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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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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521쪽 | 773g | 155*233*35mm
ISBN13 9788982735523
ISBN10 898273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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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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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라고 부르지 마. 그녀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자네는 '하녀'가 아니잖아.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라고 묻지는 않았다. 내 입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는 일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읽을수 있었기에. 나는 실망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녀를 큰 언니처럼, 나를 보호해 주고 이해해 줄 엄마처럼 따뜻한 존재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전 임지에 있던 '아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실에 처박혀 지냈다. 이번 '아내'는 다르길 바랐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인생이었다면, 서로 좋아할 만한 여자로 여기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할 리 없고, 그녀 역시 나를 좋아할 리 만무하다는 걸 이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옆에 있던 탁자 위의 소용돌이 모양의 재떨이에 반쯤 피다 만 담배를 비벼 껐다. 한번 꾹 눌러서 비비는 무척 단호한 손놀림이었다. 대부분의 아내들이 자주 하는 가볍게 몇 번 걸쳐 살며시 탁탁 터는 동작이 아니었다.
내 남편 말인데, 그녀는 말했다. 그 사람은 그냥 그거야. 내 남편. 아주 분명하게 해두고 싶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이미 정해진 사실이라고.
네, 부인. 나는 깜빡 잊고 말했다. 옛날에 어린 여자애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 중에, 등에 있는 끈을 잡아당기면 말하는 인형이 있었다. 내 목소리가 꼭 그런 인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조로운 인형의 목소리. 그 여자는 아마 내 뺨을 철썩 갈겨주고 싶은 마음에 어쩔 줄 몰랐을 터이다. '아내'들은 우리를 때릴 수 있었다. 불문율로 이미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흉기를 사용하는 건 금지 사항이었다. 쓸 수 있는 건 오직 맨손뿐이었다.

그것도 우리가 투쟁했던 이유야, 사령관의 '아내'는 이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때까지 그녀는 불끈 주먹을 쥔,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달린 제 손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녀가 전에 본 적이 있는 여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 여자를 처음 본 건 내가 여덟 살이나 아홉 살 때쯤, 텔레비전에서였다. 엄마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요일 아침에 나는 먼저 일어나 엄마 서재에 있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만화를 보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볼 게 없으면 나는 '청소년을 위한 복음의 시간'을 보곤 했다. 아이들을 위해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찬송가를 부르는 프로그램이었다. 거기 나오는 여자들 중에 세레나 조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소프라노 솔로였다. 연한 금발에 체구가 작았고, 들창코를 하고 있었으며 찬송가 때마다 큰 파란 눈동자를 휘둥그레 치켜뜨곤 했다. 그 여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동시에 울 수 있었고, 목소리가 바르르 떨리면서 최고 음역에 다다르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뺨을 타고 우아하게 흘러내리도록 눈물 한두 방울을 떨어뜨리곤 했다. 그 후에 그녀는 다른 역할들로 옮겨갔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여자는 세레나 조이였다. 아니 한때 세레나 조이였던 여자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나빴던 거다.
--- p.30~32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법이다. 우리는 사령관과 단 둘이 만나는 일이 금지되어 있다. 우리는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첩이나, 게이샤나 창녀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를 그 번주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우리들에게서 쾌락의 요소를 철저히 제거했고, 은밀한 욕망이 꽃필 여지도 전혀 없다. 특별한 총애 따위는 그쪽이나 우리 쪽에서 미리 알아서 정리할 테니 사랑이 싹틀 발판조차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다니는 성배다.

그런데 왜 그는 한밤중에 단 둘이서 만나고 싶어하는 걸까?
만약 들키면 나는 세레나의 자비로운 처분에 맡겨질 것이다. 사령관은 집안의 기강을 흐트러뜨리는 이런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 여자들끼리의 문제기 때문이다. 그 후에, 아마 나는 재분류를 당할 것이다. 어쩌면 '비여성'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 p.233
"어떻소, 좀 특이한 경험을 해볼 준비가 됐소?"
"네?"
그의 이런 행동에서 나는 어색함을 느낀다. 나와 함께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확신하지 못하는 태도.
"오늘 밤에는 좀 놀래줄 만한 일이 있어서. 그쪽이 좋아할 만한 일."
그가 말한다. 그러더니 소리를 내어 웃는다. 하지만 오히려 비웃음에 가깝게 들린다. 나는 오늘 일어난 일들에는 전부 '좀'이라는 형용사가 붙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만사를 가볍게 여기고 싶어한다. 물론 나까지 포함해서.
"그게 뭐죠? 다이아몬드 게임인가요?"
이 정도는 마음대로 말해도 좋다. 그는 오히려 즐기는 것 같다. 특히 몇 잔 거나하게 들이킨 뒤에는. 그는 내가 경박하게 까부는 쪽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좀 낫지."
그는 감질나게 하려고 애쓰면서 말한다.
"보고 싶어죽겠어요."
"좋소."
그가 말한다. 그는 책상으로 가서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한 손을 등 뒤에 숨기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알아맞혀 보구려"
"동물, 식물, 아니면 광물?"
내가 말한다.
"오, 동물. 누가 뭐래도 동물성이야."
그는 짐짓 심각한 척하면서 말한다. 그는 등 뒤로 숨겼던 손을 내민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은 연자줏빛과 분홍빛이 섞인 깃털 한 줌처럼 보인다. 그가 이 물건을 흔들어턴다. 이건 틀림없이 여자 옷이다. 가슴 부위에 브래지어 컵도 달려 있고, 그 위오 보랏빛 스팽글이 뒤덮고 있다. 스팽글들을 살펴보니 아주 작은 별 모양이다. 깃털은 허벅지가 빠져나오는 구멍 주위에서부터 위쪽으로 달려 있다. 거들로 봐도 무방한 디자인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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