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인터뷰를.마쳤을.때.그분께.제안을.드렸다..“선생님.쌓아오신.경험을.글로.꼭.써주세요..후학들에게.도움이.됩니다..한글꼴.멋지음에.대한.선생님의.비전?傳을.남겨주십사”고.했다..(중략) 지금.보면.어색한.점도.많지만.그나마.그분의.지혜.경험을.이렇게나마.얻어놓은.것이.천만다행이다..(중략) 늘.웃음.띠며.반갑게.어린.친구로.대해주시던.그분이.그립다..
--- p.6, 「들어가며」중에서
한글이란 본디 세로쓰기 용도로 만들어졌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꼴은 각지고, 두텁고 조잡하였다. 한글 창제 후 한글은 식자층에서 소외되어 조선 궁중 여인들의 손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었다. 그 당시 유일한 필기도구인 붓으로 당시 풍습대로 내려쓰기에는 기하적 한글 모양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었고 붓놀림에 따라 흘림체로 변화했다. 이처럼 한글은 여성의 손으로 아름답게 다듬어져 오늘에 이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다듬어진 한글꼴이 곧 궁서체宮書?다. 나는 이 궁서체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고, 내가 설계한 한글 부리 계열 ‘명조체 ’는 이 궁서체 중 해서체를 내 나름대로 다듬은 것이다.
--- p.13, 「나의 경험, 나의 시도 1」중에서
명조체의 뼈대를 이루는 기본 요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보았다. 본디 이를 디자인함에 있어 붓으로 그린 획Stroke의 특성을 최대로 반영해 부리를 그렸다. 명조체의 기본이 되는 부리의 특징을 간추려 보면 ‘첫줄기, 가로줄기, 둥근줄기, 기둥, 삐침, 내리점, 꺾임, 굴림, 이음보, 맺음’으로 구분할 수 있다.
--- p.29, 「나의 경험, 나의 시도 2」중에서
한글은 정체로 쓰면 장체로 보이는 단점이 있다. 글꼴은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는 시간이 짧을수록 좋은 글꼴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글꼴은 이렇듯 가독성이 좋아야 하며, 글자의 모든 변형은 원리 원칙을 이해한 뒤에 행하는 것이 현명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 쓰고 있는 명조체도 현재는 많이 쓰이고 좋다고 하지만, 언젠가 도태되어야 할 때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명조체가 절대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다시 되풀이하지 말고, 이 글을 디딤돌 삼아 한발 더 나아갔으면 한다.
--- p.45, 「나의 경험, 나의 시도 3」중에서
고딕체는 명조체의 필력과 필체를 응용한 것이다. (명조체의) 필력은 극도로 살리고 필체에서 보이는 부리와 돌기를 다 희생시킨 것이 고딕체이다. 그러므로 명조체와 필력은 같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가 있다. 고딕체의 목적은 같은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고 다른 글꼴과 구분되어 내용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획의 미적 형태를 희생시켰다. 그렇지만 도안 글씨(레터링)와는 다른 운치가 느껴져야 하며, 글꼴로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 p.49, 「나의 경험, 나의 시도 4」중에서
지금 쓰고 있는 명조체는 엄밀히 얘기하면 명조체가 아니다. 명조라는 것은 한문 명조체의 이름을 붙인 것인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구태여 명조체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지금 나와 있는 신명조체(*오늘날의 순명조 계열)일 것 같다. 신명조체는 정말 명조의 필체를 따온 것으로, 두 글꼴의 명칭이 뒤바뀐 것이다. 앞으로 누구든 계속 새로운 글꼴을 내겠지만, 그 글꼴의 명칭을 우리 나름대로 정확하게 붙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 p.66, 「나의 경험, 나의 시도 5」중에서
지금에 와서 궁서체는 많이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나는 당시에 각종 초대장, 청첩장, 시집 등에 사용할 것으로 궁서체를 만들었으나, 정부 시책에 의한 청첩장 배포 금지, 워낙 경제성이 낮은 시집을 목표로 해 많이 보급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중략) 궁서체란 글씨에 손을 댄 나로서는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개발하고, 그 인기도 장담했는데, 아직도 그리 빛을 보지 못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다.
--- p.75, 「나의 경험, 나의 시도 6」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