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3년 05월 06일 |
---|---|
쪽수, 무게, 크기 | 363쪽 | 450g | 128*188*30mm |
ISBN13 | 9788982816635 |
ISBN10 | 8982816631 |
발행일 | 2003년 05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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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3쪽 | 450g | 128*188*30mm |
ISBN13 | 9788982816635 |
ISBN10 | 8982816631 |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로맹 가리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조경란 |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 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 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인 살 수 없단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흥얼거렸던 노래가, 내가 읽은 소설 속 '모모(모하메드)'의 삶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던 그 순간, 이 노래가 얼마나 슬프도록 처연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나는 이미 모모의 생을 훔쳐 보았고 그 아이의 생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무릇 인간의 감정이란 알지 못했던 때와 알고 난 후에 다가오는 괴리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나날의 반복이다. 인간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느냐는 물음을 던지던 아이, 결국 인간은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열네 살 아랍 소년의 회고록은 가슴이 들끓을 만큼의 눈물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사랑해야 한다. 책의 마지막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이 북받쳐 올랐다. 모모가 지나왔던 열네 살 아니, 열 살이라고 알았던 어린 시절에 그 아이는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던가.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얼마나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나에게로 화살같이 내리꽂히는 질문 앞에서 속절없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를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하는 生. 생이라는 이름 하에 버티고 살아내는 우리에게 물음을 던짐과 동시에 답을 좇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이 끊임없는 생의 파편들 속에서 지금쯤 나는 어느 조각을 맞추고 있는가. 같은, 장님이나 다름없던 내 앞의 생에 눈 뜨게 해주었던...
소설의 얼개는 크게 복잡할 것도 없다. 열 살로 기정사실화 돼 있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 모모와 그 아이를 어릴 때부터 맡아서 길러주었던 젊은 시절 창녀로 살았으나 이제는 늙고 시들어버린 외모를 가지고 있는 로자 아줌마-이제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95킬로가 넘는 거구의 몸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빈민아파트의 7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가엾은 노인네. 소설은 로자 아줌마가 늙고 병들어 쇠약해져 가는 과정이 모모의 눈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는데, 열네 살 아이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은 가감 없이, 감정의 과잉 없이 퍽 담담히 그려져 있다. 빈민 아파트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현실적 구성원에 끼워주지도 않는 아류의 삶을 사는 사람들, 창녀의 아이들을 맡아서 키워주고 그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전직 창녀, 성전환자, 홀몸노인, 사회에서 소외당한 사람들 기타 등등... 하나같이 모두 고된 삶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들은 결코 등 돌리지 않고 서로 보듬어준다. 로자 아줌마의 늙어가는 육체와 정신 앞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모모는 몸은 아이지만 정신은 어쩌면 너무도 훌쩍 커버린 애어른일지도 모르겠다. 늙어가는 주변 사람들의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어린 소년의 눈에는 신기함 그 이상도 아니었다면 자신이 열네 살이라는 걸 알고 난 뒤에 다가오는 그 과정은 고스란히 슬픈 상실, 회의로 다가온다. 자기 앞의 생을 자각하던 그 순간부터 사회의 온갖 어두운 면을 다 바라보며 자랐던 아이, 약물 중독인 친구와 몸을 파는 창녀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잉태된 자신과 같은 생의 길을 잃은 갈 곳 없는 아이들. 이들 속에서 바라보는 모모의 현실적인 생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로자 아줌마의 죽음으로 가는 길목 안에서 그녀와의 끈끈한 유대를 느끼고 사랑하고 소중한 이를 잃어가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알아가는 모모의 모습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생의 여정이었다.
모모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로자 아줌마의 늙고 병든 모습은 곧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적으로 늙을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사회에서 바라보는 생산성의 가치도 사라지는 게 맞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아무리 늙었다 한들 가치 운운할 것이 되지 못한다. 이는 모모의 눈에 비치는 세상이 말해준다. 추악하고 더러운 인간의 면모도 분명 있지만 본질적으로 존엄하고 고귀한 인간의 내밀한 원초적 모습을 모모를 통해 대신 바라보게 한다. 그것은 인간과 생의 고귀함을 알아가게 함과 동시에 소설을 관통하는 중심 주제로서 이 생을 살아볼 만한 가치 있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과정이다. 정신이 혼미해지면 똥. 오줌을 휘갈기고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나오는 로자 아줌마지만 쉼없는 반복적 뒤처리와 그조차도 그녀가 좋아하는 향수로 덮어줄 만큼 모모의 사랑은 극진하다. 빌어먹을 더러운 세상이라 냉정하게 내뱉는 독설과 시니컬함이 주를 이루지만 그 세상에 속한 로자 아줌마를 비롯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극진히 아끼는 순수한 영혼도 공존하는 아이의 모습도 분명 보인다. 로자 아줌마를 통해 생의 희로애락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모모의 생이 아프다. 그 모습을 반추하는 현재의 나이 든 모모도 아프긴 마찬가지다. 또래의 아이들과는 부쩍 다른 생을 살 만큼 산 것 같은 말투와 그에 반대되게 사랑을 갈구하는 내면의 풍경 때문에 더할 것이다.
그리고 모모의 곁에서 언제나 함께 하는 영혼의 교감을 나눈 존재라고 생각 들었던 얼굴없는 아르튀르는, 비록 스스로 몸짓할 수 없는 물건(우산)일 뿐이지만 모모의 pantomime(거리에서의 호기심) 속, 그 아이의 고독함을 온전히 지켜보고 있던 유일한 친구이다. 모모의 정신적 지주이자 끝없는 사랑의 대상은 빅토르 위고를 우상시하는 이제는 늙어 눈먼 하밀 할아버지와 엉덩이로 벌어 먹고살았던 병든 로자 아줌마였지만, 이 아이의 궤변적인 언어의 배설과 세상을 초월한 듯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행동은 사랑에 굶주려 있는 아이의 그것이었다. 세상을 이만큼 살아와서가 아니라 '앞으로 그만큼 더 살아야겠기에' 모모의 생이 귀감이 되는 건 어차피 인간이라면 모두가 겪어 나가야 하는 부분적인 모습들이 조각조각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엄마를 찾으려 했고, 엄마의 사랑을 로자 아줌마를 통해 느끼고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목도하고, 길거리 삶을 살고 따뜻한 가정의 사랑을 갈구하고... 열네 살 아이가 감당해내기에는 너무도 벅찬 생의 조각들을 바라보며 이 속에서 내 조각을 열심히 찾고 맞추어 나가고 있는 내가 보였다.
에밀 아자르이자 로맹 가리. 그의 유명세와 파란만장했던 삶이야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부분이기에 세세히 언급 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다만,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듯 그 역시 자신에게 던지는 본질적 물음을 작품 속에 그대로 투과시켰다는 것밖에. 세상이 정해놓은 평가에 휘둘리기 싫었고,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길 바라면서 써내려 갔던 그의 창작열 속에서 본인의 입으로(정확히는 글로) 만족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나에게 주어진 생이기에 끊든 이어가든 스스로의 결정에 맡기고 말았던 안타까움이 있지만, 살아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룰 만큼 이뤘기 때문에... 라고 스스로 합리화한다면 그건 진정 자기 앞의 생을 다 살아낸 것이라고 말해도 될까? 모모에게서 사랑을 찾고 알아가고, 작가에게서 그 아이 혹은 그 자신에 대한 마음을 읽는다.
수상한 북클럽에서 본 작품 중 유독 눈길을 끈 소설 <<자기 앞의 생>>속 주인공 로자와 모모의 만남이 특별한 인연으로 마음 속 화톳불을 지핀다.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던 인생의 이면에 자리한 생활의 음영은 다양한 외양만큼이나 다채로운 인생 속에 녹아 있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생각한 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점이 많음을 알면서도 생각대로 살고 싶은 갈망이 컸다. 일회적인 유한한 삶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점을 떠올리며 로자 아줌마의 마지막 가는 길의 여운을 곱씹으며 모모와 그녀가 함께 지냈던 7층 후미진 공간의 음울함 속에 깃든 사랑의 힘을 그려본다.
'로자 아줌마'와 함께 승강기도 없는 7층에 살고 있는 아랍인 소년 모모는 빈민가에서 생활하며 희망을 꿈꿀 수 없는 공간에서 이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당위성을 부여하는 동반자로 구차한 삶을 지속하고 있다. 창녀 출신의 로자는 창녀들이 낳은 자식들을 돌보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녀 역시 한 때는 아름다움으로 쾌락을 팔며 지냈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둔중한 노인으로 변모해버렸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후로도 험난한 생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로자 아줌마와 함께 생활하며 일찍 철이 든 소년 모모는 삶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며 인생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갔다. 단란한 가정의 소소한 행복 속에 자라는 ‘나딘’의 집에서 겪은 일들은 모모의 마음속에 자리한 바람을 드러내게 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슬픔을 포용하고 살아야 함을 각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차피 나와는 번지수가 다른 곳이었으니까’라고 되뇌는 모모의 모습은 짐짓 괜찮은 척,어른인 척 하던 그의 태도에 안쓰러움이 일었다. 깊은 병으로 병원 시세를 져야 할 때가 되었음에도 로자 아줌마는 모모가 있어 그녀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의미 없는 생을 연장시키는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깊어진 로자 아줌마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던 모모의 비애는 커보였다. 의사는 로자 아줌마를 살리기 위해 병원에 보내라고 하지만, 로자 아줌마는 모모에게 그냥 죽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그동안 온갖 고통을 받으며 살아온 그녀는 지하실에 꾸며 놓았던 자신의 안식처에서 숨을 거두었다.
로자 아줌마의 죽음으로 모모와의 표면적인 인연은 끊어졌지만 서로가 함께 한 시간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일상이었다. 하밀 할아버지는 책머리에,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단다.’라고 말한다. 어린 모모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가족처럼 지냈던 로자 아줌마의 죽음 이후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살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힘겹고 고단한 생활이더라도 자기 앞에 놓인 시간을 담담히 수용하며 걸어가는 ‘자기 앞의 생’ 속의 인물들은 우리의 진짜 삶을 닮아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모모가 살아가는 환경은 상상했던 것보다 열악하고, 모모와 주변 사람들의 삶 또한 비참하지만 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융해해 살아나갔다. 자신의 앞에 놓인 삶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생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특히 로자 아줌마의 그 모든 추한 몰골에도 마지막까지 그녀를 힘껏 사랑했던 모모를 보며, 서로가 생의 의미로 자리하는 사랑을 한다는 것이 숭고한 사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나 또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삶을 살든,그 안에 사랑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만큼 처한 상황에서 자아내는 숱한 경험은 축적되어 개개인의 역사를 이루며 수많은 생 중에 개별성을 띠게 된다. 나딘처럼 넉넉한 재산에 화목한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생일 수도 있지만,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생처럼 고난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피폐해진 영혼을 일깨우며 살아갈 힘을 불어넣는 ‘사랑’은 그 사람의 생에 찬란한 빛과 가치를 선사해준다. 지금까지 나의 생에도 많은 사랑들이 있었고, 여전히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고마운 사랑들이 있다. 아낌없는 사랑으로 사랑하며 사는 가운데 우리의 삶을 다채로운 빛으로 투사하는 가운데 사랑을 발현하며 살고 싶다. 책 속 작은 조각을 꿰어 맞추며 작품을 완성하듯 단편적인 책 소개로 시작된 독서는 강렬한 울림으로 자기 앞에 놓인 시간 틀에 의미 있는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갈 에너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