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똬리나무’는 정식 학명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또한 공식적으로 그런 나무는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현장에 있던 조사대원 중 하나가 ‘밑바닥에 이런 게 똬리를 틀고 있었네!’라고 말한 것이 어쩌다보니 이 괴생명체의 이름처럼 굳어진 것일 따름이다. 제7국─참고로 보안부의 공식 부서는 제6국까지이다─에선 이 나무를 서류번호 504호라고 불렀다.
23. 무엇보다 먼저 식물학자로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식물인가? 마치 물푸레나무를 연상시키는 넓은 잎사귀가 있되 그 색감은 거뭇했고, 몸통은 생강처럼 뿌리줄기로 뻗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괴이한 것은 햇볕이 없는 동굴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자라날 수 있었느냐는 점이었다. 똬리나무는 생물학의 기본 법칙들을 모조리 무시했다.
170. 기밀 문건들 중에선 놀랍게도 비뫼시에 대한 첩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건 적대국의 동맹국의 적대국의 동맹국의 적대국의 바로 그 동맹국의 약점을 갖고 있는 건 언젠가 유용하리란, 복잡하고도 지난하게 서로 물고 물리는 국제적인 정보 전쟁의 불가피한 결과물이었다. 1092년 주 비뫼시 대사관에선 느낌표까지 붙은 전보를 보냈었다: 도시 밑에 나무가 있음!
530. 똬리나무, 이리저리 뒤엉킨 그 뿌리들이 정말로 도시를 떠받치고 있었던 비밀스런 토대라면, 그것은 참으로 짓궂은 일이었다. 그 나무는 나를 시체 벌판 속으로 내다버린, 송두리째 빼앗고서 아무렇게나 방치했던, 차갑고 배고프며, 또한 외롭고도 외롭기만 했던 세계, 바로 그 세계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그건 정녕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736. 밤엔 그림자가 없다. 복된 일이다. 혹자는 그림자를 두고 빛의 얼룩이라 했지만, 그건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백에 불과하다. 빛이야말로 어둠의 얼룩인 까닭이다. 태양, 그 영원한 불꽃 앞에 진절머리가 난다. 불멸의 권태를 먹고 자란 나무들이 깊숙이 뿌리 뻗어 똬리를 틀고 세계를 동여맨다. 그러나 심장은 어둠 속에서 뛰고, 또한 그곳에서 멎는다. 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