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07월 27일 |
---|---|
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381g | 140*200*20mm |
ISBN13 | 9788967355319 |
ISBN10 | 8967355319 |
발행일 | 2018년 07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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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381g | 140*200*20mm |
ISBN13 | 9788967355319 |
ISBN10 | 8967355319 |
추천의 글 | 김훈 전주곡 1장 가장자리의 시선: 여기서 내가 볼 수 있는 것 2장 젊은이와 노인: 세대의 춤 3장 리얼해진다는 것: 환상에서 착각으로 4장 일과 소명: 삶을 기록하기 5장 바깥으로 손을 뻗기: 세상에 관여하기 6장 안쪽으로 손을 뻗기: 당신의 영혼에 관여하며 머물기 7장 가장자리를 넘어: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후주곡 |
파커 J. 파머의 책은 훌륭하다.
파커 J. 파머의 책은 지루하다, 졸립다.
300쪽도 안되는 한 권을 읽기 위하여 여러 차례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아내 샤론 파머는 내가 쓴 모든 글을 가장 처음 접하고, 예술가의 눈으로 읽어준다. 원고를 어떻게 편집하는지 물어보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세 가지 질문을 해요.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명료한가? 아름다운가?'...(256쪽)"
파머의 책은 말할 만한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것은 맞는데, 명료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말하지 못하겠다.
"...이 책에는 주관적인 느낌을 묘사하는 형용사가 많이 나온다. 추상적인 개념과 달리 그런 단어는 한국어로 정확한 대응어를 찾기가 어렵다. 사전에 여러 가지 한국어 풀이가 나와 있지만, 어느 것으로 번역하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크게 달라진다...(265쪽)"
명료하지 못한 이유는 번역자의 넋두리에 잘 나와있다.
그래도 천천히 곱씹으며 읽다보면 순수한 지성의 향기를 흠향할 수 있을 것이다.
파머 선생이 말년에 출간한 책이다. 노년의 삶에 대한 깊고 아름다운 사색이 돋보인다.
나는 아직까지 파머 선생만큼 살지 못했다. 이제 겨우 반 백 년 이상 살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또는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수많은 책을 보고 강연을 들어보았다. 책과 강연들엔 정말 좋은 말들이 많다. 그러나 산전수전 겪어보니 삶의 가치관에 거창한 철학이 필요한 것이 아니더라. 딱 두 가지만 각골난망할 수 있다면 소크라테스도 필요 없겠더라.
첫째, 황금률. 누구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대로 대접하라.
둘째, 세상에 공짜는 없다.
파머 선생의 이 훌륭한 작품도 저 두 가지에 대한 변주곡에 다름 아닐 수도...
지난 가을 만난 책인데, 저자에 대해서도,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채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모두들 중심을 향해, 모든 것의 가운데에 서기 위해 달려가는데, 그 와중에 ’모든 것의 가장자리‘라니. 뭔가 초연한 느낌도 들지만 동시에 세상물정 모르는 비현실적인 소리라 삐딱하게 봤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자꾸만 눈길을 끌더니 결국은 집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책날개에 적힌 저자 파커. J. 파머에 대한 소개를 옮겨적으면 아래와 같다.
미국 고등교육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왕성한 저술과 다양한 강연으로 미국 각계각층의 뜨거운 지지를 얻으며 시민들의 멘토로 추앙받는 사회운동가, 작가이자 교사, 활동가서로 그의 가르침은 교육, 의료 종교, 법률, 자선사업, 정치, 사회 변혁 등에서 커다란 영감을 주고 있다.
솔직히 저자 소개를 읽다가 너무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에 책 읽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왠지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훌륭한' 분의 이야기는 내 일상에 적용하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음..나의 삐딱함이 다시 한번).
다행히 이런 망설임은 책을 읽으며 해소되었는데, 저자의 글은 담백하고 간결한 느낌을 주었다.
이 책을 읽을 무렵 나는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멘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대단한 고민은 아니지만, 나의 가치 기준에 대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노년의 나이(저자는 1939년에 태어났다)라 말하는 저자의 글에 반가움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해서 멘토라거나 진정한 '어른'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왠지 나보다 많은 시간동안 쌓인 연륜을 엿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있는 곳에 있었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했다. 우리는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섰고, 실패로부터 배웠으며 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았다. 그리고 몇 가지를 바로잡기 위해 뭔가를 해왔다. p.58
저자의 글이 좋았던 부분 중 하나는, 저자가 어린 세대(저자의 기준으로)에 대해 인정하고 그들과 시선을 맞추려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젊은이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노인들에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수를 하겠지만, 우리가 저지른 것과 똑같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고, 그들의 세계는 우리가 살아온 세계가 아니며, 그들은 젊은 날의 우리보다 더 현명할 수 있다. p.60
내용 중 직업과 소명을 이야기하는 챕터가 눈길을 끌었는데, 내 스스로 나의 소명에 대해, 그리고 나의 직업에 대해 종종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는 '돈을 버는 수단은 꽤 자주 바뀌었지만, 내 소명은 언제나 한결같았다(p.122).'고 말한다.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나이가 들수록, 직업과 소명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노인, 특히 남자들이 퇴직 이후 절망에 빠지는데, 이는 주요 수입원만이 아니라,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밥벌이를 위한 직업이 있었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명, 즉 사람이 죽을 때까지 추구할 수 있는 소명이 없었다. p.122
나는 어떠한가? 솔직히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이 두가지의 구분이 명확치 않은 것 같다. 마음의 한쪽에서는 그 둘을 구분하여 생각하고 정의내리지만, 또 한쪽에서는 한데 엉켜서 나를 움츠리게도 또 아무것도 아닌 일로 허세를 부리게도 하니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아직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기르지는 못했다. 그리고 아직은 가장자리보다는 가운데에 있고 싶은 욕심도 있는 듯 하다. 지금 당장 나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겠다 다짐하지도 못하겠다. 다만, 그 욕심으로 나의 일상을 외면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언젠가 가장자리에 닿았을때 저자처럼 의연히 그 여행을 즐기고 싶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여기에 오기까지 일생이 걸렸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풍경과 얼굴에 스치는 산들바람은 그 여행을 가치 있게 해준다. p.24
제법 오래전에 읽은 책이어서 그때 적어둔 문장들을 보면서도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들도 있다(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책을 읽자마자 글을 남겨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와닿는 문장들을 만나고 그 중 2020년의 첫주말을 보내는 지금, 내게 들려주고 싶은 글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만 매달리면, 생기 잃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초심자의 정신을 기르십시오. 모르는 것을 향해 곧장 나아가세요. p.72
*나에게 적용하기
나의 소명과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그 둘의 균형을 맞춰가기(적용기한 : 지속)
*기억에 남는 문장
우리는 쇠퇴와 무기력이 아닌 발견과 참여의 통로로 나이듦의 프레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p.22
미래에 대한 책임을 젊은 세대에게 모두 지우는 것은 불공정하다. 그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일정 부분 우리 기성세대가 저질러놓은 것이다. p.56
모든 실수와 혼란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나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나이가 들어가며 때로 ‘복잡함의 이면에 있는 단순함’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몇 가지 답이 분명해졌습니다. 은총, 용서, 가족과 친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내 고군분투에서 외로움을 덜어준 사람들의 개방성이 그것입니다. p.69
어느 누구도 죽을 때 “그동안 자기중심적으로, 나만을 보살피며, 나를 지키면서 살아올 수 있어서 참 기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열린 마음과 너그러움으로 여러분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세요. p.72
다양성은 내게 있어 삶의 재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는 충만하고 건강한 삶의 기본 요소다. p.180
배경이 다른 사람들은 다른 것들을 알고, 아는 것을 다르게 해석한다. 우리가 ‘다름의 대화’ 안으로 모일 때, 집단은 그 안에 있는 개인들보다 더 현명해진다. p.183
둘 다 both-and 의 복잡성보다 이것 아니면 저것 either-or 의 용이성을 선호하는 문화에서 사는 우리는 대립하는 것들을 붙들고 있느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어둠 없는 빛, 가을과 겨울이 필요 없는 봄여름의 장관, 죽음의 고통이 없는 삶의 쾌락을 원한다. p.228
오늘, 여든 살에 다가서며 나는 온전함에 이르는 지름길이란 없음을 안다. 유일한 길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애정 어린 팔로 감싸 안는 것이다. 이기적이되 관대한, 악의적이되 동정적인, 비겁하되 용감한, 기만적이되 신뢰할 수 있는 모습들 말이다. p.238
자기 모습 전체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법(노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되는 과제)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첫째, 젊은 세대와 접촉하라. 그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우며, 에너지를 얻고, 그들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하라.
둘째, 당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회피하지 말고, 그것을 향해 움직여라.
셋째,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자연에서 보내라. p.239, p.240
한 번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진정한 자아로, 자신이 아는 한 최선의 방식으로 여기에 존재했으며, 현실에 치열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삶을 영위했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은혜로운 일이 있을까. p.241
*분류 : 인문
중심부는 지키는 것에 급급할 뿐입니다.
변방이 창조공간입니다.
- 신영복, 「변방과 중심」
가장자리에 관한 글을 읽으며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이 자꾸 생각났다.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은 공간 개념이고 파머의 가장자리는 기간 개념이지만 일맥상통하는 게 있기 때문일 테다. 신영복 선생님은 인류의 역사에서 변방의 개념을 끌어왔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언제나 변방이 새로운 역사의 중심이 되어 왔다고 한다. 오리엔트의 변방인 그리스·로마, 그리스·로마의 변방인 합스부르크와 비잔틴, 근대사의 시작이 된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미국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은 그 중심지가 부단히 변방으로 변방으로 이동해 간 역사라는 한다. 역사에 사표가 된 인물들 역시 변방의 삶을 살았다. 마하트마 간디의 삶이 그러했고, 공자(孔子)의 삶이 그러했다. 조선의 이성계 또한 변방인이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변방에서 역사의 중심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변방은 단순히 공간적 개념이 아니다. 변방은 ‘변방성’, ‘변방 의식’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자신을 주변화하는 것이다. 비록 현재 내가 어떤 장세(場勢)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더라도 변방 의식을 내면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변방 의식을 통해 성찰(省察)하고 이를 통해 부단한 변화와 소통을 이루어야만, 생명체로서의 존재가 가능하다. 생의 가장자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파머는 가장자리를 중심에서 밀려난 소외 지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애가 완전한 파노라마로 보이는 확장성의 자리로 여긴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바로 이 순간의 은총을 새삼 깨닫고 만무에 깃든 경이로움에 눈을 뜨는 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단지 더 이상 잃을 게 남아 있지 많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신비로부터 왔고 신비로 돌아간다는 것. 또 이것도 안다. 죽음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면 삶의 선물에 눈이 뜨이며 경외감을 느낀다는 것. (32쪽)
나는 지금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거나 그에 대해 답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편안하게 머문다. 내가 할 일은 여럿 가운데 하나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뿐이다. 태양 아래 서서 자신과 타인들의 생명과 사랑으로 성숙해갈 수 있도록 돕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38쪽)
죽음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지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안다. 이 행성에 도착했을 때 내가 떠나온 곳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고, 따라서 떠날 때 어디로 갈지에 대한 두려움을 사질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48쪽)
명상은 환상을 꿰뚫어 실재에 가닿는 하나의 방법이다. (86쪽)
결과에 연연하는 한, 우리는 결과가 나오는 점점 더 작은 과업에만 매달리게 될 것이다. 사랑, 진실, 정의 같은 가치들(결코 완전하게 성취되지 않을 가치)을 따라 살고자 할 때는, 오직 ‘충실함’만이 판단 기준이다. 내가 죽을 때, 최종 결산으로 질문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내 재능에, 주변의 필요에, 그 필요와 나의 재능을 연결시키는 방식에 충실했는지를 질문받을 것이다. 내가 가진 최상의 것을 최선을 다해 세상에 내어주는 일의 가치, 정의와 진실에 충실했는가를. (102쪽)
참자아는 우리가 지상에 도달할 때 함께하는 자아이며, 그저 태어난 모습 그대로의 우리가 되길 원하는 자아다. 참자아는 우리가 누구이며, 삶의 생태계 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어떠한 ‘올바른 행동’이 우리를 위한 것일지, 그리고 어떻게 좀더 온전하게 우리 자신의 잠재성 안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1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