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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22g | 130*195*30mm
ISBN13 9791162850039
ISBN10 116285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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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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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끈을 가져다가 드러누워 있는 녀석들을 조심스레 일으켜 세운 후 몇 그루씩 묶어주었다. 꽃들을 세워주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네들은 서예가 선생께서 써준 글귀처럼 쉴 새 없이 명랑한 것 같아요.” 내가 거들었다. “그거 우리 집 가훈하면 좋겠소. 〈쉴 새 없이 명랑하자!〉”---「쉴 새 없이 명랑하자」중에서

내가 은행나무를 쳐다보며 문득 입을 열자, 함께 동행한 젊은 시인이 웃으며 대꾸했다. “고사목으로 보일 만큼 폭삭 늙었지만, 아직도 써야 할 청춘이 남았나 봅니다.” 그날 은행나무를 보고 온 뒤 나는 젊은 시인이 한 말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아직도 써야 할 청춘이 남았나 보다’라는 말. 이 은행나무처럼 연륜이 오래된 나무는 있지만 늙은 나무란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 나무는 늘 청춘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아직도 써야 할 청춘이 남아 있다」중에서

저물녘, 천둥지기 논들이 있는 농로를 걸었다. 모내기가 끝나 초록 기쁨이 초록초록 자라 논배미마다 우렁이가 까놓은 알들이 딸기 모양으로 볏잎에 붙어 있었다. 이제 곧 우렁이들은 알을 까고 나와 잡초를 씹어 먹고 벼가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돕다가 추수가 끝나면 석회질 껍질만 남으리라. 이것이 우렁이의 사랑법이다. 사랑을 자기 몸으로 아는 생명은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우렁이의 사랑법」중에서

일찍이 장자는 “군자의 사귐은 물같이 담백하지만,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고 했다. 여러 해 전 우리 가족은 시골로 솔가하여 야생의 삶을 즐기고, 잡초를 뜯어 먹으며 지낸다. 우리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묻는다. “아니, 잡초를 무슨 맛으로 먹죠?” 그러면 대꾸한다. “싱겁고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맛으로 먹죠. 그러면 자극을 탐하는 혀에 덜 놀아나게 되죠.” 요컨대 우리가 맛의 지배를 덜 받게 되면, 그만큼 존재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숱한 생의 속박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겠는가.---「맛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지기」중에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소속 칼리지의 주요 목표는 학식이나 지식을 두뇌에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곳 졸업생은 의사나 변호사, 신학자, 물리학자, 운동선수 같은 전문가가 되어 나가지 않는다고. 젊은이들은 이 칼리지에 2~3년을 머무르며 조화로운 삶을 배우는데, 육체, 정신, 심리가 고루 단련된 완벽한 인간이 유일한 목표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졸업식 때 받는 것은 전공 분야에 대한 증서가 아니라 ‘인간 증서’라고.---「인간 증서」중에서

잡초는 예측불가의 환경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을 가졌다. 어떤 식물학자는 이런 잡초를 두고 “예측불가능한 난세亂世를 좋아하는 식물”이라고 했다. 햐, 식물의 세계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웅숭깊다.---「삶이 버거울 땐 잡초를 보라」중에서

아내는 그동안 온갖 꽃씨를 구하고 틈틈이 뒷산을 오르내리며 야생화를 캐다 심으면서 정성을 다해 마당을 가꾸었다. 그래서 ‘꽃만으로도 부자’라고 탄성이 나올 만큼 우리 집 마당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정원으로 변했다. 그러나 혹한의 겨울을 지내는 동안은 가족들이 몹시 힘들어했다.---「꽃만으로도 부자」중에서

어느 날 나는 이 비단풀을 찾아 마당에 쪼그리고 앉았다. 적자색의 꽃은 몸을 낮춰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일 정도로 작았다. 과연 꽃에는 잔 개미들이 붙어 꿀을 빨고 있었다. 하여
간 그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식물과 사귀기 위해 마치 절을 하듯 한껏 몸을 낮추었다.---「하심」중에서

“아무렴 어때요. 우리가 농사짓는 동안은 우리 땅이죠.” 진심이다. 하늘을 소유할 수 없듯이 누가 땅을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말뜻을 알아들은 할머니가 한 술 더 뜨신다. “고 선상네는 진짜 부자네요.” 나는 할머니에게 엄지를 척 세워 보인다. “네, 부자 맞아요. 마을 논밭가의 잡초를 뜯어 먹으니, 우리 마을의 논밭도 다 우리 소유죠.” 할머니는 어이가 없는 듯, 그러나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벙긋 웃으며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신다.
---「나는 진짜 부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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