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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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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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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년 10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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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3.71MB ?
ISBN13 978896051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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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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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지 몇 시간, 때로는 며칠 내에 몸 안의 DNA 가닥들이 점점 더 작은 조각들로 끊어지는 한편, 다양한 형태의 다른 손상들이 축적된다. 이와 동시에 평상시에 박테리아를 억제하던 장벽들이 무너지면서 장과 폐에 사는 박테리아들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들이 힘을 합쳐 우리의 DNA 안에 저장되어 있는 유전정보 -한때 우리 몸을 형성하고 유지하고 기능하게 만들었던 정보-를 없앤다. 그 과정이 완료되면 유일무이한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마지막 흔적이 사라진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물리적 죽음은 이때 비로소 완료되는 것이다. --- p.22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내 연구실에서 일하는 과학자들과 함께 나누는 집중적인 토론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동안의 성공에는 그러한 토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연구에만 몰입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떠오르지 않는 생각들이 그러한 토론에서 나오곤 한다. 나아가 프로젝트의 결과에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은 과학자들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그들은 애정을 쏟고 있을 뿐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미래가 걸려 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사로잡히는 희망적 사고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론에서 내 역할은 사회를 보면서 고려해 볼 만한 생각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 p.37

작은 미라 조각을 예란에게 보내고 나서 결과를 기다렸다. 과학을 할 때 가장 괴로운 순간들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싶다. 내 연구의 성패가 다른 누군가가 하는 일에 달려 있는데 그것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결코 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전화벨이 울릴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고 나서 마침내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좋은 소식이었다. 그 미라는 2400년 된 것이었다. 대략 알렉산더 대제가 이집트를 정복한 시기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선 밖으로 나가서 커다란 초콜릿 상자를 하나 사서 예란에게 보냈다. 그런 다음 내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 p.59

나는 고대 DNA 분야가 분자생물학이나 생화학에 대한 탄탄한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 걱정스러웠던 터였다. 이런 사람들은 단지 고대 DNA에 대한 연구 결과에 동반되는 언론의 관심에 현혹되어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된 오래된 표본들에 무작정 PCR를 적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 연구실 사람들이 사석에서 쓰는 표현을 빌리면 그들이 하는 것은 “면허 없는 분자생물학”이었다. --- p.39

멸균 시설 내에서 일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멸균복으로 갈아입는 방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뼈 시료를 가루로 가는 일 같은 ‘더러운’ 일을 하는 준비실로 들어간다. 거기서 다시 DNA를 추출하고 추출된 DNA를 조작하는 일을 하는 내실로 들어가게 된다. 그 방에서도 귀중한 DNA 추출물은 특수 냉동고에 저장된다. 이곳에서 하는 모든 일은 공기가 여과되는 후드 밑에서 이루어지게 된다.(그림 7.1을 보라.) 그뿐 아니라 멸균 시설 전체의 공기가 순환되고 여과된다. 바닥의 격자망을 통해 빨려 나간 공기는 1/200밀리미터보다 큰 모든 미립자의 99.995퍼센트가 제거되어 그 방으로 되돌아온다. --- p.147

한편 헨드릭의 논문은 과학 하는 사람들의 딜레마를 잘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완전한 이야기를 하는 데 필요한 분석과 실험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비록 덜 완전하지만 결국 전달하려는 내용은 같은 이야기를 먼저 할 수 있었다. 그러면 더 나은 논문을 발표해도 누군가가 진정한 돌파구를 만든 다음에 세부적인 부분을 완성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만다. 헨드릭의 논문이 발표되고 나서 우리 연구팀은 이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벌였다. 몇몇은 우리가 더 일찍 발표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p.194

과학적 협력을 끝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협력자가 사적인 친구가 되었을 때는 더더욱 어렵다. 나는 에디의 가족과 함께 버클리에 머문 적이 있었고 함께 자전거를 타고 언덕 위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 다녔으며 콜드스프링하버 회의가 열리는 동안 뉴욕의 극장에도 함께 갔다. 나는 그와 어울리는 것이 항상 즐거웠다. 그래서 에디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뭐라고 써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 p.215

반면에 네안데르탈인이 도축당했다면 뼈들이 부서지고 긁히고 살점과 골수를 다 잃은 다음에 내던져졌을 것이고 그중 몇몇 뼛조각들은 금방 건조되어서 박테리아가 증식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빈디자의 몇몇 표본에서 DNA를 회수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네안데르탈인의 식인 풍습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 p.224

나는 몇 주 동안 팀원들에게 연구실에서 그들이 하는 모든 단계에 대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 하는 전략은 젊은 시절 스웨덴에서 군사 훈련을 받을 때 전쟁 포로 심문관으로서 교육받으면서 익힌 것이다. 질문을 하면 할수록 시퀀싱 도서관을 준비할 때 정제를 심하게 하도록 권하는 454의 지침이 지나친 DNA 손실을 초래한다는 의심이 강해졌다. 나는 우리가 하는 실험의 모든 단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p.242

금요일 회의에서 내가 이 아이디어를 말했을 때 팀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깔끔한 방법이라서라고 내 멋대로 짐작했지만, 그들이 침묵했던 것은 내가 우리 팀의 중요한 운영 방침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 방침이 우리 팀의 가장 큰 장점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었지만 가끔은 약점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나는 모든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즉 회의를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마지막에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내는 방식을 유도했다. --- p.242

우리는 금요일 회의에서 이 문제를 거듭해서 논의했다. 내게는 이 모임이 지적 체험의 장일 뿐 아니라 사회적 체험의 장이기도 했다. 대학원생들과 박사후 연구생들은 자신들의 경력이 실험 결과와 논문에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어서 중요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는 반면, 팀의 목적에는 이익이 되지만 중요한 출판물의 주요 저자가 될 가망이 없는 일은 피하려 한다. 나는 신예 과학자들이 주로 이기심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내 역할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해서 그 사람의 경력에 도움이 되면서도 프로젝트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라고 여겼다. --- p.246

일반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은 중국에 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나는 고생물학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할 준비가 늘 되어 있었다. 내가 ‘마르코 폴로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중국에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2007년에 요하네스가 고생물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다고 생각하는 지역에서 동쪽으로 약 2000킬로미터쯤 더 떨어진 곳인 시베리아 남쪽에 네안데르탈인들 -혹은 네안데르탈인의 mtDNA를 지닌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지 않았던가. 혹시 그들 중 일부가 중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 p.300

나는 두 통의 이메일을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분석상의 결함이 없는지 아주 꼼꼼하게 읽었다. 결함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사무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지난 몇 년 동안의 논문과 노트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어수선한 책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데이비드와 닉의 결과가 컴퓨터 스크린에 떠 있었다. 그것은 어떤 기술적 오류가 아니었다. 현대인에게 정말로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여 있다. 이럴 수가! 지난 25년 동안 꿈꾸어 왔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인류의 기원과 관련해 수십 년 동안 도마 위에 올랐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손에 쥐었다. 그런데 그 대답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현대인들의 유전정보가 모두 아프리카에서 나온 최근의 조상들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내 멘토인 앨런 윌슨이 앞장서 주창했던 엄격한 아프리카 기원설과 달랐다. 그것은 내 자신이 믿고 있던 사실과도 달랐다. 네안데르탈인은 완전히 멸종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DNA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계속 남아 있다. --- p.308

그래도 나는 우리의 결과를 세상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과학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확고부동한 진리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추구하는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과학은 유력 인사들과 죽은 뒤에도 영향을 미치는 학자들의 제자들이 ‘통념’을 결정하는 사회적 활동이다. 이렇게 결정된 통념을 무너뜨리는 한 가지 방법은 데이비드와 닉이 한 것처럼 SNP의 대립인자들을 세는 것 외에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에 대한 추가 분석을 내놓는 것이었다. 추가된 독립적인 증거들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현생인류로 흘러갔음을 가리킨다면 그때는 세상 사람들도 납득할 것이다. --- p.311

‘오래된 지구’ 파의 대표적인 선교 집단이 휴 로스가 이끄는 ‘믿어야 할 이유Reasons to Believe’이다. 그는 현생인류가 약 5만 년 전에 특별히 창조되었으며 네안데르탈인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라고 믿는다. 로스와 ‘오래된 지구’ 파의 여타 창조론자들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섞였다는 연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니콜라스는 로스가 출현해서 우리 연구에 대해 논평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녹취록을 전해 주었다. 그는 “초기 인류가 매우 사악한 행동 습관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창세기에 나오기 때문에” 이종교배가 있었을 것으로 예측했으며, 신이 이러한 이종교배를 멈추기 위해 “지표면 전체에 인류를 강제적으로 흩어 놓았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이종교배를 ‘수간’에 비유했다. --- p.358

우리가 고생인류 집단과 현생인류 사이의 이종교배 사례를 이미 두 건이나 찾아낸 만큼 나는 이종교배가 인류의 진화사에서 흔한 사건이었을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았다. 나아가 데니소바인들이 현생인류와 기꺼이 성관계를 했다면 다른 고생인류와도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생인류의 확산에 대한 큰 그림은 대체 집단이 다른 집단을 멸종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지만, 나는 이것이 완전한 대체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보다는 일부 DNA가 생존 집단에게로 새어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확신한 나는 이 과정을 기술하기 위해 쓰인 다른 지면에서 보았던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구멍 난 대체leaky replacement”다. 내 생각으로는 데니소바인들의 확산도 ‘구멍 난’ 사건이었을 것 같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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