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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골목
김탁환 | 난다 | 2017년 03월 0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9 리뷰 12건 | 판매지수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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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3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342g | 138*210*20mm
ISBN13 9791196003043
ISBN10 119600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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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엄마에 관해 쓰고 싶었다.
내 나이 서른 살에도, 마흔 살에도, 엄마의 삶이 궁금했다.
그때는 써야 할 이야기가 넘쳤으므로, 엄마는 자꾸 밀렸다. 언제나 내 뒤에 서 계실 거니까. 이번이 아니라도, 곧 돌아와 쓰면 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한번 미루니 두서너 해가 휙휙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장편작가가 되었고 등단 20년이 지났지만, 엄마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며 문장으로 옮기진 못했다.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옮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너무 늦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이.

*
일흔 살을 넘기면서부터 달라진 것이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친구가 뜨거운 물을 엎질러 손등에 화상을 입었대. 치료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낫질 않아 병원에 갔지. 의사 선생이 3도 화상인데 늦게 왔다며 야단치기에, 친구가 그랬대. ‘어차피 나중에 태워 없앨 몸, 연습한 셈 치지요.’”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연습하다가 건너갈 무엇이라는 걸까.

*
엄마가 말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하모니카 구멍 하나하나가 내가 다닌 진해의 골목 하나하나와 비슷한 것 같아. 이 작은 구멍에다가 얼마나 자주 날숨과 들숨을 불고 들이켰는지 넌 모를 거다. 하모니카란 악기는 참 묘해서, 숨의 세기와 빠르기가 조금만 차이가 나도 소리가 달라. 듣는 사람은 몰라도 부는 사람은 확실히 안단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백 번 불면 백 번 전부 다른 소리가 나. 이번에 너와 함께 다녀보니, 골목도 마찬가지더라. 적어도 백 번 아니 천 번은 오간 골목도 달라 보이고 또 달라 보였어. 골목을 넓히거나 새 건물이 들어선 것도 아닌데, 어쩜 그렇게 낯선 구석이 눈에 띄는지. ‘하모니카는 골목이다.’ 이런 문장을 써도 괜찮을까? 하모니카가 어떻게 골목일 수 있느냔 항의를 듣진 않을까? 혹시 그런 독자가 있으면, 진해로 오십사 말씀드려. 그럼 내가 골목을 다니며 하모니카를 불어드릴 테니까. 솜씨는 변변하지 않지만, 하모니카의 구멍과 진해의 골목에 대해선 상세히 설명할 수 있어.”

*
진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네버엔딩 스토리다. 처음엔 반년이면 충분한 기획이라 여겼는데, 2015년에서 2016년을 거쳐 2017년으로 넘어가도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엄마의 골목』에서 마지막 문장이 무엇일지 모르지만, 그 문장도 단지 출판사와의 계약에 따라 편집자가 임의로 자르는 것일 뿐, 정말 거기가 이 골목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막다른 골목 너머에 다시 골목이 뻗어가듯이, 진해의 골목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모두 다닌다 해도, 거기에 스며든 엄마 이야기, 내 이야기, 또 엄마와 내가 함께 골목을 오가며 나눈 이야기를 빠짐없이 담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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