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 아프네. 도와주고 싶어도 어떤 식으로 도와주어야 할지 모르겠고.”
한참 후에 대장이 침묵을 깼다.
“도와준다고? 사람을?”
나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다들 왜 그 사람한테 신경을 쓰고 난리야? 왜 사람한테 친절하냐고? 버림받은 주제에 사람 편을 들다니 진짜 한심해. 그런다고 그 사람이 고맙다고 할 거 같아? 어림도 없지, 사람 눈빛만…….”
“야. 나는 버림받은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얼룩이 너는 귀를 꽉 틀어막고 사는 거니?”
바다가 소리를 빽 질렀다.
바다는 버림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흥분한다. 버림받은 게 아니라고 악을 쓰며 대든다.
바다는 산길에 버려졌다. 뭐, 자기 말로는 주인이 산길에 차를 세우고 바다에게 오줌을 누라고 자동차에서 내려 준 거란다.
--- p.13~14
“얼룩이라는 이름은 여기에 와서 붙여진 이름이야. 똥 더미 위에서 살던 미소 너도 이름이 있는데 이름이…….”
“야!”
나는 바다 말을 싹둑 잘랐다.
“이름이 있어서 그렇게 좋냐? 이름이 있다는 건 이름을 지어 준 주인이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이름을 붙여 준 주인한테 버림을 받았다는 증거지. 그런데도 이름이 있어서 좋냐? 나는 이름은 없지만 버림받지는 않았어. 나는 탈출했어. 용감하게 탈출했다고, 알아? 버림받은 주제에 이름 있다고 그렇게도 자랑하고 싶냐? 버려진 게 자랑할 만한 거야?”
“얼룩아, 그만해. 그만하고 빵 먹자.”
미소가 말렸다
--- p.48~49
“대체 누구야?”
번개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제대로 화가 난 것 같았다. 어젯밤 햇반 하나가 없어졌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돼. 범인을 잡아야 해. 너냐?”
번개가 나를 바라봤다.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너야?”
번개가 바다를 쏘아봤다.
“마, 마, 마, 마, 말도……. 나, 나는 너희들도 알다시피 어제 아팠어. 아파서 꼼짝도 못 했는데 무슨.”
바다는 날카로운 번개의 이빨에 겁먹었는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니면 미소 너?”
미소가 대답 대신 코를 찡그렸다. 넓적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미소 얼굴에 주름이 두 배는 더 생겼다.
“모두 아니면 대체 어묵과 햇반 한 개는 누가 가져갔다는 말이야? 설마 대장은 아닐 테고.”
번개가 대장을 쏘아봤다. 대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 p.81~82
“가져가라.”
그 사람이 힘겹게 말했다. 순간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얼른 얼굴을 돌렸다.
“이, 입 안이 다, 다 터져서 못 먹는다. 가져가서 먹어라. 머, 먹지는 모, 못하지만 고, 고맙다. 너, 너희들도 배고플 텐데.”
그 사람이 나를 향해 햇반을 던졌다. 하지만 햇반은 그 사람 가까이에 떨어졌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아는 사람은 저렇지 않았다. 농장 주인과 트럭 주인은 저렇지 않았다. 입이 터져서 먹지 못할 상황이라도 절대 남에게는 주지 않았을 거다. 당장이라도 족발과 햇반을 물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 가까이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뒤돌아섰다.
“드, 드, 들개야. 들개야.”
그 사람이 자꾸 나를 들개라고 불렀다.
--- p.123~124
“혹시 들개라고 들어 봤나? 나처럼 생긴 개를 들개라고 하나? 내 품종이 들개인가?”
나는 넌지시 물었다. 흰 개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푸웃.”
흰 개가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가 들개인 거는 맞아. 사람들은 버려져서 산으로 들어가 사는 개들을 들개라고 부르지. 사람들은 들개들을 아주 싫어해. 산을 내려와서 가축을 공격하고 먹을 걸 훔쳐 간다고 말이야. 어떤 들개는 사람도 공격했다고 하던데 그건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친구는 들개, 나는 떠돌이 개. 사람들은 나처럼 길거리를 떠돌아 다니는 버림받은 개들을 떠돌이 개라고 부르지. 하지만 품종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야. 그럼 조심해서 잘 가.”
--- p.15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