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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역에서 걸어서 8분, 빈방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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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386g | 128*188*30mm
ISBN13 9788947549103
ISBN10 89475491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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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긴 주둥이가 달린 포트로 뜨거운 물을 부었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유리 서버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커피를 안 마시면 하루가 시작되질 않아.”
아빠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커피를 마시는 게 고역이었다. 어른들은 어떻게 이렇게 검고 쓴 것을 맛있게 마시는지 정말 신기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아침마다 커피 한 잔을 빼먹지 않고 마시게 됐다. 호박색 물방울이 깨끗하게 다 떨어졌다. 서버를 흔들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맛있어지게 해주세요.’
청자색 컵 두 개. 까만 테두리와 잿빛 테두리 각각에 커피를 따르고 거실로 이동했다. 내닫이창에 놓아둔 액자 속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제1장 오우치 카페-카라」중에서

눈을 감았다. 지금은 밀려왔다가 돌아가는 파도 소리에 집중해보자. 유이가하마 해변의 파도는 온화했다. 바짝 다가오듯이 가까이 와서 무언가를 얻었다는 듯 조용히 물러났다. 옛날에 카라네 아빠가 말했다.
“아무 생각 안 해도 돼. 마음이 버거울 때는 그냥 파도 소리를 듣는 거지. 가마쿠라의 바다는 늘 다정하거든.”
눈을 감았다. 지평선 위의 오렌지가 짙어져 하늘에 번져갔다.
---「제2장 오징어먹물-미키코」중에서

아침 인사가 회전음에 지워졌다. 재킷을 벗고 에이프런을 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오른쪽 안에 있는 로스팅기 앞에 사각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가 배기 댐퍼를 열고 있었다. 탁 타닥 하는 크랙 소리가 가로로 긴 공간에 울려 퍼졌다. 드럼의 온도가 올라가 원두가 튀기 시작한다는 신호다. 이걸 ‘1차 크랙’이라고 부른다고 엊그제 막 배운 차였다. 크랙 음은 원두의 개성이었다. 연주하는 음악은 원두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했다.
---「제4장 러브애플-아유미」중에서

연못 부근에서 거북이가 엎드려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분홍빛 꽃잎이 춤을 추며 잿빛 등에 떨어졌다. 쓰루가오카하치만구 연못을 바라보는 벤치에 앉은 채 지에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희미하게 보랏빛이 감도는 하늘에 새의 날개 같은 구름이 떠 있었다. 어제부터 24절기의 새로운 절기인 청명에 들어섰다. 아침 햇살에 비춰져 모든 만물이 생기로웠다. 한 달 전에 이곳으로 왔다. 그때는 가와즈 벚꽃과 히간 벚꽃이 아름다웠다. 지금은 왕벚나무가 연못을 둘러싸다시피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제5장 비화낙화-지에코」중에서

여전히 잿빛 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올려다보는 계단 양 가장자리에는 알록달록한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힘껏 발 디디듯 위로 올라갔다. 문득 눈앞에서 흔들리는 한 송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다른 꽃에 비해 아직 푸른색이 되기엔 멀었다. 그런데도 연두색 꽃받침은 여기저기 연보랏빛이나 하늘색으로 변한 모습이었다. 파랑으로 가득 채우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조금 더 있으면 도착할 거야. 이 계단은 제야의 종처럼 108개나 있어. 이걸 넘어서면 절이 있고. 엄만 여기서 내려다보는 가마쿠라 경치를 너무 좋아해.”
---「제6장 수국 파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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