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존립 화백은 화가란 자신의 혼을 불사르며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탐험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업실에서 새로운 작품과 함께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을 떠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조화롭다. 형형색색의 나무, 꽃, 사람이 화면을 가득 메우지만 모두 함께 어우러진다. 그는 심안(心眼)의 렌즈를 통해 자연과 사람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오염되지 않은 ‘순수’를 찾아내 화폭에 옮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깨끗함과 편안함이 느껴지고 어느덧 순수해진 자신이 느껴진다.
희망은 눈물로 피는 꽃이다 그녀는 신문 배달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꿈을 키우는 여고생이었다. 어머니는 부부간의 갈등으로 집을 떠났고, 그녀는 이른 나이부터 일을 하며 병든 아버지와 여동생을 부양해야 했다. 그러나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중략) 그녀가 내게 편지를 보낸 것이 그즈음이었다. 편지에는 추운 겨울 새벽에 신문을 돌리다가 갑자기 너무나 서러워져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서 좀처럼 하지 않는 답장을 보냈다. 당시 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중 C형 간염 판정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청이 들어오는 강연을 마다할 수도 없는 곤란하고 피곤한 상황이었다.(중략) 그녀와 나는 짧은 기간 동안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연락이 뜸해졌다. 1년여가 지난 어느 날 다시 그녀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pp.38-39
때론 자신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녀는 50대의 여성이다. 아동복을 파는 옷가게를 운영하며 집안의 가장 노릇과 어미 노릇을 해왔다.(중략) 지난 30년 동안 남편과 아들 넷을 그렇게 건사해 왔다. 그 와중에 봇짐장사를 시작으로 아동복 장사를 25년 동안 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아침밥 준비하고 6시까지 가게에 출근하여 저녁 6시에 퇴근했다. 다만 현재 그녀는 퇴근 후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학원으로 향한다. 7시부터 4시간 정도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고생을 하면서 아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머리에 피가 터지도록 공부하는 아이가 생기길 바랐으나 그마저도 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pp.228-229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를 찾아라 어느 날인가 느닷없이 프리랜서 피디라는 사람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밥을 사겠다는 내용이었다. 약속 장소에 그녀는 자신의 어린 아들도 대동하고 나왔다.(중략) 그녀의 취미는 아이를 들쳐 업고 외출을 할때 서점에 들르는 것이었다. 그날도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들었다. 내가 쓴 책이었다.(중략) “인생 한 번인데 이렇게 살 수는 없단 생각을 했어요. 용기를 내기로 했죠. 다시 공부를 했고 프리랜서 피디가 될 수 있었습니다.”(중략) 지뢰를 밟아 발가락을 잃었지만 굴하지 않은 것이 유명세를 탔던 것이다. 소말리아에서 해적들에 의해 우리나라선원이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가장 먼저 찾아가 해적들과 인터뷰한 것도 그녀였다. ---pp.268-269
때론 기적도 있다 그녀의 이름은 김세나. 이미 언론에도 수차례 오르내린 대한민국의 장교다. 그녀는 그냥 장교가 아니다. ROTC 전체 5,000여 명 가운데 훈련 성적 수석, 장교 임관 성적 차석으로 올해 3월에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그녀가 유명하게 된 것은 단순히 성적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횡문근융해증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병을 앓았다. 이 근육이 녹는 병 때문에 그녀는 해군사관학교 생도가 되어서도 자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력의 소유자다.(중략) 세나의 어머니는 여성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었는데, 내 독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 내 책을 소개해 주었고 세나는 군인의 꿈을 키워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