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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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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Satant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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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춤의 순서)

I
1 그들이 온다는 소식
2 우리는 부활한다
3 뭔가 안다는 것
4 거미의 작업 I
5 실타래가 풀리다
6 거미의 작업 II 악마의 젖꼭지, 사탄탱고

II
6 이리미아시가 연설을 하다
5 되돌아본 광경
4 천국의 비전인가, 환각인가
3 다른 방향에서 본 광경
2 그저 일과 걱정 뿐
1 원이 닫히다

해설: 조원규

저자 소개2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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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sznahorkai Laszlo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났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1987년 독일에 유학했다. 이후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중국, 몽골, 일본(교토), 미국(뉴욕)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해왔다.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며 고골, 멜빌과 자주 비견되곤 한다. 수전 손택은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으로 일컫기도 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라고 밝힌 바 있다.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났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1987년 독일에 유학했다. 이후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중국, 몽골, 일본(교토), 미국(뉴욕)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해왔다.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며 고골, 멜빌과 자주 비견되곤 한다. 수전 손택은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으로 일컫기도 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감독 벨라 타르 등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탄탱고』(1985), 『저항의 멜랑콜리The Melancholy of Resistance』(1989), 『전쟁과 전쟁War and War』(1999), 『저 아래 서왕모Seiobo There Below』(2008), 『마지막 늑대The Last Wolf』(2009), 『세상은 계속된다The World Goes On』(2013) 등이 있다.

그의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다양한 국내 및 국제 문학상을 수상했다. 헝가리의 Tibor Dery 문학상(1992), 독일의 SWR-Bestenliste 문학상(1993), 대문호 산도르 마라이의 이름을 따 제정한 헝가리의 Sandor Marai 문학상(1998), 헝가리 최고 권위 문학상인 Kossuth 문학상(2004), 스위스의 Spycher 문학상(2010), 독일의 Bru?cke Berlin 문학상(2010) 등을 받았고, 2015년에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했다.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The World Goes On》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또 한 번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 알려진 이름은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였으나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 규정과 헝가리어의 성-이름순 표기 방식에 따라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로 표기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다른 상품

시인이자 번역가이며, 독문학자이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쳤다. 198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이상한 바다』, 『기둥만의 다리 위에서』, 『그리고 또 무엇을 할까』,『아담, 다른 얼굴』, 『밤의 바다를 건너』, 『난간』 등을 냈으며, 번역서로는 안겔루스 질레지우스의 『방랑하는 천사』,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나펠루스 추기경』,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 탱고』 『호수와 바다 이야기』, 『달빛을 쫓는 사람』, 『소박한 삶』, 『노박
시인이자 번역가이며, 독문학자이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쳤다. 198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이상한 바다』, 『기둥만의 다리 위에서』, 『그리고 또 무엇을 할까』,『아담, 다른 얼굴』, 『밤의 바다를 건너』, 『난간』 등을 냈으며, 번역서로는 안겔루스 질레지우스의 『방랑하는 천사』,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나펠루스 추기경』,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 탱고』 『호수와 바다 이야기』, 『달빛을 쫓는 사람』, 『소박한 삶』, 『노박씨 이야기』, 『성경 이야기』, 『유럽의 신비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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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412쪽 | 562g | 130*213*30mm
ISBN13
9791159921445

책 속으로

그는 슬픈 기분으로 불길한 하늘과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간 지난여름의 잔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홀연 그는 환영처럼 아카시아 가지 위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시간이 움직임 없는 영원의 원 속에서 유희를 벌이고 혼돈의 와중에 귀신이 재주를 피우듯 기상천외한 망상을 진짜로 믿게 하려는 것 같았다…. --- p.14~15

“그들은 1년 반 전에 죽었는데. 1년 반 전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런 사실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지.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 돼! 이건 덫이야. 알겠어? 덫이라고!” 후터키는 듣고 있지 않았다. 벌써 외투의 단추를 잠그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걸 보게 될 거야.”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신의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후터키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슈미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는 말했다. “이리미아시는, 위대한 마법사라네. 마음만 먹으면 소똥으로 성을 지을 수도 있지.” --- p.35

“그자들은 여전히 더러운 의자에 주저앉아 저녁마다 감자 요리나 먹으면서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의아해하고 있을걸. 의심에 가득 차 서로를 감시하고 조용한 방에서 큰 소리로 트림이나 하고. 그리고? 기다리는 거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끝도 없이 기다리다가, 누군가 자기들을 속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겠지. 돼지를 잡는데 혹시 뭐 주워 먹을 거라도 떨어질까 싶어 바닥에 배를 댄 채 도사리고 앉아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말이야. 그자들은 옛날 성에서 시중을 들던 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주인은 벌써 머리에 총알을 박고 자살했는데, 저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시체 주위에서 우왕좌왕하는 거야….” --- p.71

그는 모든 것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하찮은 세부라도 놓쳐선 안 되었다.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고 간과하는 것은 몰락과 질서 사이에 놓인 흔들리는 다리 위에 아무런 대책 없이 서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담배 부스러기나 야생 거위가 날아간 방향이나 별 뜻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 같은 것들도 그 연결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관찰해야 했다. 그래야만 자신도 어느 날 갑자기 흔적 없이 사라져서 저 끊임없이 무너져가는 질서의 말 못할 포로가 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 p.88

끝나가는 시월의 밤은 고유한 리듬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말이나 상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질서에 따라 나무들을, 비와 진창길을, 노을과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을, 피로하게 움직이는 근육을, 정적을, 구부러진 길과 풍경을 두들겼다. 머리카락은 무리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몸과는 다른 리듬을 따랐고, 성장과 몰락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수없이 두들기고 되울리는 한밤의 소리들은 짐짓 절망을 가리는 한 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한 장면 뒤로 불현듯 또 다른 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눈에 보이는 경계를 넘어서면 현상들은 서로 관련이 없어졌다. 마치 영원히 닫히지 않는 문처럼, 틈이, 균열이 있었다. --- p.132

불행은 너무나 오랫동안 그들을 비켜 가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후터키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슈미트의 요지부동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리미아시가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맹목적인 희망 자체가 그 어떤 가능성들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직 이리미아시에게만 농장 사람들이 포기하여 내버린 일들을 다시 건져 올릴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 그걸 갖지 못하게 된 게 무슨 대수랴? --- p.195

아코디언의 비단결 같은 곡조를 타고 거미들이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다. 거미들은 술병과 유리잔, 찻잔과 재떨이에 느슨하게 거미줄을 드리웠고, 테이블 다리와 의자 다리를 가느다란 실로 은밀히 연결했다. 마치 눈에 띄지 않게 그물망을 쳐서 미세한 움직임과 소리라도 즉각 감지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처럼. 거미들은 잠자는 사람들의 얼굴과 다리 그리고 손에도 거미줄을 쳤고, 그런 뒤에 번개같이 은신처로 퇴각하여 거미줄이 미세하게라도 흔들릴 때를 기다리다가, 그러다 다시 거미줄을 칠 채비를 했다. --- p.228

잠을 자지 못한 근심 어린 눈들에 눈물이 배어 앞이 흐려졌고, 그의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의 얼굴에는 갑작스럽고 은밀하며 불안정하지만 억제할 수 없는 어떤 안도의 표정이 어렸다. 여기저기서 짧은 탄식들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재채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몇 시간 동안 내내 기다려온 것이 바로 “현재보다 합당한 여러분의 미래”라는, 마음을 해방시켜주는 말이었던 까닭이다. 실망스러운 기색이었던 이리미아시의 눈빛은 어느샌가 신뢰와 희망, 믿음과 열정 그리고 결연함을 담고서 점점 강철 같은 의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 p.253~254

그는 처량하리만치 누추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는 자기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도록 가로막아온 것이 무엇인지를 돌연 깨달았지만, 그 순간의 명료함도 사라지자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지금껏 머물러 살 용기가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떠날 용기가 없었다. 짐을 싸면서, 그는 모든 가능성을 도둑맞고 하나의 덫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덫에 걸릴 것만 같은 예감에 휩싸였다. 그는 기계실과 농장에 갇힌 죄수였지만, 이제는 미지의 위험에 자신을 맡기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문을 여는 법도 모르고 창문으로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떤 날을 두려워했다면, 이제는 영원한 미지의 수인(囚人)으로서 지금껏 가졌던 것마저 스스로 잃도록 만들었다. --- p.271

“그물 조직이야, 처진 귀!” 페트리너가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이제 알겠나?” 둘은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리미아시는 몸을 약간 숙이듯이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이리미아시의 전국적인 네트워크 말일세. 이제 그 머리로도 좀 알겠어? 어디서든 작은 움직임이 있으면 즉시….” 페트리너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처음엔 희미한 미소가 얼굴에 떠오르더니, 이윽고 단추 같은 눈이 반짝였고, 흥분한 나머지 나중엔 귀까지 붉어졌다. 그의 온몸이 어떤 전율로 떨리고 있었다.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즉시… 어디서나… 뭔지 알 거 같군.” 그가 속삭였다. “정말 환상적인 생각이야.” --- p.307

주위에 바람이 일자, 눈이 멀어버릴 것같이 하얀 시신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참나무 꼭대기쯤에 이르러 옆으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주춤주춤 땅으로 내려와 다시 빈터에 내려앉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몸 없는 목소리가 성난 원망의 소리로 터져 나왔다. 그것은 죄 없는 불운에 체념하는, 불만에 가득한 합창이었다. 페트리너가 헐떡거렸다. (...) “뭐 좀 물어봐도 되겠나?” “어서 말해봐!” “자네 생각엔….” “응?” “지옥이 있을까?” 이리미아시가 침을 삼켰다. “누가 알겠나. 어쩌면 있겠지.” --- p.317

“여긴 뭐가 이래? 통행금지인가?” “아니, 가을은 원래 이렇지.” 이리미아시가 슬픈 어조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난로를 껴안고 앉아 봄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아. 날이 저물 때까지 창가에서 어정거리다가 그다음엔 먹고 마시고 솜털 이불 아래서 껴안고 잠이 들지. 이때쯤 사람들은 인생이 잘못되어간다고 느껴.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을 때는 아이들이나 고양이를 때리면서 좀 더 견뎌내지. 그렇게들 사는 거야, 처진 귀 양반!” --- p.326

모두 무엇에 휩쓸려 그렇게 이성을 잃고 먹이를 다투는 짐승처럼 서로를 물어뜯었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영원히 희망이 없을 것만 같던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드디어 황홀한 자유의 공기를 맡을 수 있게 되었는데, 어째서 창살에 갇힌 죄수들같이 날뛰며 새로운 현실을 부정하고 절망했는지, 어째서 미래의 보금자리에서마저도 자신들이 등진 위안 없는 몰락과 더러움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리라는 약속을 망각해버린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들처럼 이리미아시를 에워싸고 서 있었다. 해방의 감각보다도 더 뿌리 깊은 것은, 어쩌면 그들의 수치심일 터였다. --- p.345~346

그는 저택의 문가에 이리미아시가 서 있는 걸 본 순간부터 이미 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깨닫고 놀란 심정이 되었다.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오히려 희망은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이미 저택에서부터 그는 이리미아시의 말 뒤에 숨겨진 괴로움을 감지했다. (...)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 이리미아시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어떤 충동이, 즉 이전의 불꽃이 다 타버려 사라진 것이다. 그가 무슨 시늉을 하건 그것은 이제까지 해오던 무언가의 관성에 불과한 것이었다. --- p.355

“그래, 기막힌 하루였네, 그렇지?” 다른 서기가 말했다. “그래, 정말 그랬어. 빌어먹을!”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알아주기만 해도 좋겠는데 말이야.” 서기 하나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알아주지 않지, 조금도.” “그래,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 먼저 말을 꺼냈던 서기가 고개를 저으면서 동조했다. 그들은 다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각자 집으로 돌아간 그들은 현관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고 있었다. “힘든 하루였나요, 여보?” 그들은 따뜻한 실내로 들어서며 조금 진저리를 쳤고, 피로감을 느끼면서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별건 없었소. 맨날 그렇지, 뭐.” --- p.376

그는 열에 들뜬 것처럼 철자와 철자를 이어나갔다. 그는 모든 것이 글에 쓴 그대로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는 자기가 쓰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임을 깊이 확신했다. 수년 동안 고통스럽고 끈질기게 이어온 작업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그는 이제 유일무이한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 능력으로 끊임없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세계를 묘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도까지는 혼란스러운 사건들 배후의 메커니즘에도 간섭할 수가 있었다.

--- p.386~387

출판사 리뷰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
그리고 예술가들의 예술가


국내에서는 생소할지도 모를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헝가리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재능과 고도의 역량을 갖춘 작가로 평가받는 그는 묵시록적인 주제와 정서를 특유의 기위(奇瑋)한 문체와 형식에 담은 작품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 독창적인 작품 세계와 작품성을 인정받아 다양한 헝가리 국내 및 국제 문학상을 받아오다 2015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가 되었다.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같은 상을 받기 한 해 전의 일이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머리나 워너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음역을 가진 몽상가적 작가다. 그는 겁이 나고 낯설면서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웃긴 장면을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항시 언급되곤 하는 종말론적 성향에 관해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맨부커 수상 소감에서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수전 손택 또한 크러스너호르커이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으로 일컬었다. 수전 손택은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원작자로 참여한 영화 『사탄탱고』에 대해 “내 남은 생애 동안 매년 한 번씩은 반드시 보겠다”는 말로 상찬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단과 예술인의 찬사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익히 알려진 대로 영화감독 벨라 타르의 전작(全作) 작업에 참여하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국내 작가 한강과 함께 또다시 이름을 올렸다.

“클로드 시몽, 토마스 베른하르트, 주제 사라마구, W. G. 제발트, 로베르토 볼라뇨,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떠올려보아도, 크러스너호르커이가 가장 이상한 작가일 것이다.”_『뉴요커』
“카프카를 잇는 타고난 이야기꾼”_『워싱턴포스트』

악마와 추는 탱고,
앞으로 여섯 스텝 뒤로 여섯 스텝을 밟으며
굳게 닫힌 영원의 원(圓)을 이루다


어느 시월의 아침, 이제부터 끝없이 내릴 가을비의 첫 방울이 떨어지던 날, 후터키는 종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다. 교회도 종도 없는 곳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는 불길하고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것은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만 같은 징조로 느껴진다. 이후에 이어지는 일련의 소동극은 일견 우스꽝스럽지만 실은 집단농장의 공동체가 함께 일한 대가로 받은 공동의 삯을 일부가 갈취해 도피하려는 지저분한 음모의 과정이다. 실패한 집단농장의 마을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를 불신하며, 이미 몰락한 세계에 영혼의 기저까지 물들어 무력한 가운데 비열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그러다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자, 그 소식에 실린 불길한 기운과 다르게 마을은 이상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1년 반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이리미아시는 마음만 먹으면 소똥으로 성도 지을 수 있는 신비한 능력과 절대적인 카리스마의 소유자다. 절망에 빠져 있던 마을 사람들은 그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라 생각하며 도피를 포기한 채 그의귀환을 기다린다. 마을을 되살려줄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내놓을 기세다.

그러나 소설은 카프카의 소설을 연상케 하는 초반부의 부조리극을 통해 이리미아시가 결코 구세주가 될 수 없는 인물임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그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가난과 불안에 억눌리고 감춰져 있던 욕망을 비로소 들추어 꺼내고 그것에 취해 한바탕 탱고를 추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장밋빛 미래가 아닌 실패한 체제가 고안해낸 악랄한 도구로의 전락이자 뒤이을 세계의 타락이다. 작품 곳곳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종소리와 거미줄은 마을 사람들이 결국은 하나로 묶여 있고 한데 옭아매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적 장치일 테다. 하지만 폐허 속에 간신히 존재하는 종같이 그들의 공동체는 그 근원부터가 이미 존재의 의미를 잃은 채고, 다만 아무리 없애도 소리 없이 생겨나 모든 것을 뒤덮는 거미줄처럼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그들의 삶 위에 반투명한 유령으로 존재하며 하강하는 세계를 노래할 뿐이다.

이처럼 작가는 암울한 묵시록 문학의 대가답게, 헝가리 남동부의 버려진 집단농장 마을을 배경으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람들이 체제에 유린당하고 끝내는 고통의 원 안에 갇히고 마는 과정을 매혹적이고 무자비하게 그려냈다. 특히 작품의 제목에 들어가기도 한 ‘탱고’의 스텝, 즉 앞으로 여섯 스텝 그리고 뒤로 여섯 스텝의 형식에 맞춰 1부는 1장에서 시작해 6장으로, 2부는 역순으로 6장에서부터 시작해 1장으로 맺으며 하나의 원을 이루는 순환 구조의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각 장마다 등장인물의 시점을 달리하는 등의 형식 실험을 통해 고통의 악순환을 경이롭게 묘사했다.

작품 외적으로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을 꼽는다면 『사탄탱고』가 동구 공산권이 해체되기 전인 1985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탄탱고』의 번역자이자 시인인 조원규는 해설에서, 종말론적이고 묵시록적인 작품 성향을 가진 작가가 예견한 몰락은 아마도 정치적 저항의 표현이었을 거라며, 그럼에도 『사탄탱고』가 궁극적으로는 그리고자 한 것은 희망하는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탄탱고』는 역사적으로 동구 공산권이 해체되기 이전인 1985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아직 체제가 유지되던 동안에 작가가 그려낸 ‘몰락’은 정치적 저항의 표현에 다름 아니었으리라. (...) 이 작품은 한 시기의 체제 비판을 넘어서 좀 더 항구적인, 희망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한 문학으로 남았다고 할 수 있다. (‘해설’ 중에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으로는 『사탄탱고』 외에도 『저항의 멜랑콜리(The Melancholy of Resistance)』(1989), 『저 아래 서왕모(Seiobo There Below)』(2008) 등이 있다. 알마에서는 그의 대표작을 순차적으로 국내에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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