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인들 중 일부는 죽고 일부는 수감되었고 남은 사람들도 집을 잃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시돈의 이층집에서 나를 돌봐주며 감귤 밭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눈 소년병들, 공습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꿋꿋했던 라시디예와 나바티에 캠프의 피난민들…. 후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의 운명 또한 이 이야기에 재현된 사람들과 거의 다르지 않다.
팔레스타인 군사령관이자 시돈의 집주인 살라 타아마리의 얘기만으로도 책 한 권이 나올 만하다. 언젠가 자신의 얘기를 직접 썼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지금은 이 책으로 그의 용기를 칭송할 수밖에 없겠다. 내게 팔레스타인의 마음을 보여준 그의 병사들한테도 감사한다.
존 개프, G. M. 중령은 사제폭탄의 끔찍한 위력을 보여주며 내게 부주의학 제조법을 기록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_작가 노트 중에서
찰리는 어느 모로 보나 최고의 미모는 못 되었지만 성적 매력만큼은 눈부실 정도였다. 불치에 가까운 색기도 마찬가지인 바 실제로도 온몸으로 그것을 발산하며 다녔다. 약간 멍청하기는 해도 미모는 루시가 최고였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찰리는 평범한 쪽이었다. 코는 길고 강해 보였으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두운 얼굴 탓에 한순간 어린 소녀 같다가도, 다음 순간 너무도 늙고 우울해 보였다. 맙소사,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았기에 저런 표정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따금 그녀는 그들의 딸이자 어머니가 되어, 돈을 계산하고 연고와 반창고를 찾아 상처 난 발에 발라주었다. 그녀의 역할이 모두 그렇지만, 그런 일을 할 때면 정말로 누구보다 너그럽고 누구보다 유능했다. 때로는 동료들의 양심이 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가상이든 실제이든, 국수주의, 성차별주의, 서방식 무관심의 죄를 짓지 말라며 호통을 쳤는데, 그 권리 또한 그녀의 계급처럼 보장되었다. 그들이 즐겨 말하듯, 찰리야말로 소위 엄친딸이었기 때문이다. 증권브로커의 딸로서 가정교사까지 두고 공부했던 아이…. 사실 찰리가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고객들을 편취하다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어쨌든, 계급은 계급 아닌가?
_본문 중에서
“연극이 아무리 진솔해도 사적인 고백이 될 수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소설, 시는 가능하지만 연극은 아니라더군. 연극은 리얼리티와 관계해야 하고, 따라서 실용적이어야 하죠. 그 말을 믿어요?” 요제프가 물었다.
“버튼온트렌트 여자 협회에서요? 교도소의 토요일 마티네에서 〈트로이의 헬렌〉을 공연한다고요?” 그녀가 웃으며 되물었다.
“농담 아니오. 당신 생각을 들려줘요.”
“연극에 대해서?”
“연극의 필요에 대해서.”
그의 집착이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대답에 너무도 많은 게 걸려 있다는 뜻이리라.
“음, 맞는 얘기예요. 연극은 실용적이어야 해요. 사람들이 공감하고 느끼게 만들어야 하죠. 그러니까… 사람들의 의식을 깨운다고 해야 하나요?”
“따라서 현실적이어야 하겠지? 확신하오?”
“예, 확신해요.”
“음, 그렇군.” 그가 중얼거렸다. 그로서는 할 바를 다했다는 투였다.
“음, 그래요.” 그녀가 가볍게 되뇌었다.
우린 미쳤어. 그녀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달밤에 달을 보고 짖는 두 마리 미친 개. _본문 중에서
그에게는 그런 식으로 말할 권위가 있었다. 사람들이 갈망하는 대답도 갖고 있었다. 그에게는 배경이 있었으며 찰리를 포함해 그곳 사람들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요컨대, 그는 직접 경험한 상황만을 거래하는 사내였다. 질문을 해도 직접 당한 질문이었고, 지시를 하면 이미 복종한 적이 있는 지시였다. 죽음을 말할 때조차 그가 죽을 위기를 모면했으며 그것도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음을 뜻했다. 물론 언제든 다시 죽음과 대면하게 될 가능성까지 포함해서다. 지금처럼 그녀에게 경고를 보낼 때조차 그는 그 경고와 너무도 가까이 있었다.
“찰리, 우리 연극과 학예회를 혼동하지 않길 바라겠소. 지금 마법의 숲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오. 조명이 무대를 비추게 되면 거리는 밤 시간이 될 것이오. 배우들이 웃으면 행복하다는 뜻이고, 흐느껴 울면 십중팔구는 상실감에 심장이 찢어진다는 얘기겠지. 배우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면(당연히 그렇게 될 거요, 찰리.), 막을 내린다 해도 후닥닥 뛰쳐나와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건 불가능할 게요. 장면이 어렵다고 까탈부리며 빠져나올 수도, 아프다고 쉴 수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연기를 펼쳐야 하오. 찰리, 당신이 원하는 일이고 또 감당할 수 있다면(그러리라 믿소.) 이제 우리 얘기를 들어봐요. 그게 아니면, 오디션은 여기서 포기하기로 합시다.”
그때 시몬 리트박이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미국 라디오 신호만큼이나 희미하고 아련한 허스키 목소리였는데, 어딘가 스승을 안심시키려는 제자 같았다.
“찰리는 평생 싸움을 피해본 적이 없습니다, 마티.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기록에 온통 그 얘기뿐인데.” _본문 중에서
그 순간 그녀는 요제프가 묘사한 바로 그 존재가 되고 말았다. 미셸의 구원자이자 해방자. 그의 성녀 조안. 육신의 노예이자 찬란한 별. 그녀는 지금껏 그를 위해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지저분한 모텔에서 촛불만 켠 채 함께 식사를 하고, 침대를 공유했으며 그의 혁명에 동참하고 그의 팔찌를 차고 그의 보드카를 마시고 그의 육체를 난도질했으며, 보답으로 그가 그녀를 난도질하도록 허락했다. 그를 위해 그의 메르세데스를 몰고 그의 총에 키스하고, 곤경에 빠진 그의 혁명군에 러시아제 최고급 TNT를 운반해주었다. 그녀는 잘츠부르크의 강변 호텔에서 그와 함께 승리를 자축했다. 밤에는 아크로폴리스에서 함께 춤을 추었고 그로써 온 세상이 그녀를 위해 되살아났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사랑을 꿈꾸었다는 죄의식에 괴로워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남자…. 요제프가 말한 그대로였다. 아니, 더 아름다웠다. 찰리 같은 여자라면 도저히 저항이 불가능한 절대적인 매력. 그는 군주의 매력을 지녔으며 자신도 그 사실을 안다. 날렵하고도 완벽한 몸매. 잘 다듬어진 어깨와 매끄럽게 빠진 둔부. 복서의 이마와 목양신의 얼굴, 흡사 왕관과도 같이 바짝 달라붙은 검은 머리…. 아무리 길들이려 해도 칠흑같이 까만 두 눈에서 저 열정적인 본성을 감추거나 반란의 빛을 끌 수는 없으리라. _본문 중에서
“우리는 연인과도 같아요. 당신은 떠나지만 그 후엔 우리는 꿈이 되니까요.” 헤어지면서 살마가 한 얘기였다.
개자식들. 더럽고 추악한 유대 살인마들. 내가 여기 없었다면 저 사람들을 정말로 하늘나라로 날려보냈겠지?
“애국할 방법이라고는 이곳에 남아 있는 것뿐이에요.” 살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