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다하면 넌 충분히 용감하고 튼튼해져서 마치 날개가 생긴 것처럼 하늘로 날아갈 수 있게 된단다. 그리고 안전한 곳을 찾아 뿌리를 내릴 거야. 그러면 엄마처럼 크고 힘센 어른 나무가 될 수 있어. 좋은 부모는 언제나 자식에게 뿌리와 날개를 주는 법이지. 튼튼한 뿌리와 네가 가야 할 곳으로 용감하게 데려다줄 날개, 이런 게 바로 은유란다. 자, 이제 엄마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
“하지만 난 너무 작은걸요.” 루이스가 어둠 속 작은 틈바구니에서 말했다. “나는 자라면 작은 나무가 되나요?”
“넌 누구보다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어.” 엄마 나무가 말했다.
“조건만 맞는다면.”
“무슨 조건이요?” 루이스가 물었다.
“머윈, 네가 설명해 주렴.”
“비옥한 흙과 풍부한 햇빛, 그리고 깨끗한 물.”
--- p.60~61
하늘에서 가느다란 빛줄기가 내려와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아른아른 춤을 추었다. 씨앗들에게로 엄마 나무의 기쁨이 전해졌다. “게다가 바람이 너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르지.” 엄마 나무가 속삭였다.
“그런데 우리가 엉뚱한 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어떻게 해요? 또 얼마나 오래 날아가야 해요?” 머윈은 루이스가 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잔뜩 낮춰 물었다. “우리가 적당한 흙과 햇빛, 물을 찾지 못하면 어쩌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엄마 나무는 머윈을 진정시키려고 크게 쉼호흡을 해 보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씨앗 송이 안에서 루이스가 침묵을 깨고 엉뚱한 말을 꺼냈다. “난 달에 가서 뿌리를 내릴래요.”
“아주 멋진 생각이구나.”
“하지만 엄마” 머윈이 속삭였다. “루이스는 달에 갈 수 없잖아요.”
“머윈, 루이스가 꿈을 꾸게 두렴. 꿈을 꾸는 건 중요한 일이야.”
--- p.62
엄마 나무가 심호흡을 한 다음 말했다. “이제 날아갈 때야.”
루이스는 잔뜩 흥분했다. “우리 날아가는 거예요? 지금요?”
“엄마, 난 날기 싫어요.” 머윈은 루이스가 듣지 못하게끔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단 말이에요.”
“엄마가 한 말만 기억하면 돼.”
“얼마나 날아가야 해요, 엄마? 어디로 가야 해요? 만약 우리가 바라는 흙과 햇빛과 물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그럼 어떻게 돼요? 우린 죽어요?”
머윈이 묻는 동안에도 더욱 종잡을 수 없고 무시무시한 메시지들이 전령사들을 통해 엄마 나무의 뿌리로 전해졌다. 엄마 나무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동시에 계속해서 최대한 많은 물을 빨아들였다. 숲에 있는 다른 어린 나무들에게도 수분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두서없이 많은 생각들이 스치는 와중에도 엄마 나무는 어린 씨앗들을 가장 걱정했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뿌리와 날개를 기억하렴.” 엄마 나무가 모든 아이들에게 말했다. “뿌리와 날개를 기억해!”
거대 괴물들이 들이닥쳤다. 그중 겁에 질려 미친 듯이 도망치던 한 괴물이 불길을 피하려고 팔다리를 마구 휘두르며 곧장 엄마 나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괴물이 살기 위해 마구잡이로 버둥거린 꼬리가 위태롭게 허공을 가르며 엄마 나무에게서 잎사귀, 나뭇가지, 씨앗 송이 들을 베어 냈다. 씨앗들이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공포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 p.97~98
루이스는 곤충의 한쪽 날개에서 작게 갈라진 상처를 발견했다. 고치 안에서 긁혔거나 찢어진 걸까?
“이 상처 좀 봐, 오빠. 점박이가 잘 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날아?!” 머윈이 소리쳤다. “그래! 바로 그거야! 점박이를 타고 날아서 여기를 나가면 되겠다! 아름다운 산으로 바로 갈 수 있겠어.”
“그게 될까? 난 잘 모르겠어.” 루이스가 말했다.
“당연히 되지. 완벽한 계획이야.”
루이스는 점박이 옆에 앉아서 아직 붙어 있는 날개를 솜털로 살살 떼어 주었다.
머윈이 그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며 말했다. “조심조심.”
머윈은 남매의 미래가 갓 태어나 바들거리는 이 생명체에게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다.
--- p.220~221
“나의 역할은 다른 식물들이 자라게 돕는 일이거든, 그게 내 운명이야.” 낙엽이 말했다. “그러니 난 최선을 다해 너희를 도울 거야. 하지만 너희도 너희의 역할과 운명을 깨달아야 해.”
“우리도 우리의 역할과 운명을 알아!” 머윈이 소리쳤다. “우린 저 아름다운 산으로 가서 엄마 말씀대로 우리가 자라기에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해!”
“맞아,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은 모든 씨앗의 역할이자 운명이지.” 낙엽이 말했다. “하지만 너희에게 또 다른 역할과 운명이 있을 수도 있어.”
“또 다른 역할과 운명?” 머윈이 물었다. “됐어, 하나면 충분해!”
“하지만 만약… 너희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역할과 운명이 너희에게 주어졌다면?” 낙엽이 말했다.
--- p.274~275
공기 중에 불쾌한 유황 냄새가 그득했다.
“머윈 오빠.” 잠자코 옆에 있던 루이스가 입을 열었다.
“응?”
“나를 잊지 마.”
“너를 잊지 말라니? 무슨 소리야?”
그 순간, 거대 괴물의 꼬리가 남매의 씨앗 송이를 내려쳤을 때보다 백만 배 더 시끄럽고 무시무시한 폭발음이 들렸다. 끓어오를 듯 뜨거운 증기와 짙은 회색 재가 쉭쉭거리며 거칠게 터져 올라 대기를 뒤덮었다. 땅속 깊숙이에서부터 부글부글 끓는 시뻘건 용암이 높이 치솟아 하늘을 불길로 벌겋게 물들였다.
--- p.330~331
“루이스는 우리가 세상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머윈이 말했다.
“그건 루이스 말이 맞아.”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구해요? 엄만 우리가 뿌리를 내리기에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세상을 구해야 한다면 뿌리는 어떻게 내려요? 너무 위험하게 들리는걸요.”
--- p.434~435
하늘의 섬뜩한 흰색 빛이 더욱 환해졌다. 만약 이 행성과 충돌한다면 큰불이 나고, 폭풍우가 몰아치고, 온 세상이 앞으로 몇 년 동안 재와 연기로 뒤덮일 것이다. 행성의 모든 생명체가 위험해지리라. 그러나 루이스와 머윈은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고 위험해 보일지라도, 아주 작은 이들도 미래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