 셈이다. 그 기간 동안 전두환은 반드시 해야 했던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그가 해야 했던 유일한 일을. 두루뭉술하게 유감 표명을 한 적은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 봐도 속죄로 보기 힘든 것이었다. 진정한 속죄는 자신이 한 잘못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제 과오에 대한 책임을 북에 돌리거나, ‘용공 세력’에게 뒤집어씌우며 결백을 주장했다. 말년에 썼던 회고록에서 광주에서의 학살을 용공세력에 대한 ‘국가보위 행위’로 미화했다가 소송을 당한 것은 전두환이 잘못을 인정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프롤로그」중에서

퇴임한 전두환이 걸었던 길은 그런 독재자들 중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장기 집권은커녕 반대 세력의 잦은 시위에 시달리다가 임기를 겨우 채우고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왔고, 퇴임 뒤 대한민국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으며, 일반 시민의 상태로 33년을 국내에서 살았다. 퇴임 8년 뒤에 단죄되어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지만, 2년 만에 풀려나왔고, 그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죽 감옥이 아닌 바깥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4개 필지, 3개 건물로 이루어진 총 1,652㎡(약 500평) 규모의 집에 살며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았고, 간간이 ‘전직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초청받아 ‘조국의 미래’, ‘국가의 안위’ 운운했으며, 측근들과 골프를 치고 고급식당을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91세 되던 해, 지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프롤로그」중에서

이승만에게서 박정희로, 박정희에게서 전두환에게로 이어지는 파격과 객기, 예외성의 정상화 과정은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차트와 같았다. 식민과 분단, 전쟁이라는 토양이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기적을 요구하고 지도자에게 그 기적을 추동하도록 사회적 압력이 가해지는 과정에서, 본말이 전도되어 본래의 기적이 갖는 효용과 의미를 허물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 이후 지도자들 사이에 치명적이고 묵직한 덩어리가 전해지는 과정은 그 덩어리가 본래의 존재 의미를 잃고 타락한 사욕에만 전적으로 봉사하게 되는 점강법적인 루트를 밟았다.
---「제1부 1장 |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중에서

종말을 코앞에 둔 절대권력자에 의해 중요한 장기 말로 발탁된 것은 우연에 속하는 일이었지만, 보안사령부를 지키며 권한을 키워나가고 결정적인 순간에 중요한 자리를 꿰찰 수 있도록 ‘준비된 태세’를 유지한 것은 전두환이라는 개인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오라기 같은 기회만 있어도 맹렬하게 임해 지위 상승 가능성을 극대화하며 살아온 전두환은, 대통령 유고라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을 때 엄청난 기세로 덤벼들어 그 기회를 낚아챘고, 이후 한국의 현대사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모든 경우의 수를 소거하며 제 야심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제1부 2장 | 49세의 보안사령관」중에서

육사 생도 시절, 참모장의 집에 무작정 찾아가던 시절의 전두환의 모습은 악이나 추함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적 친분이 있지 않은 참모장의 집에 불쑥 찾아가는 청년 전두환은 얼마나 젊고 구김살 없는가! 그 시절까지만 해도 전두환은 제게 내장된 특성들을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전두환만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람도 없으리라.
---「제1부 4장 | 적극적이고 붙임성 좋은 육사 생도」중에서
최규하에게는, 12월 12일부터 12월 13일 새벽까지의 그 몇 시간이, 전두환에게 적대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날 이후 최규하는 서서히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형식상의 대통령 자리에 앉아 전두환이 내미는 서류들에 이전보다 훨씬 우호적인 태도로 결재했고, 주위 사람들이 사임을 권유해도 뿌리친 채 대통령직을 유지했다. 5공화국 기간에는 전두환이 제공한 각종 의전을 받아들이며 ‘평화로운 정권 이양’의 모양새를 연출하는 주요 장식품으로 기능했다. 훗날 전두환 관련 재판들에 증인 출석요구를 받고도 일절 답하지 않았고, 역사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결연히 거부한 채 안락한 노후를 유지하다가 12·12의 진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갔다.
---「제1부 5장 | 반란의 날, 1979년 12월 12일」중에서

전두환은 철저히 ‘지금’, ‘여기’, ‘나’에 머물며 소탈하게 웃거나, 호쾌하게 농담하거나, 시원시원하게 살아 있는 인간의 육신에 위해를 가하라는 명을 내렸다. 전두환에게 ‘과거의 자신’은 타인과 다름없었다. 과거의 자신이 광주에 대해 무슨 말을 했든 어떻게 행동했든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저 ‘현재의 나’가 무사히 살아남아 안녕을 누릴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광주를 피상적으로, 철저히 자기 위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응한 것은 그런 그의 근본적인 기질, 즉 ‘현재, 여기, 나’만 보고 사고하는 특성, 자신과 관련 없는 타인에게 완벽하게 둔감할 수 있는 그의 탁월한 능력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제1부 7장 | 광주를 딛고 권좌에 앉다」중에서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전두환은 1980년 11대 대통령 취임 이후 모두 18차례 광주를 찾은 것으로 나타난다. 전두환은 임기 동안 매년 1~4차례 광주를 찾았다. 삼청교육대와 학원안정법 제정 기도, 건대 항쟁 과잉 진압은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증언과 문서가 수없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양쪽 모두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은 재임 당시 광주에 나름대로 (비본질적이고 즉흥적인 방식이었지만) 신경을 썼고, 동시에 삼청교육대와 같은 무도한 일 또한 끊임없이 시도했던 것이다.
---「제1부 8장 | 전두환의 특별한 가벼움」중에서

집권 기간 동안 전두환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경제발전’이었다. 보안사령관 시절부터 경제 전문가인 박봉환을 가정교사로 초빙해 따로 경제를 공부했던 전두환은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경제 동향 파악에 심혈을 기울였고, 지역 시찰을 할 때, 기자회견을 할 때, 기업 총수와 환담할 때 환율과 금리에 대한 토론을 벌이며 물가안정과 외채상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2부 1장 | 1980년대는 어떤 시절이었는가」중에서

전두환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국가의 정규군이 국민에게 총을 쏘아 대량으로 학살하거나, 언론을 통폐합한 뒤 일일이 보도지침을 내리거나, 특정 재벌을 대통령 마음대로 해체해버리거나, 특정 분야의 유력인사(주로 재벌에 해당하는)가 대통령과 독대해 직접 뇌물을 상납하는 일은 없었다. 대통령의 가족과 처가 쪽 친인척들이 대거로 공직에 진출해 천문학적인 돈을 거두어들이는 일도 없었다. 18년 동안 집권하며 ‘독재자’로 불렸던 박정희의 집권기에도 이런 수위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사회적 윤리의 한계선 혹은 하한선이라 불릴 수 있는 이러한 관례들은 5공화국 동안 일거에, 혹은 단계적으로 서서히 붕괴했던 것이다.
---「제2부 2장 | 한 명 대 사천만 명의 대결」중에서

5공화국 시기에도 수출주도와 정부의 계획경제라는 외형은 유지되었다. 때로는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던 서열 7위의 대기업을 하루아침에 해체해버리는 등 시장경제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지점에 선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일각에서는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직접 개입해 가격을 통제하거나, 행정 규제에 의해 수입을 억제해 시장의 가격 선정 기능을 왜곡시키는 정책이 근절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제2부 3장 | 대한민국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중에서

안정화 시책의 대표주자였던 김재익이 5공 정권에서 활약했던 시기는 국보위 경제과학 분과위원장으로 일했던 1980년 6월부터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희생당한 1983년 10월까지, 3년 4개월에 불과하다. 3년 4개월 동안 전두환이 김재익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였던 것도 아니었고, 김재익 사망 후에는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올리는 정책으로 돌아섰다가 안정화로 돌아오는 등 갈팡질팡하며 남은 임기를 보냈다. 특히 금융실명제 같은 제도는 정권 자체의 불법적이고 부패한 성격 때문에 끝내 실현하지 못했다.
---「제2부 4장 | 인재들을 팔과 다리로 삼아」중에서

명목상 국가 수반이었지만 전두환은 상대국의 수반에게, 특히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국가의 수반들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였다. 미국 대통령의 경우, 전두환과 정상회담을 하거나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펴려 할 때면, 거센 비난과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국민을 살상하고 대통령이 되었다는 내력 때문에, 미 행정부가 내린 결정에 대한 허가권을 쥔 미 국회에서 흔쾌히 예산을 내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2부 5장 | 정통성 없는 대통령의 속마음」중에서

그러나 전두환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누군가 접근해오길 기다리기보다 먼저 나서서 호감을 표하고 손을 내미는 편이었다. 백담사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분노하고 서운해했으면서도 노태우에게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했고, 재임 당시 그토록 제거하려고 노력했던 ‘용공분자’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자신을 ‘전임 대통령’ 자격으로 초대했을 때 반색하며 청와대로 달려갔다.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김영삼의 부고를 들었을 때도 장례식장에 가서 조의를 표했다.
---「제2부 6장 | 좋은 남편, 잔인한 학살자」중에서

이러한 그의 야망은 일부분 실현됐지만,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다. 평생 동지이자 친구인 노태우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노태우 정부의 검찰은 전두환 일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은 6공화국은 국가원로자문회의의 권한과 규모를 대폭 축소했으며, 노태우는 측근을 보내 전두환에게 외국으로 나가 있으라고 종용했다. 물러난 무인 대통령은 상왕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광주 특위와 5공 비리 청문회에 불려나가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김영삼 정부 시기에는 감옥에 수감되어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제2부 7장 | 안 되는 일을 되게 했던 시절의 끝」중에서

그러니 전두환의 퇴임 이후에 펼쳐진 상황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을 놓았지만 나머지 영역들은 애매하게 기득권과 관례의 영역에 고스란히 놓인 채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무정형의 상태, 박정희 사후 상황과 비교하면 ‘절반의 제헌 상황’이라 정의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 상황의 한가운데에 시뻘겋게 도사리고 있는 것이 내란을 일으켜 최고 권력자 자리를 꿰찬 ‘전임 대통령’의 처리 문제였으며,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그 문제에 대해 당면한 정치적 상황에 의해 즉흥적으로 대처하며 30여 년의 세월을 흘려 보내다가, 그 전임 대통령이 자유로운 상태로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장면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제3부 1장 | 네 살 손녀를 안고….」중에서

이제 노태우의 내면에는 새로운 자아상이 생겨났다.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 국민의 부름으로 국가 수반이 되어 정정당당하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대통령. 노태우의 가슴엔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아상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혈통에 근거해 나라를 통치할 권위를 얻었던 왕조 체제가 이제 역사책에만 존재하게 된 시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선명하게 새겨진 법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사회에서, 국민에게 선출된 대통령보다 더 정당한 지도자는 없었다.
---「제3부 2장 | 가장 무서운 적, 노태우」중에서

그 자신이 전임자와 한배에서 나온 형제였기에, 쿠데타라는 DNA를 공유한 혈친이었기에, 전임자인 전두환을 베는 것은 노태우 자신의 목을 베는 것과 다름없었다. 막상 전두환이 강원도의 산골짝으로 들어가 눈앞에 보이지 않고 여소야대 상황에서 우위를 점한 야당들이 5공 비리에 대해 포화를 퍼붓기 시작하자, 노태우는 외딴 절로 추방된 인물과 자신이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제3부 3장 | 몰락의 휴지기」중에서

그러나 김영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부르짖으며 두 전임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내게 된 제1 계기가 김영삼 자신의 선거자금 문제로 쏠리는 관심을 분산시키겠다는 의도에 있었다는 건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었지만, 김영삼에게 그것은 조금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죄인들을 단죄하고 그들이 빼돌린 검은 돈을 회수한다는 너무나 정당한 명분을 내세워 국면을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제 아무도 김영삼이 선거자금으로 쓴 천문학적인 돈의 출처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그 문제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누군가 다시 그 문제를 들고 일어난다면, 그때 가서 국면 전환용으로 뭔가를 또 하면 될 일이었다.
---「제3부 4장 | 단죄의 날, 그리고 김영삼」중에서

전두환을 이루는 또 하나의 핵심 특성은 수감 생활의 후반부에 흘러나온다. 재판이 끝난 뒤 수감 생활에 적응해 나가면서, 그는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었던, 그를 이루는 것 중 가장 강력하고 뛰어난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그것은 근면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근면함이었다.
---「제3부 5장 | 수감 생활」중에서

전두환과 김대중은 우리 현대사의 상반된 경향을 보여주는 양극단의 인물이다. 왕조시대에서 곧장 식민지 시대로, 식민지 시대에서 곧장 분단국 시대로 들어서야 했던 대한민국에서 전두환은 왕조시대의 잔재인 권위주의를 온몸으로 체현했던 인물이고, 김대중은 외국에서 갑작스럽게 이식된 민주주의 이념을 한국에 정착시키기 위해 인생을 걸어 투쟁한 인물이다. 전자가 무력, 물질, 승자 우선, 편법, 전근대를 상징한다면, 후자는 지성, 인권, 근대, 평화를 상징한다.
---「제3부 6장 | 대한민국 현대사의 극과 극, 전두환 VS 김대중」중에서

만일 ‘한국 정치판’이라는 게임을 설계한 프로그래머가 있다면, 그는 전두환이라는 플레이어를 고안할 때부터 노무현이라는 플레이어의 밑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전두환과 노무현은 양극단을 데칼코마니의 대칭으로 뽑아낸 것처럼 정확하게 반대되는 인물들이었다.
---「제3부 7장 | 대한민국 현대사의 극과 극, 전두환 VS 노무현」중에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으로 사망함으로써, 내면에 남아 있었을 전두환의 선량한 자아들도 함께 사망했다. 언제 공격당할지 몰라 겁에 질렸던 여린 자아, 자신이 저질렀던 일의 실체를 짚어보고 싶었던 지성적인 자아, 그때는 그렇게 해도 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큰 잘못이었다고 인정하고 사죄하고 싶은 자아, 화통하게 무릎 꿇고 사과한 뒤 용서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자아들도(나는 전두환의 내면에도 그런 게, 극소량이나마,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을 떠났다. 한 번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씨앗인 상태로 91살 무인의 신체에 잠재해 있다가, 고스란히 생명력을 잃었다.
---「제3부 9장 | 한 번도 자기 자신과 만나지 못했던 사내의 말년」중에서

반성 없이 살다 간 전두환의 33년이 남긴 후과는 그러나, 후손에게만 돌아간 것이 아니다. 임기를 무사히 마친 전두환이 반성하지 않은 채 삼십여 년을 살다 갔기에, 국가 공동체 곳곳에 그의 흔적이 강력하게 남았다. 그의 흔적은 구성원 각자가 했을 잘못을 덮어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거대한 검은 천이 되었다. 범죄자가 받아 마땅한 죄과를 받았다면 걷혀서 사라졌을 검은 천이 사회 전체에 묵직하게 드리워져, 신군부에 가담했던 이들이 여전히 누리고 있는 물질적·사회적 혜택을 찾아내고 회수하게 못하게 만든 것은 물론, 반대편에서도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제4부 1장 | 역사의 제단에 놓인 제물」중에서

이러한 역사를 훑어보면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전두환이라는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그 인물로 대표되는 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가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던 때. 강하고 유능하고 모범적인 지도자상이 국민의 내면에 심기고 통용될 수 있었던 때. 국민들의 마음속에 열심히 일하는 내가 ‘대한민국’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뚜렷이 있었던 때.
---「제4부 2장 | 영광이 사라진 시대」중에서

전두환 집권기였던 80년대, 사람들은 전화를 빌려 쓰기 위해 옆집에 찾아가고, 아래윗집이 만나서 함께 김장을 했으며, 일정 기간마다 ‘반상회’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구가 모여앉았다. 부모가 집을 비우면 아이들은 옆집이나 윗집, 아랫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옆집 아줌마와 아저씨에게 한문과 산수를 배웠다. 공휴일이 끼어 연휴가 생기면 이웃한 다른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해외순방을 다녀온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학교나 지역 단위 모임 구성원들이 대거로 동원되었고, ‘국풍 81’,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각계각층이 모여 연습과 훈련을 했다. 그 시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프로 야구는 각 지역 사람들을 한데 묶어 함께 환호하고, 응원하고, 슬퍼하는 관례를 만들어냈다.
---「제4부 3장 | 누가 왜 그를 그리워하는가」중에서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전우원의 고백은 그것과 조금 다른 문제다. 시스템과 법치로써 전우원의 행보를 뒷받침하는 것, 그렇게 해서 남은 신군부 세력이 죗값을 받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러나 당장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전두환 손자의 행보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전두환의 눈을 한 청년이 광주로 가 무릎을 꿇는 순간, 5·18로 자식을 잃은 유족이 그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 한국 사회에는 새로운 미생물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우원은 범죄, 나태함, 이기심, 미움, 적대감이라는 미생물로 가득 차 있던 강에 새로운 미생물을 방생했다.
---「제4부 4장 | 살아있는 자의 천형(天刑)」중에서

그러나 정치인 김영삼과 김대중은 전두환 처벌을 제 정치적 손익에 따라 이용했고, 국회는 전두환에 대한 당시 행정부 수반의 ‘이용 의지’에 따라 법을 만들거나 만들지 않았으며, 검사 역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불기소 처분을 했다가 몇 개월 뒤 행정부 수반의 의지를 따라 기소를 단행하는 촌극을 벌였다. 한국 사회의 결정권을 쥔 자리에 있는 누구도, 의지를 갖고 전두환을 단죄하려 하지 않았다. ‘선’을 지키기 위해 직을 걸고 나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셈이다. 군인이 자국 국민을 학살하는 참극이 벌어지게 만든 희대의 무법자가 제대로 단죄받지 않고 남은 생을 풍요롭게 보내다 이승을 하직하는 광경은 이렇듯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소중하게 지켜가는 일정‘선’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데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제4부 5장 | 선이 지켜지는 사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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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2차대전 이후 이른바 ‘신생독립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달성했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면, 자랑스러운 성취와 함께 부끄러운 국면들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할 수밖에 없다. 군사 정변이나 권위주의 정부가 그런 예 중의 하나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 어느 특정한 인물의 기질이 이 땅의 현대사와 만나 어떠한 변화를 잉태할 수 있었는지를 심도 있게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들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파악하는 데 이 책만큼 중요한 작업은 없으리라.
- 라종일 (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동국대 석좌교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민주화 이후 전두환에 대한 ‘전환기적 정의(transitional justice) 세우기’가 왜 실패했는가를 전두환의 개인사적 시간과 한국의 집단적 정치 시간의 맥락에서 추적하고 있는 뛰어난 저술이다. ‘특별한 가벼움’이라는, 전두환의 개인성에 대한 저자의 개념화는 주목할 만하다. 바로 그 특질이 전두환으로 하여금 죄의식 없이 학살을 저지르게 하고, 사과와 사죄 없이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끔 만든 근본적인 원인임이 분명하기에.
-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한국을 읽어내는 일이다.” 저자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국 정치사를 복원했다. 이승만부터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의 성격을 분석했고, 그것을 정치 환경과 연결해 정치사적 인과 관계의 흐름을 밝혀 서술했다. 이 책을 읽으면 과거와 오늘의 대통령은 물론 내일의 이상적 대통령까지 보인다. 미래 한국의 민주주의로 가는 도중에 이 책은 꼭 거쳐가야 하는 환승역이다.
- 정병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아은은 이 책에서 전두환이라는 개인과 20세기 한국의 사회적·역사적 조건이 만나 어떻게 현대사의 비극을 만들어냈는지, 그 맞물림이 오늘날 우리 삶과 공동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기록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는 전두환을 지나간 역사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바라보는 작업이 왜 중요하고 우리 사회에 간절히 요구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 정인관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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