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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 산문의 새로운 여정] 체코의 대작가 카렐 차페크의 여행 산문.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여행기로 당시 미지의 나라였던 영국과 스페인을 경험하며 남긴 기록을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함께 전한다. 작가 특유의 풍자와 유머는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다채롭고 유쾌한 시선을 담아낸 차페크 산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 - 에세이 PD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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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급행열차 _7
독일, 벨기에, 프랑스 _15 올드 카스티야 _20 푸에르타 델 솔 _25 톨레도 _32 포사다 데 라 상그레 _42 벨라스케스의 위대함에 대하여 _47 헌신자 엘 그레코 _52 고야 예술의 상반된 두 가지 _57 그 밖의 다른 사람들 _63 안달루시아 _69 세비야의 거리들 _73 창살과 안뜰 _80 히랄다 _87 알카사르 요새 _95 정원 _101 만틸라 _107 트리아나 _115 투우 _120 일반적인 투우 _135 플라멩코 _152 보데가 _170 카라벨라 _176 종려나무와 오렌지나무 _182 티비다보 _190 사르다나 _196 펠로타 _200 몬트세라트 _208 부엘타 _214 해설 | “눈이 자신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고정된 사람은 모두 조금 미친다” _221 |
저카렐 차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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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도 후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도 우리는 날렵한 발굽으로 돌길을 재빠르게 걷는 당나귀를 피할 테고, 열린 안뜰과 마졸리카 계단을 볼 것이며, 무엇보다 현지 사람을 만나게 될 테니까.
--- p.37 살아 있는 사람들의 거리야말로 가장 좋은 박물관이다. --- p.41 내가 다른 시대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다른 시대가 아닐 것이다. 그저 몹시 아름답고 숭고한 모험일 뿐이다. 톨레도처럼, 스페인 땅처럼 말이다. --- p.41 모든 나라는 고유한 혀, 그리고 실로 고유한 미각을 가지고 있다. 그 나라의 혀를 알아보라. 그 나라의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셔보라. --- p.44 이 그리스인은 압도적인 천재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한다. 눈이 자신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고정된 사람은 모두 조금 미친다. --- p.55 스페인 미술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무시무시한 강조와 거의 웅변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을 특기로 삼았다. 이것이 바로 돈키호테다! 이것이 바로 왕이다! 이것이 바로 불구자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로다! --- p.67 어떤 상투적인 문구와 수식어들은 끔찍하고 성가실 정도로 적절한 때가 있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때려눕히거나 요설가 또는 뻔뻔한 수다쟁이라 부를 수 있겠으나, ‘웃는’ 세비야는 정말 웃고 있는 세비야다. 어쩔 수 없다. 사실 이 도시를 묘사할 다른 방법이 없다. 그냥 ‘웃는’ 세비야일 뿐이다. --- p.73 이제 나는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그 아름다움과 나의 고단함에 눈물을 흘린 것이 부끄럽지 않다. 노란색과 빨간색 정면, 그리고 중앙에는 깔끔한 녹색 정원이 있다. 정원에는 파이앙스 도자기와 회양목, 아이들, 협죽도, 양각된 십자가와 저녁 종소리가 있다. 그리고 나처럼 무가치한 인간은 모든 것의 가운데에 서서 어안이 벙벙해진 말투로 중얼거린다. ‘맙소사, 이렇게 꿈같고 동화 같은 곳이 또 있을까!’ --- p.77 우리는 그저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을 움켜쥐고 만지작거린다. --- p.98 스페인 정원만큼 놀랍도록 집약되고 강렬한 것은 본 적이 없다. 영국의 공원은 경작된 풍경이다. 스페인 정원은 인공적인 낙원이다. 프랑스의 공원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스페인 정원은 은밀한 꿈이 담긴 곳이다. --- p.106 무엇보다도 그들은 대단히 유쾌한 사람들이다. 안달루시아 스타일의 넓은 챙 모자를 쓴 청년, 만틸라를 두른 여성, 귀 뒤에 꽃다발을 꽂고 늘어진 눈꺼풀 아래로 까만 눈동자를 가진 소녀. 그들이 비둘기처럼 뽐내며 얼마나 경쾌하고 민첩하게 처신하는지, 어떻게 서로에게 교태를 부리는지, 그리고 그들의 끊임없는 구애가 얼마나 열정과 품위로 가득 차 있는지 보는 것은 정말 즐겁다! --- pp.111∼114 두 번째 창이 황소의 목에 꽂혀 바닥에 고정된 펜촉처럼 떨렸다. 황소는 목구멍에 파고든 것을 떼어내려고 필사의 노력을 다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고, 뒷다리로 일어섰다. 그러나 창은 튼튼한 근육 덩어리에 더 단단하게 박혔다. 황소는 자신을 파묻으려는 듯 발로 모래를 파내며 고통과 분노로 울부짖었다. 입에서 거품이 부글거렸는데 그것이 황소가 눈물을 흘리는 방식 같았다. --- p.125 사람은 말을 지배하고, 야망은 사람을 지배한다. 그러나 황소가 원하는 것은 오직 투우장에서 혼자가 되는 것뿐이다. --- pp.126∼127 오른편에는 바다, 왼편에는 산이 있다.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면 어디를 보아야 할까? 아, 저 바다 위를 떠다니거나 저 산 위에서 은둔자로 살고 싶다. --- p.188 지나치기와 물러서기는 할 만큼 했다. 오자마자 미끄러져 사라지는 이 모든 장소도 충분히 봤다. 지금 원하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 땅에 박힌 말뚝이 되는 것뿐이다. 아침저녁으로 익숙한 것을 주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 크다! --- p.215 |
때때로 우리에게 잘못된 일이 생길 때마다
한 걸음 더 스페인 쪽으로 《조금 미친 사람들》은 화가, 건축가, 만틸라를 걸친 여인, 플라멩코를 추는 집시, 광란의 투우사, 경이로운 구두닦이 등 열정적이고 어딘가 조금 미쳐 있는 듯한 스페인 사람들을 따르는 여행기다. 차페크는 관광객의 시선이 아닌 이웃 주민의 시각으로 스페인을 바라보았다. 특히 플라멩코나 투우 같은 스페인 고유의 문화를 각별히 존중했다. 금방이라도 바닥에 발을 부딪치는 딱딱 소리가 들릴 것처럼 플라멩코 댄서들의 움직임을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그려냈고, “책에서조차 죽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에 조금의 매력도 느끼지 못하는” 차페크답게 투우가 주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했다. 황소의 목에 창을 꽂아 넣는 투우장의 풍경은 분명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만, 모래 위로 엉키는 수많은 관중의 함성과 감정을 세밀하고 속도감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솜씨는 그가 왜 세계적인 작가인지 단번에 증명해준다. 바로 그 순간 안달루시아 기수는 이미 말을 돌려 버터 덩어리에 나이프를 꽂듯 황소의 목에 창을 박아 넣었다. 그러자 관중이 일어나 환호했다. 그리고 책에서조차 죽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에 조금의 매력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죽음이 농담도 구경거리도 아니라고 여기는 나는 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다. 물론 이는 공포의 결과였지만, 감탄도 포함하는 것이었다.(133∼134쪽) 차페크에게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다른 문화와의 진정한 만남을 의미했다. 이는 오늘날 SNS에서 누가 더 화려한지, 누가 더 좋은 것을 가졌는지, 얼마나 많은 곳을 가고 맛난 음식을 먹었는지를 자랑하고, 다양한 포즈를 뽐내며 ‘좋아요’를 수집하는 자극적인 여행과는 사뭇 달라 한층 인상적이다. 벨라스케스, 리베라와 함께 스페인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무리요가 그린 소년들은 전 세계 박물관에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지만, 차페크는 박물관 대신 땀 흘리는 광장과 산책로에서 이 소년들을 발견해낸다. 비록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그들에게 동전을 갈취당할지라도 무리요가 만난 소년들의 얼굴이 바로 이들과 가장 닮아 있음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차페크에게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거리야말로 가장 좋은 박물관”이었다. “당나귀가 귀를 뒤로 바짝 붙여야”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비좁은 골목이나 “허름한 벽과 창살 달린 창문 사이로” 설핏 비치는 하늘이나 “자수를 놓거나 금으로 세공하거나 보석을 박는 등 모든 방식으로 미친 듯이” 장식한 교회들을 지나치다보면 박물관에서만큼이나 걸음을 자주 멈출 수밖에 없음을 유쾌하게 드러낸다. 나아가 “알라신의 격렬한 글씨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잉카의 황금, 다양한 시대와 신들, 문명과 인종들의 삶”이 엉킴 없이 조화를 이루는 광경을 마주할 때면 “꿈속을 걷듯이” 스페인 땅을 거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조금 들뜬 목소리로 확신한다. 당신은 포도주나 기름을 실은 당나귀를 피해 가며, 창문의 아름다운 하렘 창살을 훔쳐보고 꿈속을 걷듯이 걸어간다. 꿈속을 걷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일곱 걸음마다 멈춰 서게 될 것이다.(33∼34쪽) 차페크와 함께 관능적이고 매력적이며 아늑하고 다정한 세비야 거리를 걷고, 곳곳에 무어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알카사르 정원을 방문하고, 만틸라를 두른 까만 눈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다보면 알게 모르게 우리가 스페인을 꿈꿔왔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조금 미친 사람들》은 웃고 춤추고 채색하고 사유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여행기이자 녹아내릴 듯 강렬한 매력의 스페인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만드는 책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가닿을 수 없는 아름답고 숭고한 모험의 땅 거리는 그저 지나가는 곳이어서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 영국인들과 다르게 스페인 사람들은 삶의 매 순간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스페인의 거리는 “포도주로 가득 찬 술잔처럼 생기 넘치”고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다. 스페인에 발을 내디딘 순간 이 사실을 깨달은 차페크는 거리와 광장, 골목과 정원에서 끊임없이 스페인을 마주한다. 태국의 전통 춤처럼 우아하고 기품 있는 동작으로 신발을 문지르는 구두닦이부터 캔버스 밖에서 살아 움직이는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인물들, 자정에야 문을 여는 극장과 새벽 2시에도 북적이는 댄스홀, 가우디처럼 “열정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끌어올린 기발한” 도시의 건축가들까지 자신의 삶과 열정을 막다른 길로 내몰길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을 만난다. 차페크는 이들의 생활에 찬찬히 녹아들어 “눈이 자신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고정된 사람은 모두 조금 미친다”라는 자명한 삶의 진실에까지 가닿는다. 미치지 않고서야 온전히 세계를 살아내기 힘든 우리의 시선이 스페인에 자꾸 머무는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