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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을 배우다

: 인지장애를 가진 딸을 보살피며 배운 것

리뷰 총점9.9 리뷰 9건 | 판매지수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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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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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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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620g | 148*210*23mm
ISBN13 9791192908854
ISBN10 119290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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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인간, 인격, ‘우리’ 도덕적 공동체의 성원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물어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종종 다음 질문과 결합한다. “우주의 다른 모든 것과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우주의 다른 모든 것과 인간을 분간하는 집착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의식? 영혼? 언어?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 웃음? 놀이?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동료 철학자들이 세샤와 같은 사람의 도덕적 가치(온전한 인격성)를 질문하기 전까진 무엇이 도덕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을 만드는지를 말할 필요성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p.13

이성의 능력이 없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이토록 놀라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매일 하면서, 어떻게 이성을 인간 능력의 만신전 최고의 옥좌에 올리는 글을 계속 읽고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딸을 키우면서 어떻게 언어를 인간성의 표지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내 아이가 상호 계약적 합의에 참여할 수 없음이 명백한데, 어떻게 정의를 상호 계약을 통한 합의의 결과로 독해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딸은 내가 공언한 철학적 믿음 대부분을 거짓말로 만들었다. 그 믿음은 내가 받아들인 신조였을 뿐인가. 내 딸과 같이 사랑스러운 사람과 함께 존재한다는 생생한 현실과 내 철학적 믿음을 조화시킬 수 있을까?
--- p.44

내가 말하려는 내용의 대부분은 장애를 가진 삶이 지닌 가능성에 관해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우리의 지식은 무지라는 어둠에 둘러싸인 불에 비유할 수 있다. 불이 타오르며 어둠이라는 원은 더 커질 것이다.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우리가 얼마나 알지 못하는지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철학적 숙고에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될수록, 우리 지식의 원이 넓어질수록, 우리가 얼마나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도 커질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적 담론을 형성해온 직관과 경험을 만든 마법의 원을 넘어설 때, 우리는 숙고의 확실성에 관해 더 겸손해질 것이다.
--- p.56

장애운동가와 학자 들은 장애인의 의존이 비장애중심주의 사회의 구성물이며 이에 따라 장애인은 낙인과 배제에 처한다고 주장한다. 대신 나는 의존이 아닌 독립이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한다.
--- p.61

그저 살아 있고 세상에 있다는 데에서 기쁨을 얻는 것은 귀한 재능이다. 나는 이것을 내 늙은 어머니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행하는 사람이었다. 옷을 꿰매고, 뜨개질하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타인을 돌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잃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점점 더 원통해하며 죽음을 바라게 되었다. 어머니는 돌봄이 필요했지만, 자신이 돌보는 자, 행위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거부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야 우리는 어머니에게 뛰어난 돌봄제공자를 연결해드릴 수 있었다. 어머니는 점차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돌봄받고 그들과 함께하며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는 보행 보조기에 앉아 외출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식물과 나무를, 놀고 있는 아이를 보는 것을, 스쳐 지나가는 산들바람을 즐겼다. 내 인생 처음으로 나는 어머니가 존재를 그저 즐기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가 점차 삶의 마지막 단계에 적응하면서 원망과 억울함은 사라져갔다. 그는 침착하게 자신의 죽음을 마주했다. 세샤는 어머니가 길고 온전한 삶의 마지막에만 얻었던 지혜를 지니고 있다. 사랑, 기쁨, 그저 존재함의 재능. 아마 인지장애의 경험을 관통하며 얻은 것일 테다.
--- p.114

내재적 가치의 영역으로부터 특정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마치 목탄화를 제외한 모든 예술 작품이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목탄화를 제거하면 무엇이 사라지는가? 사라지는 것은 단지 목탄화로 완성되었을 수도 있는 모든 예술 작품뿐이다. 그 이상 구체적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사라지는 것은 단지 그 사람들뿐이다. 그 예술 작품이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면, 실질적인 가치 손실이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실질적인 가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몇 년 전에 말한 것을 여전히 믿는다.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사라질 때마다 세계는 줄어든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선언 “세계는 사실의 총체다.”를 수정하여 말한다. “세계는 내재적 가치의 총체다.”
--- p.165

코미디언 리처드 프라이어(Richard Pryor)는 중년에 다발성경화증에 걸려 한창 인기 있을 때 경력을 마쳐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것은 “축복입니다. …… 그것은 나를 느긋하게 그리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익숙한 방식으로 걸을 수 없고, 걷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 그것은 배우기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삶에서 누구도 신뢰해본 적이 없으며, 신뢰를 배우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 p.196

딸의 확장되고 극단적인 의존을 통해 뚜렷하게 의존을 바라보면서, 나는 많은 의존이 사회적 구성물인 만큼 독립 또한 사회적 구성물로 이해하게 되었다. 게다가 세샤의 의존은 단순한 부담이나 문제가 아니었다. 때로 특별한 종류의 상호작용이자 친밀감의 계기였다. 이 극단적인 의존은 우리 모두가 삶의 어느 순간에 경험하는 의존을 새롭게 조명했다. 그것은 내 딸의 가르침 중 가장 소중한 것에 속한다.
--- p.240

토빈 시버스는 “장애가 소란을 피운다.”라고 말했다. 의존의 필연성과 장애에 대한 취약성을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없기에 우리는 이런 것을 투명 망토로 가리거나 반대로 낙인을 찍어 초가시화한다. 현대 사회는 ‘건강하고 원기 왕성한’ 노동자의 독립을 가치 있게 여기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온전히 기능하는 독립적인 성인 노동자에 엄청난 가치를 두는 사회의 이면에는 낙인찍히고 유아화된 장애인 개인이 위치한다.
--- p.245

독립을 옹호하는 논증의 다른 문제는 장애인 독립의 허용이 궁극적으로 공적 지출을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독립생활을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이 시설 거주와 견줘 더 적다는 데 기반한다. 게다가 보조를 통해 장애인은 사회의 생산적 구성원이 될 수 있으며, 필요한 서비스의 비용을 상환하고 중요한 물질적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런 공리주의적 논증은 장애인이 사회의 ‘부담’이라는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받아치지만, 스스로 비용을 낼 수 없는 의존인을 공공이 책임져서는 안 된다는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 p.249

절대적 독립은 거짓이지만 의존에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면, 우리는 독립을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의존에 대한 필요, 즉 모든 사회를 특징짓는 불가분한 상호의존의 핵심에 있는 필요를 사회적 구조에 엮어 넣지 않는다면 상대적 독립마저도 누군가의 희생을 초래할 것이다. 나는 장애를 통해 의존을 관리하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기를 제안한다. 존재하지 않는 독립을 향한 돈키호테적 여정에 ‘능력 있는 사람(abled)’과 함께하기보다는, 의존의 적절한 관리를 통해 상대적 독립을 목표로 해보자고 말이다.
--- p.266

돌봄이 여성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본능적, 자연적 경향으로 간주되지 않게 된 뒤에야, 우리는 돌봄을 비자연화, 비젠더화하고 도덕적 행위의 양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줄리아 드라이버(Julia Driver)의 표현처럼, 그럼으로써 페미니즘은 도덕철학자가 고려해야 할 자료 은행에 더 많은 데이터를 입력하게 되었다.
--- p.272

돌봄윤리에 자주 가해지는 비판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온다. 그들은 니체의 말처럼 돌봄이 “노예 도덕”이라고 주장한다. 돌봄윤리에 대한 페미니즘 비평은 여성이 돌봄의 윤리를 보여주는 것은 경험적으로 사실이지만 여성의 전통적인 노동으로 인한 종속에서 나온 윤리이며, 관습과 법이 여성에게 그런 노동을 수행하도록 강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이런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전통적인 역할보다 해방에 더 맞는 윤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비판은 장애인과도 관련되어 있다. 만약 장애인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요구해야 한다면 왜 “노예 도덕”, 즉 무력한 자의 도덕에 찬성해야 하는가?
이런 비판에 대응하며 배려윤리 지지자는 예속된 위치에서 나온 윤리는 예속된 자에게 목소리가 있음을 드러낸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다른 목소리는 압제적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주입할 수 있다.
--- p.292

내 딸을 보살피며 배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어디에나 보살핌의 상황에는 존중과 주의를 받아야 하는 주체와 행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의지가, 세계에서 자신을 느끼고 싶어 하는 방식이,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직관적 감각이 있다. 개인이 존중을 받기 위해 자율성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 p.335

친한 돌봄제공자가 내 딸 앞에서 딸의 동안 외모의 비결은 세금이나 고지서를 내는 것 같은 걱정이 없어서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가려운 곳을 긁을 수 없고, 불편한 자세를 스스로 움직여 고칠 수 없으며,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없는 등 세샤에게도 걱정거리가 많다고 받아쳤다. 내 딸은 나에게 얼굴을 돌려 크게 웃으며 나를 안으려 했다. 그 일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반응을 목격한 다른 이들처럼 나 또한 놀랐다. 세샤가 어조만 파악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샤가 말을 이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사실 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결국 세샤도 40년 넘게 사람들의 말을 들어 왔으니 말이다.
우리는 뇌가 신체의 다른 부분을 특정 방식으로 지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중증 인지장애를 가진 사람의 (신체적) 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 그의 주관적 세계에 대해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
--- p.371

연인이 아닌 한, 몸은 타인에 관한 앎의 원천에서 거의 중요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몸의 물질성은 당연히 중요하다. 우리 몸의 현시가 아니라면 목소리는 무엇이며, 정신의 물질화가 아니라면 언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항상 타인을 몸을 통해서만 알지만, 그렇지 않은 척한다. 정신 속에 잠복한 무시당한 몸, ‘합리’ 속에 잠복한 억압된 정서, 자-존(in-dependence) 속 숨겨진 의존을 통해 드러난 것은 페미니즘의 지혜였다.
--- p.392

세샤의 경우 그것은 그 자체로 어떤 것이다. 그 ‘조용함’은 세샤의 몸에 위치한다. 그 ‘정중함’은 세샤의 피부에놓인다. 그 부드러움, 그 사랑스러운 향기, 세샤의 친절한 만짐. 세샤는 얼마나 완벽히 우리의 몸이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 p.394

하지만 대부분의 순간 내가 이해하는 것은 거기에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의도하며, 욕망하며, 느끼며, 이해하는, 고유한 인격이. 세샤의 몸이 세샤의 영혼이다. 주체가 몸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람만큼, 나에게 ‘영혼’에 관해 말하게 만드는 다른 누구를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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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장애 운동은 ‘자립’을 지향하고 있으며,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이 풀뿌리 조직으로서 활발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것 하나. 자립은 의존의 반대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연립(聯立)’이며, 돌봄은 누군가는 주고 누군가는 받는 일방적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상호작용’이라는 것. 에바 키테이의 『의존을 배우다』는 이 같은 진실을 더욱 두텁게 사유하도록 이끄는 귀중한 철학적 성찰이자 논증이다.
-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인간의 앎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 이 책만큼 정확한 근거는 없을 것이다. 격렬하지만 평화롭다. 가늠할 수 없는 사유의 깊이다. 풍부한 독서를 원한다면, 단연 최고의 책이다.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한 세샤‘들’ 그리고 번역자에게 감사한다. 우리 사회가 변하길 바란다면, 일독을 권한다.
- 정희진 (서평가, 이화여대 초빙교수)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인지장애가 있는 딸의 양육자, 이보다 더 치열한 위치에서 돌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저자는 인지장애 자녀를 키우는 양육자의 욕망과 좌절 위에서 철학자의 정밀한 이론과 깊은 성찰을 엮는다. 책은 철학이 전제한 이성적 인간의 한계를 비판하고, 다양한 취약성을 가진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드디어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당위를 넘어 윤리적·철학적 사유를 확장하는 뜨겁고 적실한 책이 나왔다.
-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다른몸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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