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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

: 아프리카 코이산족 채록 시집

리뷰 총점9.7 리뷰 6건 | 판매지수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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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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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86g | 125*200*9mm
ISBN13 9791187038665
ISBN10 1187038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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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우리가 처음 듣는 목소리] 아프리카 코이코이족과 산족에서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를 담은 시집. 최초의 감각과 공생의 세계관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노래한다. 그 속엔 “부시먼”이라는 납작한 단어로 결코 대체될 수 없는 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각박한 현실에 지쳐 있는 우리에게 이 시는 한 숨의 영혼을 불어넣는다. - 시 MD 김소정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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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오두막에서 잠을 잘 때마다
난 늘 그 곁에 앉아 있곤 했지
밖은 추웠어
난 할아버지에게 묻곤 했지
내가 들은 소리의 정체에 대해
꼭 누군가 말하는 소리처럼 들렸거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별들이 수군대는 소리라고

별들이 ‘차우!’라고 수군대는구나
‘차우! 차우!’라고 말이야
---「말하는 별들」중에서

그는 우리 식구였어
우린 그를 ▲쿤이라 불렀네
그는 비를 부르는 사람이었지
그리고 종종 비를 내리게 했지
그는 비의 머리카락을 만들어
부드럽게 흘러내리게도 했지
비에게 두 다리를 만들어주고는
든든한 기둥처럼 흐르게도 했지
또 가끔은 구름을 불러 세워놓고
한바탕 연설을 늘어놓기도 했어
그는 정말 비를 부르는 무당이었어
---「비를 부르는 무당」중에서

방금 내 손에 갇혀 있던, 나무의 재들아
너희들은 내가 말하는 대로 될 거야
부디 은하수가 되어라
거기, 하얀 야주호에 누워
여러 하늘을 뱅뱅 돌아라
나뭇재처럼 하얀 얼굴로
다른 별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한때 나무의 재였던 너희들은
이제 은하수가 될 거야
그래서 별들을 데리고 뱅뱅 돌아라
네 주변의 별들과 함께
그 별들은 다른 별들과 함께 돌며
등을 돌리고
그렇게 제 길을 가야만 할 거야!

그리하여 별들은 등을 돌려
새벽을 데리러 가지
---「은하수를 만든 소녀」중에서

토끼는
안개 같고
영혼의 그림자 같아
푸르스름한 안개는
연기를 닮았다고
엄마는 말씀하셨지

동틀 녘
해가 뜨기 직전에
신기루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말하지, 그건
토끼라고
토끼의 신기루라고
태양을 안개 속에 숨기고 있다고
태양을 연기 옷으로 가리고 있다고
그래서 태양의 시력이 나빠진다고
태양이 제대로 떠오르지 못한다고
---「안개와 토끼」중에서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내가 사냥을 다녀왔는지
조용히 앉아 기다렸는지
고슴도치를 기다렸는지
사냥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은하수가 등을 돌릴 때라고
바로 그때가
고슴도치가 돌아오는 때라고

아버지는 또한 말씀하셨지
내가 바람을 느꼈는지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조심해야 한다고
늘 바람의 방향을
맛보아야 한다고
고슴도치는
바람을 데리고
돌아오는 짐승이 아니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고슴도치는 오히려
바람을 가로질러
비스듬히 다가온다고
---「고슴도치 잡기」중에서

저물어버린 태양이
산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있어요
그 태양은 거기에 오래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와요, 아침이여
저 망망한 하늘을 가로지르며
태양은 다시 한번 걸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달, 사냥꾼의 달도
저 산 위로 고개를 불쑥 내밀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저 망망한 하늘을 가로지르며
걷다가, 살이 차고, 결국 시들 거예요

우리가 기다리는 저 별,
저 별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 나타날 거예요
역시 저 산 너머로
그리고 누구 못지않은 속도로
하늘을 빠르게 기어올라
저 망망한 하늘을 가로지르며
뜨기와 뛰기를 반복할 거예요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중에서

난 만티스야
만티스가 내 이름이야
내 신발은 저 위에 있어
어둠 속에서 시뻘겋게 빛나고 있어
내 신발은 이제 곧
달로 변할 거야
달처럼 빛나
숲속 어둠을 뚫고
길을 밝힐 거야
땅도 밝힐 거야
그러면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거야
---「달의 기원」중에서

우린 먼 곳에서
활시위 당기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
구름이 내는 그 소리를.
잠에서 벌떡 깨어나 보면
구름 속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란 걸 알게 되겠지
그때 비가 오기 시작할 거야
해가 질 때까지 그치지 않을 거야
해가 두 번이고 질 때까지
비는 두고두고 쏟아질 거야

우리가 잠을 자는 사이
▲카우누는 거기에
뜬눈으로 앉아 있겠지
활시위를 잡아당겨
비를 내리게 한 이가
바로 그이니까
우린 구름 속에서 깨어날 거야
구름이 내는 소리 때문에
위이잉, 활시위가 내는 소리 너머로
쏟아지는 구름 소리 때문에
---「쏟아지는 구름 소리 때문에」중에서

한창 일을 하는
대낮에는
난 외양간에 가지요
한창 일을 하는
아침에는
난 갈퀴를 들지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청소해야 하니까요
잔가지들도
치워야 하니까요
밤새 바람에 떨어진
수많은 잔가지들을요
그래야 걷다가
잔가지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으니까요
그 자그마한 나무의 잔가지들이
내 발목을 낚아챌 일이 없으니까요
그래야 어둠이 찾아와도
넘어지는 일이 없으니까요
해 지고
주인님 댁으로
식사하러 가다가
---「아침에는 난 갈퀴를 들지요」중에서

▲카겐은, 늙어빠진 협잡꾼이자
요술사이며
만티스라고도 불립니다
달과
영양과
골치 아픈 문제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지요
불 속에 누워
맨살에 불이 붙어도
시뻘건 석탄의 열기 속에 누워
온몸이 배배 꼬여가고
피부에 물집이 잡히고
맨살이 너덜너덜해지고
뼈조차 빠르게 검게 변해가도
그대는 여전히 꿈을 꾸듯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술책을 부리는 사람입니다
늙고 노회하여
아무리 가르쳐도 통하지 않고
아무리 길들여도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낡은 신발 한 조각으로
이랜드를 만들 줄 알며
헐고, 뒤틀린, 신발 한 짝으로
달을 만들 줄 아는
늙어 구제가 불가능한, 요술사
늙은 ▲카겐
---「늙은 ▲카겐」중에서

우리는, 별이야
하늘을 걸어야만 해
우리는, 둘이야
새벽심장별과
새벽심장의 아기
둘 다 하늘의 일부지
우린 하늘에 있으니까

우리는 하늘 거야
---「새벽심장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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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에 수록된 시들을 읽는 동안 정신이 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치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는 미끄럼틀을 탄 것 같았어요. 지금 여기가 아닌 저 너머, 아주 먼 과거로 순식간에 빨려 들었지요. 그곳에서 저는 이제 막 사냥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별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영혼의 귀가 필요하단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부재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영혼의 인간”(「영혼의 인간」)이 "죽음으로, 다시 가져온 그 얼굴"(「새로 뜬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을 마주하는 일이란다. 모든 것엔 생명이 깃들어 있고 모든 존재에겐 제 자리가 있단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믿고 느끼는 법을 배우는 동안 키가 자라고 마음이 자랐습니다. 가슴 아픈 침략과 파괴의 역사를 관통하면서도 끝끝내 생을 용서하고 긍정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죠.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그곳에서의 날들이 잊히지 않습니다. 지금 이곳의 현실이 각박하면 각박할수록, 내 안에 영혼 같은 건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상해갈수록 그 시간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주술, 교감, 공생, 연결, 사람 같은 말들이 그 힘을 잃어가는 요즘, 동아줄을 붙잡듯 이 시들을 붙잡습니다. 저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입에서 입으로, 할아버지에게서 아이에게로,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왔고 흘러갈 이 이야기들이 당신의 마음에 불꽃을 일으킬 거예요. “내 신발은 이제 곧 / 달로 변할 거야 / 달처럼 빛나 / 숲속 어둠을 뚫고 / 길을 밝힐 거야 / 땅도 밝힐 거야 / 그러면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거야”(「달의 기원」) 그렇게 걸어간 길의 끝엔 밥 짓는 냄새,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 폭력도 차별도 없는 완전한 사랑의 시간이 자리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으로요.
- 안희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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