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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시 크루아상

: 장바구니에 담긴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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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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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6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44g | 135*193*19mm
ISBN13 9788997066926
ISBN10 8997066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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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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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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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따라 처음 가본 알리그르 시장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도서관에서 책만 보던 내가 미처 몰랐던 프랑스가 거기에 있었다. 머리가 아닌 내 눈과 귀, 코로 감각할 수 있는 오늘의 프랑스였다. 허리춤에 손을 대고 큰 소리로 채소 값을 따지는 상인과 손님들의 적나라한 말을 들으면서 마음을 단단히 옥죄는 무언가가 툭 터지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단정하고 흠잡을 데 없는 문어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활력과 생생함이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듯 펄떡펄떡 뛰어올랐다.
--- p.18

오전에 시끌벅적했던 시장이 오후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먼지 한 톨 없이 사라지는 광경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좌판 상인들은 아침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에 딱 다섯 시간 동안 펼쳐지는 공연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공연 예술인이다. 가지며 호박을 하나하나 윤이 나도록 닦고, 토마토 줄기를 나란히 정렬한다. 빨간 순무를 다발로 묶어 작은 바구니에 착착 넣고, 멋들어진 잎사귀가 달린 레몬으로 피라미드를 만드는 솜씨는 봉마르셰 백화점의 디스플레이 전문가 못지않다.
--- p.19

작은 부엌에서 자르고 볶고 데쳐 한 끼 한 끼를 채우는 나의 요리는 프랑스인들이 매일 먹는 전형적인 가정식이다. 고등어구이에 된장찌개가 올라간 저녁상처럼 평범한 한 끼. 프랑스 가정식에는 프랑스적이라 할 만한 것들이 담겨 있다. 그것은 샤를드골 공항의 크루아상에서 시작해 끈덕지게 나를 이 나라에 붙잡아둔 프랑스만의 매력이었다. 프랑스 가정식에는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문화만의 특질이 숨어 있었다.
--- p.27

나는 2년 전부터 같이 시장을 보고 우리 집 부엌에서 프랑스 가정식을 만들어 먹어보는 ‘지은 집밥’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집밥’은 엄연히 따지자면 쿠킹 클래스가 아니다. 나 자신이 전문적인 요리사가 아닐뿐더러 그럴듯한 미식 요리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지은 집밥’을 통해 정말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나의 프랑스 요리 선생님인 시장 상인들의 기운찬 말투와 채소를 정돈하는 부산한 몸동작, 계절마다 찬란하게 피어나는 좌판이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에펠탑에는 없는 프랑스가 여기에 있다.
--- p.32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 시어머니는 은쟁반을 꺼내 길쭉하고 오목한 껍질 안에 살진 알맹이가 은은한 광택을 띠는 핀 드 클레르를 차려낸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마트에서 생전 처음으로 비닐봉지에 가득 든 알맹이 굴을 발견한 남편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굴 봉지 앞을 떠나지 못했다. 엄청난 자산가인 데다 보석 수집이 취미인 고모를 노숙자 쉼터에서 딱 맞닥뜨리게 된 조카처럼 아찔하고도 황당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 p.78

관광객들은 한결같이 바게트만 산다. 그게 아니라 트라디를 사야 한다고, 이게 진짜라고 참견하고 싶은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렇지만 오지랖 넓은 아줌마가 되지 않기 위해 꾸욱 참는다. 애써 모른 척하지만 정말 정말 말해주고 싶다.
“트라디를 사세요.”
--- p.97

눈이 마주치자 파스칼은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다. 누가 이렇게 푸주한의 친절한 인사를 받나 싶어 줄을 서서 기다리던 몇몇 사람들이 슬쩍 내 얼굴을 돌아본다. 프랑스의 정육점에서 푸주한은 고유한 영역을 가진 전문가의 권위를 아낌없이 누린다. 나무 도마와 여러 종류의 칼을 줄줄이 늘어놓고 우뚝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넘친다. 일요일이면 옆집 치즈 가게까지 줄이 늘어서는데도 어렵게 예약한 전문의를 보러 간 환자처럼 다들 얌전히 차례를 기다린다.
--- p.113

아무리 스마트 팜이 대세인 시대가 되었어도 나는 땅에 뿌리를 두고 신선한 공기와 바람과 함께 자란 제철 과일과 채소를 먹고 싶다. 그 사계절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 “이때만 먹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계절이 주는 진미들로 상을 차리고 싶다. 너무 맛있어서 스스륵 사라지는 계절을 아쉬워하며 기다리고 싶다.
--- pp.147~149

매일 정오가 되면 시장을 치우러 쓰레기차를 몰고 등장하는 청소부들에게 커피를 1유로에 제공하는 조셉과 긴긴 겨울 동안 모자에 속바지까지 완전 무장하고 커피를 내리면서도 늘 친절한 칸디스. 비 오는 날이면 눈을 찡끗하며 가게 뒤편에서 아일랜드 위스키를 꺼내 와 한 잔 따라주는 이 부부의 다정함과 선량함.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 라벨이다.
--- pp.165~166

‘먹는 이야기가 일의 일부가 되는 삶을 살게 되다니’, 소피는 신기하다는 듯 손을 가슴 위로 모아 기도하는 시늉을 한다. 이럴 때의 소피는 천진한 소녀 같다. 소피의 요리 이야기가 유달리 식욕을 자극하는 것은 그래서가 아닐까. 와인이건 요리건 세상의 모든 맛은 결국 삶을 찬미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거니까.
--- p.185

몸통의 털은 미리 뽑아놓지만 팔리기 전에는 대가리와 닭발을 자르지 않는 게 제대로 된 닭집의 불문율이다. 머리와 발을 잘라버리면 이 닭이나 그 닭이나 다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살만 보고 무슨 닭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무엇이든 돈값을 해야 한다고 믿는 프랑스인들은 비싼 값을 치르고 좋은 닭을 살 때면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기가 흐르는 털과 듬직한 발, 잘생긴 대가리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몇 겹으로 싼 종이에 닭과 함께 넣어주는 닭발과 깃털은 에르메스 가방에 딸려 오는 오렌지색 박스와 두툼한 쇼핑백, 다갈색 리본이라 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 꾸러미를 풀어보면서 고급 닭을 먹는 즐거움을 아낌없이 누리라는 배려다.
--- pp.220~221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식품점 주인의 관상은 ‘봉비방(bonvivant)’의 얼굴이다. 봉비방은 좋아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삶을 충실하게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활기차고 생기 있는 표정에 풍부한 제스처, 작은 일에도 푸하하 웃는 즐거움이 깃든 얼굴. 먹고 마시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봉비방이 주인이라면 맛이 절로 날 듯해 단골이 되고 싶어진다.
--- p.257

프랑스에서 “아페로 어때?”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가령 공원에서 조깅을 하다가 처음 만난 남녀에게 ‘아페로 어때?’는 너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그린라이트다. 가족과 함께 떠난 바캉스에서 ‘아페로는 7시야’란 말은 낮에는 알아서 보내되 7시에는 얼굴을 보자는 뜻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사이에서 ‘아페로나 한 잔 하지’는 허심탄회하게 사는 이야기나 해보자는 따뜻한 제의이며, 서로 앙숙이라면 과거는 잊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화해의 제스처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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