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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줍을 하였다 아뢰오 ·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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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백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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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노란 털빛의 새끼 고양이를 주워 안았다. 품속의 고양이가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았다.
“애옹.” 내내 근엄하기만 하던 임금의 시선이 사랑에 빠진 반짝이는 눈빛으로 변했다. “금손! 너는 이제부터 금손이다.” 이른바 냥줍을 하게 된 것이었다. --- p.9 모두가 금손을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금손이 세자궁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엔 한바탕 큰일이 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세자가 금손만 만나면 심한 기침과 콧물, 홍반, 가려움 등의 증상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원인 모를 증상은 궐내에 흉문이 돌게 만들었다. 성인이 된 지 한참인 세자에게는 아직 후사(後嗣)가 없었다. 신하들은 차마 임금 앞에서 직접적으로 후사에 대해 논하진 못하였으나, 세자를 옹호하는 ‘소론’ 측과 세자 교체를 주장하는 ‘노론’ 측으로 나뉘어 다투고 있다는 것은 궐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속사정이었다. --- p.11 “간밤에도 유기아가 사라졌습니다. 한 달 동안 벌써 다섯 번째입니다. 나리께서는 포교이시고, 대감 댁 자제이시니 윗분들께 말씀이라도 건네 볼 것을 약조해 주신다면, 그 조건으로 돕겠습니다.” 쪼깐이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근데 우리 나리는 서얼…” “알겠네!” 변상벽이 쪼깐이의 말을 끊으며 사람 좋게 빙그레 웃어 보였다. “내 꼭 찾아본다고 약조하지.” --- p.71 “측은한 마음은 알겠네. 허나, 고양이든 유기아든, 아무리 밥 먹이고 챙겨 줘 봤자 기껏해야 좀도둑밖에 더 되는가?” “….” “괜한 데다가 정 쏟지 말란 말일세. 내 말은.” 묘마마가 똘이에게 마실 물을 내주며 말했다. “윗물이 똥물이래도 아랫물은 맑아야지 않겠습니까.” “응?” “모르시면 됐습니다.” --- p.74~75 |
서얼 출신으로 평소 집안에서 냉대받아 왔던 포교 변상벽은 불성실한 태도 탓에 직업을 잃고, 가족뿐 아니라 직장 동료에게도 무시당하는 신세가 된다. 그즈음 아끼던 고양이 금손을 잃어버린 임금이 고양이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벼슬을 내리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변상벽은 출세의 꿈을 안고 수사에 나선다. 노비 쪼깐이, 밀매상 봉식이, 길고양이와 빈민촌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묘마마와 협력해 단서를 추적하던 변상벽은 금손 실종 사건이 왕권을 둘러싼 음모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궐내 실세의 비밀을 눈치채 버린 변상벽 일행, 부패한 자들의 표적이 된 빈민촌 아이들과 길고양이들은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에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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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같은 왕마저 무장해제, 그야 고양이니까
숙종은 사극에 비교적 자주 등장한 인물이다. 붕당을 이용해 평생토록 강한 왕권을 유지하면서 극적인 사건을 많이 일으켰기 때문인데, 특유의 불같은 성격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토록 화가 많은 임금을 누그러뜨린 존재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고양이다. 당대의 문인 김시민이 지은 〈금묘가〉라는 시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이 노란 고양이는 임금이 “금묘야.” 하고 부르면 제 이름을 안다는 듯 나타났다고 한다. 곁에 사람을 잘 두지 않는 임금과 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으며, 날이 추워지면 임금 옆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잠을 청했다. 사람들은 고양이가 무슨 일을 했기에 숙종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야,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사뿐사뿐 걸어가 고개를 들어 잠깐 눈을 맞춘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성은이 냥극하옵니다』의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금이 ‘냥줍’을 감행한 순간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임금 품에 안긴 새끼 고양이는 “애옹.” 하고 울었고, 그때부터 이 깜찍한 생물은 정치적 음모와 추리 활극의 중심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존재감을 뽐내며 이야기에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선한 이들이 안겨 주는 편안한 웃음 『성은이 냥극하옵니다』의 또 다른 힐링 요소는 선한 인물들이다. 출세 욕심에 임금의 고양이를 찾아 나섰다가 빈민촌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그들의 삶에 스며드는 전직 포교 변상벽, 변상벽의 가짜 무용담과 가짜 병법서를 시종일관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포졸이 되기 위해 정진하는 노비 쪼깐이, 도성 내 빈민촌에서 가족을 잃은 아이들과 떠도는 고양이들을 돌보는 묘마마 등 주인공 일행을 비롯한 등장인물 대부분은 타인에 대한 연민,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속 중심에 두고 있다. 이들이 잊을 만하면 허술한 언행을 보여도 비웃기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선한 인물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이다 삐끗하거나 본인의 솔직한 마음을 툭 드러내는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내곤 하는데,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아니기에 불편함 없이 시원하게 웃을 수 있다. 이러한 섬세함은 인물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 안에는 왕과 노비, 70대 노인과 예닐곱 살 아이, 타고난 성별을 감추는 옷차림을 한 사람, 신체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공존한다. 또한 그 모든 인물이 해당 신분, 연령, 성별, 장애에 씌워진 편견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미소가 지어지는 활약상이다. 상냥한 연대와 반듯한 성장의 가치 사라진 임금의 고양이를 찾고 그에 얽힌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경쾌하게 담아낸 이 작품의 표면 아래에는 우리 시대의 아픔과 맞물리는 이야기들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랜 가뭄 탓에 도박판으로 몰리는 백성들, 도박장의 뒤를 몰래 봐주는 관리들, 그들의 시야 바깥에 조성된 빈민촌. 빈민촌과 그리 멀지 않은 왕궁 안에서는 파벌 싸움이 한창이지만, 당쟁의 주제는 빈민 구제가 아니다. 폐위된 왕비의 아들인 세자에게 넘어갈지도 모르는 왕위 계승권 때문에 누군가는 자객까지 고용한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데 혈안이 된 그는 약자를 험히 다루는 자와 결탁하고, 이로써 구중궁궐 내의 암투는 빈민촌 주민들의 고통과 직결되고 만다. 얽히고설킨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연대와 성장이다. 주인공 변상벽이 아무리 집요한 포교라 해도, 궐내의 일과 연결된 사건을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다. 그는 관찰력이 뛰어난 쪼깐이가 찾아낸 단서를 활용하고,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묘마마와 함께 ‘묘집사’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신분을 숨겨야 할 일이 생기자 변장에 일가견이 있는 밀매상 봉식이에게 신세를 지며, 출입이 금지된 구역에 접근하기 위해 평소 멀리하던 형 변빈을 찾는다. 그사이 변상벽은 그들 모두와 예전에 비해 수평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예전에는 얼씬도 않던 빈민촌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기에 이른다. 자기의 이익만을 좇던 그는 어느새 힘겨운 시절을 견디는 백성을 대변하는 존재가 되어 간다. 절망이 희망보다 쉬운 시대에는 착한 이야기가 소중해진다. 선량함의 가치를 재미있게 전하기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이야기다. 그러한 이야기는 상냥한 마음을 품으려 애쓰고, 반듯한 성장이 언제든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쳐 갈 때 웃으며 손을 잡아 주곤 하는 것이다. 선한 의지는 고양이처럼, 정성을 들이면 줄을 매어 놓지 않아도 곁에 머물며 행복을 선사한다. 『성은이 냥극하옵니다』가 책장 너머로 전하는 메시지다. |
처음에는 햇빛 따뜻한 오후에 하품하는 고양이처럼 편안하게 휴식하듯이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역사 속의 사회상을 다룸으로써 오늘날을 돌아보게 하는 문학의 가치가 마음속에 남게 되는 소설이라고 하겠다. 조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양이를 다룬 장쾌한 서사시라고 하면 너무 무거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겠지만, 그런 서사시를 야옹거리는 고양이 목소리로 읽어 준다고 하면 사뭇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 곽재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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