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3년 06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736쪽 | 1074g | 152*223*35mm |
ISBN13 | 9791193166147 |
ISBN10 | 1193166144 |
발행일 | 2023년 0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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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736쪽 | 1074g | 152*223*35mm |
ISBN13 | 9791193166147 |
ISBN10 | 1193166144 |
MD 한마디
과거보다 더 빠르게 이동하고, 연결되고, 원하는 걸 만들고 구매하는 시대다. 로봇, 인공지능 등 기술의 발전 속도가 놀랍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생계 걱정을 하며 산다. 왜일까? 기술 발전의 혜택이 소수에 집중되어서다. 번영을 위해서 필요한 건 역시, 정치다. - 손민규 사회정치 PD
프롤로그: 진보란 무엇인가 1장 테크놀로지에 대한 통제 2장 운하의 비전 3장 설득 권력 4장 비참함의 육성 5장 중간 정도의 혁명 6장 진보의 피해자 7장 투쟁으로 점철된 경로 8장 디지털 피해 9장 인공 투쟁 10장 민주주의, 무너지다 11장 테크놀로지의 경로를 다시 잡기 감사의 글 출처 및 참고 문헌에 관하여 참고 문헌 사진 출처 찾아보기 |
주기적으로 신간 목록을 훑어보다가 매우 인상 깊었던 저자의 신간을 발견하면
일단 책을 사놓고 보는 습성이 있는데, 이 책 또한 그랬다.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의 전작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너무 재밌게 읽었고
이번 책의 주제는 기술에 관한 것이라 호기심이 생겨 책을 사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 전개 방식은 그의 전작과 비슷하다.
커다란 핵심 주제 하나를 잡고 이를 뒷받침하는 보조 주장들,
이것들을 설명하는 방대한 양의 과거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인간 사회의 물질적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의 발달이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고 있다.
저자의 전작이나 저자에 대한 정보가 있는 분이라면
당연히 이 분의 기본적인 정치적 성향이 미국식 리버럴에 가깝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러한 주된 인식 속에서 기술 권력과 진보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AI 기반의
전방위적 감시로부터 심각한 프라이버시와 자주권의 침해를 받는다는 소식을 접한다.
현재 중국은 그러한 기술을 국내 다른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수출 중인데,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를 벤덤식 파놉티콘의 현시로 비유하며
이러한 기술 활용 방향이 불가피한 것이 아님을, 즉 기술의 인도적 활용 방식을
다른 민주 국가라면 민주적인 방식의 통제를 통해 바꿀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핵심 주장 또한 메시지가 매우 또렷하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는 빈곤과 번영을 가르는 핵심 요인으로써 '제도'를 강조하고
동시에 지리적, 역사적, 인종적 조건이 주요 변수가 아님을 강하게 논설했다.
특히 지리적 요인이 번영과 빈곤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얘기하면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비판하고 남한과 북한의 예를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런 복잡한 사안에 있어서 현실은 그보다 더 미묘할 가능성이 높다.
즉, 국가의 정치체제의 기본 작동 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는 100년 단위 타임 스케일에선
제도가 핵심 변수일 수 있지만, 10000년 단위의 인류사 타임 스케일에선
기후, 자연환경, 지리, 생물의 분포 같은 우연적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내가 이 책들을 읽고 종합하는 과정에서 도출한 것인데,
저자의 경우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론들을 종합한다기보다
배제하는 방식으로 주로 자신의 논의를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느낀다.
이 책에서도 이러한 저자의 성향이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일단 기술에 대해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며 러다이즘을 지지하는 게 아니고
보편적 기술의 활용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까지 착취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과거의 사례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보편적 기술이란 우리의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 기술로써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수력, 풍력, 전기, 교통, 통신, 그리고 최근의 AI 기술 같은 것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대표적인 예로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후 100년 동안 영국의 영세농들이
자립적인 삶의 방식을 잃어버리고 도시에 편입되어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사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고도의 자동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겹치며
전세계적으로 성숙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1970년대 이후 중산층이 적어지고 있는 추세다.
10년 주기의 경제 위기로부터 '고용 없는 성장'의 방식으로 회복을 반복함으로써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그로 인한 정치적 압력이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우리가 현재 AI와 플랫폼 기술들을 민주주의에 이로운 방향이 아니라
그와 상반되는 방향으로 사용함으로써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 활용 방향이 그것을 통제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사견을 덧붙이자면, 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총, 균, 쇠>의 주장을 종합했던 것처럼
이 책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부는 동의하면서 일부는 다른 의견을 종합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폭넓게 사회에 여러 형태(상품, 미디어, 플랫폼, 서비스 등)로
제공하는 핵심 의사결정자들은 자신의 기술이 사회, 정치,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경우 적은 부분 미리 예측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에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러 우연적인 사건들과 사회적 동학이 결합하여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저커버그는 2016년 대선에서 알트라이트를 비롯한 일부 극단 세력들의 가짜 뉴스 공세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일정부분 알았다는 것은 정황상 거의 확실하지만,
그로 인해 향후 몇 년간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에 대해선 거의 몰랐을 수 있다.
또한, AI와 바이오 기술 같은 경우에도 대부분의 공대 출신의 기술 개발자들은
자신이 만든 기술이 사회에 어떤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일각에선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각성하여 기술의 파급력에 대해 미리 예측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기술의 본성을 생각해 보면 거의 현실성이 없다.
다만 기술 개발과 확산이 먼저 이뤄진 후 실증적인 연구와 분석을 통해서
어떤 부정적인 부작용(예를 들면 저자가 말하는 감시나 민주주의의 후퇴)이 있다면,
향후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재의 지배적인 기술 기업들을 보면 국내외를 불문하고 이러한 모습조차 보이고 있지 않아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민주적 정치력의 힘을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동감한다.
정리하자면, 기술과 개발자들은 기술의 방향을 의도적으로 정하기도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방향이 의도치 않게 전개되기도 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전적으로 기술의 방향을 사회가 통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보다 더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기술의 부작용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러한 일을 할 것이라 기대하기 보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일부 적절하고 바람직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저자의 해법은 크게 세 가지 갈래가 있다 (p. 551).
첫째는 내러티브와 규범을 바꾸는 것,
둘째는 길항 권력을 일구는 것 (노조를 비롯한 기타 시민 단체),
셋째는 구체적인 진단과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책의 주장이 큼지막한 것처럼 저자의 해법도 지엽적인 것보다 큰 방향성에 치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중산층의 빠른 이탈과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결과가
혼인율과 출생률의 급격한 하락, 그리고 천민자본주의의 대중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초대형 언어 모델 AI 기술을 보유한 전세계에 몇 안 되는 나라이고
IT 인프라도 세계 최정상급이라는 점, 더불어 로봇 밀도가 압도적 세계 1등이라는 점에서
생산의 자동화와 AI의 사회경제적 파급력이 사회 전반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책이 보여주는 방대한 역사적 사례와 저자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 매우 시의적절하고 커다란 시사점을 안겨준다.
기술과 사회의 바람직한 동행이 어떤 방향이 되어야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