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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사람이다

: 꽃 내음 그윽한 풀꽃문학관 편지

나태주 | 샘터 | 2024년 01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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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342g | 122*188*18mm
ISBN13 9788946422650
ISBN10 894642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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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천국은 ‘더할 나위 없이 천하고 매우 흔한’ 것들이 모여서 이루는 세상이구나. 그것이 정말로 가장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귀한 것이구나! 그건 정말 그렇다. 올해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풀꽃문학관 뜨락이며 화단 여기저기에 풀꽃들은 피어나 다시금 지천의 세상을 이루고 그들의 천국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풀꽃문학관의 적막을 조금은 견딜 만하다.
---「지천의 세상」중에서

그러나 오늘, 무엇보다도 놀랍게 내게로 온 녀석은 봄까치꽃이다. 본래의 이름은 큰개불알풀꽃. 꽃은 귀엽고도 예쁜데 왜 이름이 그리 상스럽냐며 이해인 수녀님이 ‘봄까치꽃’이라고 부르자 해서 나도 그렇게 부르는 꽃이다. 정말로 봄 편지를 들고 오는 우체부 같은 꽃이다. 연한 하늘빛 조그만 꽃송이가 가엾기까지 한 꽃이다. (…) 반갑구나, 봄까치꽃아. 올해도 한 해 우리 잘 견뎌보자. 나는 봄까치꽃에게 마음을 다해 인사를 해본다. 이렇게 우리 문학관에서는 흔한 풀꽃조차도 귀한 가족과 같은 존재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
---「봄까치꽃」중에서

아뿔싸! 올해도 그만 개구리를 캐고 말았다. 작년에도 이맘때 화단의 꽃들을 정리해 주면서 꽃 무더기의 뿌리 아래 잠들어 있는 개구리를 캐내어 미안했는데, 올해도 그만 개구리를 캐내고 말았다. 작년에는 호미질을 하다가 그리됐지만 올해는 비질을 하다가 흙 속에 잠든 개구리를 깨우고 만 것이었다.
---「개구리를 캤다」중에서

이제 나에게는 꽃이 다만 꽃이 아니고 사람이기도 하다. 애기붓꽃은 그냥 애기붓꽃이 아니고 구재기 시인의 대신으로서의 애기붓꽃이고, 수선화꽃은 김기평 선생님의 화신으로서의 수선화꽃이다. 퇴근길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잠시 새로 핀 수선화 앞에 앉아 수선화꽃을 사진기에 담으며 선생님 생각을 해보았다. ‘선생님, 평안하시지요? 이곳에도 다시 봄이 왔는데 선생님 계신 곳에도 봄은 다시 왔는지요?’
---「꽃이 사람이다」중에서

한동안 당알당알 꽃송이만 매달고 서 있더니만 어제오늘 미선나무가 꽃을 피웠다. 봄이 와 아주 많은 나비, 새하얀 나비가 날아와 앉은 것 같다. 정말로 미선나무 가지에서 파닥거리는 새하얀 나비 날갯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잘 오셨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이 봄에 오신 가인(佳人)이시구려. 될수록 오래오래 그 자리 지키다 가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1년을 참고 기다린 나머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새봄에 온 가인 - 미선나무」중에서

나도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지나다가 사진 몇 장을 찍은 일이 있다. 마침 새로 움이 트는 버드나무 실가지가 바람에 휘날리는 게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었다. 또다시 기적처럼 찾아온 봄날이 그저 연한 녹색 머플러처럼 매달려 안타까운 듯 나부끼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현실이지만 환상의 세상이 버드나무 너머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봄아, 봄아, 너무 아프지 않게 서럽지 않게 잘 머물다 가시기 바란다.
---「시화 거리」중에서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그들을 부를 때 ‘녀석’이란 말로 부른다. ‘이 녀석 예쁘게 꽃을 피웠구나.’ 그렇게 말할 때의 ‘녀석’이다. 그러니까 무심한 잡초지만 인격체로 보아서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시인적(詩人的) 발상이요 감성이다. 시인에게 가장 소중한 마음은 감정이입(感情移入)의 마음이다. ‘내 마음이 저 마음이야’라고 여기는 이심전심의 마음이고 동일시의 마음이고 공감이고 바로 또 엠퍼시(empathy) 그 자체이다. 구박받고 천대받는 꽃이기에 더욱 마음에 안쓰러움으로 남는 꽃이 바로 민들레다. 하지만 꽃 그 자체를 보면 얼마나 예쁘고도 눈부시도록 화려한 꽃인가.
---「얘들아 좋은 봄날이야 - 민들레 2」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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