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치료는 강박장애를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하지만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 이는 어떤 행동을 시작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특정 행동을 멈추게 하는 뇌 영역이 비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약물로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약물치료가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이진 않으며, 중단하면 약효도 사라진다. 반면에 인지행동치료는 일생 동안 실천할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보통은 치료를 중단하더라도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인지행동치료는 현존하는 강박장애 심리치료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손꼽힌다. 이 치료법은 생각과 감정이 서로 얽혀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감정은 변화시키기 어려운 반면에 생각은 심사숙고해서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만약 현재에 처한 상황을 공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면, 과장되거나 비뚤어진 감정반응이 나올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강박적 생각을 떠올리지만 대개는 그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다. --- p.23~24
강박장애 환자가 강박사고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강박사고는 상당한 불안과 고통을 일으킬 뿐, 유쾌한 측면이 전혀 없다. 하지만 폭력행위나 착취행위를 준비하거나 실행할 때는 그렇지 않다. 수십 년간 성범죄자들을 치료해온 심리학자 윌리엄 마셜(William Marshall) 박사는 성범죄자들이 성범죄자나 소아성애자가 될 뜻은 없더라고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생각을 조금이라도 즐긴다고 지적했다. 둘째, 폭력 혹은 착취를 행동으로 옮기려면 단순히 마음에 품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어린이를 성추행하는 역겨운 상상을 원치 않게 떠오를 때 이성을 잃고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려면, 어린이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것보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우선시하고 아동 성추행이 아이들에게 그다지 해롭지 않다고 자신을 세뇌시켜야 한다. 하지만 강박장애 환자들이 집착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타인을 해칠 수 있을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 행복을 지켜줄 수 있을지에 몰두한다.--- p.50~51
현재로서는 강박장애가 왜 생기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제 막 강박장애가 왜 사라지지 않는지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강박장애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면, 어떻게 치료할지 그 방법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4천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하고 그 중 상당수가 현재 상황과 거의 혹은 전혀 상관없이 불현듯 떠오른다는 2장의 내용을 기억하는가.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정상적인 강박사고’를 한다. 이렇듯 사람들 대부분이 원치 않게 떠오르는 생각을 접하면서 살아가고 하루에 수백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구름처럼 스쳐가는 게 정상이라면, 어떤 사람은 유독 두세 가지 생각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그 사람이 그런 생각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은 그 생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가 아니면 가볍게 무시하고 넘기는가? --- p.73~74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떠오르는 어떤 생각에 일단 집중하면, 자동적으로 그 생각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평가하게 된다. 래치먼은 1997년 논문에서 강박장애 환자들이 침투사고의 심각성을 지나치게 확대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한 남성이 길거리에서 은밀한 신체 부위를 노출하는 상상을 하고는 자신이 실제로 그런 짓을 저지를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는 생각이 행동을 이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 여성이 자신의 아기를 떨어뜨리는 끔찍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매우 놀란 그녀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아기를 원망하는 것이 틀림없으니 아기에게서 멀어지는 게 좋겠다고 결정한다. 심리학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강박적 생각이 지속되는 데 기여하는 그릇된 판단의 유형을 몇 가지로 추려 정리했다. 이런 잘못된 판단이 계속 쌓이면 강박사고가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엄청난 위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 p.83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은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강박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강박사고가 떠오르면 어떤 위험이나 부도덕성의 신호라고 받아들이는데, 이런 해석은 무거운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때 강박행동이나 상쇄행동을 하면 이런 불안감이 다소 해소된다. 적어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보다는 괴로움이 덜할 것이라는 심리도 작용한다. 한편 강박사고를 원천봉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강박사고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강박사고가 위험하다는 처음의 해석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강박사고가 떠오르지 않도록 피해 다니다보면 그 생각이나 강박행동, 상쇄행동, 회피행동과 관련된 모든 것에 예민해진다. 그 결과 강박사고가 머릿속에 더 자주 등장하고 전체적인 주기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안내한 대로 5장의 훈련 두 가지를 완수한 사람은 자신의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 p.118~119
사람들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에 16시간 동안 4천여 가지 생각을 한다. 인간은 이런 과중한 정신활동을 어떻게 감당해내는 것일까? 정답은 집중력에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정보에 주목해야 하고 어떤 정보를 무시해야 하는지를 걸러주는 집중력 필터가 있다. 머릿속에 있는 내부정보와 주변환경에서 접하는 외부정보가 모두 이 필터를 통해 걸러진다. 가량 당신의 차가 철로에 갇혀 있는데 기차가 빠른 속도로 돌진하고 있다면, 안전벨트를 풀고 즉시 문을 열어 도망치는 것과 같은 생존에 관련된 정보에 매우 집중할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생존과 무관한 정보에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집중력 필터가 없다면 과연 인간이 한 생물종으로서 이렇게 번성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목표나 동기와 관련된 생각에 집중한다. 목표와 동기를 고취하는 생각뿐만 아니라 목표와 동기를 위협하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쉬지 않고 샘솟는 엄청난 양의 생각들을 바로 이런 식으로 관리한다.--- p.145~146
폭력과 성에 관한 강박사고는 다른 종류의 강박사고와는 달리 당사자를 겁먹게 만든다. 가령 위생이나 세균, 먼지에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지나친 걱정이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걱정을 한다는 사실에 겁을 내지는 않는다. 반면에 소중한 이를 해치거나 무고한 사람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상상이 들면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에 몹시 놀란다. 이는 폭력과 성에 관한 강박사고가 다른 강박사고들보다 훨씬 더 당사자의 도덕적 가치와 성격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런 강박관념을 극복하는 비결은 바로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해서 자신이 반드시 살인자가 소아성애자인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면 된다. 여기서 인정한다는 것은 그런 생각을 좋아하거나 용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도 흔하게 겪는 현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8장에서는 혐오성 강박사고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훈련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 p.163~164
자신의 강박장애와 관련된 도덕적인, 혹은 종교적인 가치를 세다보면 다섯 손가락이 모자랄 수도 있다. 이렇게 목록을 작성하고 나면,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자. 혹시 다른 것보다 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가치나 규범이 있는가? 최선을 다하는데도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치는 목표가 있는가? 이런 도덕적인, 혹은 종교적인 가치 중에서 당신의 강박장애와 더 가까운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중에서 당신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고 당신의 강박장애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것을 골라보자. 그리고 변화의 목표로 삼아보자. 이 훈련은 도덕적인, 혹은 종교적인 가치를 더 건전하고 현실적인 가치로 정립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친한 성직자나 목회자에게 작성한 표를 보여주면서 상의해보면 어떨까? 그분을 통해 당신의 목표 가치와 신앙에 득이 되는지 아니면 해가 되는지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종교적 목표와 가치를 어떻게 보는가? 당신의 목표와 가치가 그 종교에서 옹호하는 이상과 잘 어울리는가?--- p.208~209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강박사로를 마주했을 때 받는 스트레스가 병이 될 정도로 몇 년씩 지속되는 일은 없다. 노출훈련을 하는 동안 불안감 때문에 받는 몸의 고통은, 긴 계단을 올라갈 때의 과정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고통이 크게 느껴지지만 30분 이내에 견딜만해진다. 어떤 경우든 처음 상태 그대로 한 시간 이상 지속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강박사고가 떠오를 때 곧바로 강박적 의식행위를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여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될까봐 걱정하는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강렬한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않는다. 보통은 처음에만 심했다가 조금 있으면 기세가 꺾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노출훈련에 익숙해지고 나면 심적 고통의 등락 폭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진정되는 속도도 빨라진다. 마침내는 강박사고가 떠올라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아서 굳이 대처반응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p.237
일상에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얼마나 느끼는가는 강박장애 증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업무 마감이 촉박하거나 출산예정일이 임박했거나 평이 부정적인 수행평가서를 받았을 때처럼 불안감이 증폭되면 누구라도 극도로 예민해지기 쉽다. 즉 별것 아닌 일이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면 불쑥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과 같이 잠재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요소에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강박사고가 재발할 수 있고 때때로 더 심해져서 나타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스테케테 박사는 복귀(lapse)와 재발(relapse)을 구분해서 설명한다. 스테케테 박사의 정의에 따르면 재발은 강박장애가 제대로 돌아온 것을 말하는 반면에, 복귀는 강박사고와 대처반응 충동이 일시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강박장애가 ‘복귀’했을 때는 다른 스트레스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p.279~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