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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장 그럴 수 없이 고맙고 기쁘다 지천의 세상 / 더디게 오는 봄 / 머위꽃 / 도장지 / 복수초 / 봄까치꽃 / 영춘화 / 개구리를 캤다 / 새 둥지 / 꽃이 사람이다 / 자신의 고결을 말해주듯이 ― 민들레 1 / 새봄에 온 가인 ― 미선나무 / 가야 할 길 / 시화 거리 2장 봄이 와서 기쁘냐, 나도 기쁘단다 깽깽이풀 / 새삼스럽다는 것 / 아이리스를 옮기다 / 문학관의 벽화 / 마당을 쓸었습니다 / 문학관 옆집 산목련 / 창밖의 손님 ― 노간주나무 / 얘들아, 좋은 봄날이야 ― 민들레 2 / 특별한 해후 ― 꽃마리 / 할미꽃 / 광대나물 / 가슴 울렁거리는 황홀 ― 명자꽃 / 히아신스 / 꿈을 꾼 듯 속아 넘어간 듯 ― 벚꽃 / 개나리 3장 너를 두고 내가 어찌하면 좋으랴 오랑캐꽃이거나 앉은뱅이꽃 ― 제비꽃 / 바라보기만 해도 안쓰러운 ― 앵초꽃 / 새봄의 전령 ― 진달래꽃 / 나를 잊지 마세요 ― 물망초 / 빙카 마이너 / 매발톱 / 양지꽃 / 황매화 / 금낭화 / 가장 좋은 때 / 새봄의 귀공자 ― 자목련 / 장구채꽃 / 모란 / 등꽃 4장 다시 꽃 필 날 기다려도 좋을까 디딤돌 / 자란 / 나비가 없다 / 이런 골목길 / 귀하신 손님 / 이것도 꽃이다 ― 안개초 / 단풍나무 씨앗 ― 시과 / 개구리를 만났다 / 능소화 / 어성초 / 으아리 / 보리수나무 / 전신주 아래 / 피아노 소리 때문에 ― 그 여자네 집 / 이제부터는 여름이다 ― 부레옥잠 |
저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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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천국은 ‘더할 나위 없이 천하고 매우 흔한’ 것들이 모여서 이루는 세상이구나. 그것이 정말로 가장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귀한 것이구나! 그건 정말 그렇다. 올해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풀꽃문학관 뜨락이며 화단 여기저기에 풀꽃들은 피어나 다시금 지천의 세상을 이루고 그들의 천국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풀꽃문학관의 적막을 조금은 견딜 만하다.
---「지천의 세상」중에서 그러나 오늘, 무엇보다도 놀랍게 내게로 온 녀석은 봄까치꽃이다. 본래의 이름은 큰개불알풀꽃. 꽃은 귀엽고도 예쁜데 왜 이름이 그리 상스럽냐며 이해인 수녀님이 ‘봄까치꽃’이라고 부르자 해서 나도 그렇게 부르는 꽃이다. 정말로 봄 편지를 들고 오는 우체부 같은 꽃이다. 연한 하늘빛 조그만 꽃송이가 가엾기까지 한 꽃이다. (…) 반갑구나, 봄까치꽃아. 올해도 한 해 우리 잘 견뎌보자. 나는 봄까치꽃에게 마음을 다해 인사를 해본다. 이렇게 우리 문학관에서는 흔한 풀꽃조차도 귀한 가족과 같은 존재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 ---「봄까치꽃」중에서 아뿔싸! 올해도 그만 개구리를 캐고 말았다. 작년에도 이맘때 화단의 꽃들을 정리해 주면서 꽃 무더기의 뿌리 아래 잠들어 있는 개구리를 캐내어 미안했는데, 올해도 그만 개구리를 캐내고 말았다. 작년에는 호미질을 하다가 그리됐지만 올해는 비질을 하다가 흙 속에 잠든 개구리를 깨우고 만 것이었다. ---「개구리를 캤다」중에서 이제 나에게는 꽃이 다만 꽃이 아니고 사람이기도 하다. 애기붓꽃은 그냥 애기붓꽃이 아니고 구재기 시인의 대신으로서의 애기붓꽃이고, 수선화꽃은 김기평 선생님의 화신으로서의 수선화꽃이다. 퇴근길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잠시 새로 핀 수선화 앞에 앉아 수선화꽃을 사진기에 담으며 선생님 생각을 해보았다. ‘선생님, 평안하시지요? 이곳에도 다시 봄이 왔는데 선생님 계신 곳에도 봄은 다시 왔는지요?’ ---「꽃이 사람이다」중에서 한동안 당알당알 꽃송이만 매달고 서 있더니만 어제오늘 미선나무가 꽃을 피웠다. 봄이 와 아주 많은 나비, 새하얀 나비가 날아와 앉은 것 같다. 정말로 미선나무 가지에서 파닥거리는 새하얀 나비 날갯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잘 오셨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이 봄에 오신 가인(佳人)이시구려. 될수록 오래오래 그 자리 지키다 가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1년을 참고 기다린 나머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새봄에 온 가인 - 미선나무」중에서 나도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지나다가 사진 몇 장을 찍은 일이 있다. 마침 새로 움이 트는 버드나무 실가지가 바람에 휘날리는 게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었다. 또다시 기적처럼 찾아온 봄날이 그저 연한 녹색 머플러처럼 매달려 안타까운 듯 나부끼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현실이지만 환상의 세상이 버드나무 너머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봄아, 봄아, 너무 아프지 않게 서럽지 않게 잘 머물다 가시기 바란다. ---「시화 거리」중에서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그들을 부를 때 ‘녀석’이란 말로 부른다. ‘이 녀석 예쁘게 꽃을 피웠구나.’ 그렇게 말할 때의 ‘녀석’이다. 그러니까 무심한 잡초지만 인격체로 보아서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시인적(詩人的) 발상이요 감성이다. 시인에게 가장 소중한 마음은 감정이입(感情移入)의 마음이다. ‘내 마음이 저 마음이야’라고 여기는 이심전심의 마음이고 동일시의 마음이고 공감이고 바로 또 엠퍼시(empathy) 그 자체이다. 구박받고 천대받는 꽃이기에 더욱 마음에 안쓰러움으로 남는 꽃이 바로 민들레다. 하지만 꽃 그 자체를 보면 얼마나 예쁘고도 눈부시도록 화려한 꽃인가. ---「얘들아 좋은 봄날이야 - 민들레 2」중에서 |
“얘들아, 좋은 봄이야. 너희들이 추운 겨울을
벌벌 떨면서 지켜주고 견뎌줘서 찾아온 봄이야. 이 좋은 봄날 한철 예쁘게 꽃을 피우면서 잘 놀다가 가거라.” 머위꽃을 볼 때부터 부레옥잠을 만날 때까지의 기록 차별 없는 생명의 소중함 나태주 시인에게 꽃은 사심 없이 좋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으며 꽃을 통해 많은 시가 태어났다. 이 산문집도 머위꽃을 볼 때부터 부레옥잠을 만날 때까지의 기록이다. 시인은 풀꽃문학관 빈터에 꽃을 심고 가꾸면서 생애 가운데 가장 많이 들일을 하며 산 날들이었고 그러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롭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해마다 봄은 쉽게 오지 않는다. 멀리서 망설이면서 더디게 더디게 온다. 발자국 소리만 들려준다든가 숨소리만을 미세하게 들려주다가 어느 날 벼락 치듯 달려온다. 아니, 온 세상을 덮어버린다. 올해의 봄은 또 그렇게 올 것이다.” 더디게 오는 봄을 기다리던 나태주 시인은 봄꽃으로 가장 먼저 돌담 위에 핀 머위꽃을 만난다. 그리고 “올해도 내가 살아서 봄의 사람인 것이 그럴 수 없이 고맙고 기쁘다”라고 말한다. 1년을 기다려 다시 찾아온 봄꽃을 통해 살아 있음의 기쁨을 느낀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살아 있는 생명 그 자체로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또 가장 좋은 때가 아니겠는가.” 나태주 시인은 생명의 소중함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리고 “우리 문학관에서는 흔한 풀꽃조차도 귀한 가족과 같은 존재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 “‘문학관에 와서 시인 말을 듣지 않고서는 풀을 뽑지 마시라’는 말이고 ‘품으려고 하면 잡초도 꽃이고 베려고 하면 꽃도 잡초다’라는 말이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생명에는 차별이 없다. 시인은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를 캐었다며 미안해하고, 꽃이 피면 날아드는 나비와 꿀벌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워한다. 꽃 피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열매를 맺지 않는 것도 기후 변화로 인해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한다. 시적인 사유와 영감을 주는 꽃 그 꽃에 담겨 있는 우리네 삶 나태주 시인은 꽃과 나무를 보며 시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풀꽃문학관 한편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도장지, 즉 웃자란 가지를 전지가위로 잘라내며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시를 두고서도 쓸모를 생각해 본다. 도장지처럼 웃자라 겉으로만 멀끔하니 보기 좋고 헌칠한 시가 아니라 외모나 내용은 조금쯤 빈약할지라도 독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들어주면서 독자들에게 친절과 도움을 함께 주는 그런 시가 되어야 한다. 날마다 그렇게 나는 뜨락에서 배우고 생각한다.” 또한 시인은 “나는 한때 나의 시가 민들레의 홀씨가 되어 먼 데, 아주 먼 데까지 가서 나도 모르는 사람들 가슴에 뿌리 내려 꽃을 피우는 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게 민들레의 생명력이 부럽고 고마웠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민들레가 시적인 사유와 영감을 충분히 준다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의 문장을 들려주기도 한다. “민들레가 웃고 있었다면/ 네가 먼저 웃고 있었던 것이다// 새들이 노래하고 있었다면/ 네가 먼저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아무래도 이쁘냐?/ 그렇다면 네 마음속 세상이 먼저 이뻤던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또한 문학관에 자라고 있는 꽃과 나무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준다. 유년 시절 외갓집에서 살 때 올라타 놀았던 보리수나무, 세상 뜨신 어머니가 고향 집에서 기르시던 우산꽃, 구재기 시인에게 선물받은 애기붓꽃, 은사 김기평 선생님이 주신 수선화, 이해인 수녀님이 이름 지은 봄까치꽃, 친구 송수권 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등꽃 등등. 나태주 시인에게 그 꽃들은 다만 꽃이 아니라 사람이기도 하다. 나태주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꽃은 사람의 정서가 담긴 꽃이어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듯이, 이 산문집의 중심 소재도 꽃과 나무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우리네 삶이다. 산문집을 읽다 보면 만개한 꽃들에 둘러싸인 풀꽃문학관의 풍경이 그려지기도 하고, 오래된 주택가 골목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며 꽃을 구경하는 나태주 시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힘들고 지친 우리의 마음을 녹여주는 따스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마음이다. 몸이 아무리 열악해지고 아프기까지 해도 마음으로 행복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꽃이 주는 선물이고 긍정의 마음이 주는 축복이다. 비록 여러 가지로 번잡하게 힘들게 살아가더라도 나에게 이렇게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골목길이 있고 그 골목길에서 만나는 정다운 이웃 한 사람이 있다는 건 더없이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