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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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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리뷰 총점9.1 리뷰 17건 | 판매지수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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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top20 4주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7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81g | 140*200*20mm
ISBN13 9788967355319
ISBN10 8967355319

이 상품의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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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추천의 글 | 김훈
전주곡

1장 가장자리의 시선: 여기서 내가 볼 수 있는 것
2장 젊은이와 노인: 세대의 춤
3장 리얼해진다는 것: 환상에서 착각으로
4장 일과 소명: 삶을 기록하기
5장 바깥으로 손을 뻗기: 세상에 관여하기
6장 안쪽으로 손을 뻗기: 당신의 영혼에 관여하며 머물기
7장 가장자리를 넘어: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후주곡

저자 소개 (3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올해 일흔이 된 소설가 김훈은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무겁고 무섭지만, 게으른 자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혐의가 짙다고 말한다. 의미가 무거울 때 우린 이런 불평을 해봐도 좋겠다. “노년이라고 다 강태공이 되는 건 아니다. 우럭과 감성돔에 환호하는 노년의 평범한 낚시꾼이 더 많다. 그게 인간의 삶이다.”
김훈보다 딱 열 살이 많은 미국의 구루 파커 파머 역시 ‘나이듦’의 무거움을 말하지 않는다. 사회 활동가이자 영성 교육자로서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해온 파머는 생의 후반부에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안으로만 숨고 파고들다가 그는 자기 안에서 안으로 통하는 문을 하나 더 열어버렸다. 그렇게 발견한 노년, 그는 현재 노년의 리듬에 따라 물감처럼 스미는 글을 쓴다. 아름다운 글을.
삶의 가장자리엔 절벽이 있다. 그건 놀랍지 않다. 놀라운 건 ‘나이 드는 걸’을 좋아하는 감정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놀랍도록 매력적이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그동안의 경험이 폭넓고도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하면서 바닥을 차고 뛰어오르게 한다. 세상은 다시 열리고, 마음은 젊어진다. 타자의 마음에 자유자재로 침투하면서 몸은 강물처럼 유연해진다. 이것이 노년이고 노년의 열정이다.
파머는 이 책에서 이런 놀라운 풍경을 보여준다. 저자는 노화라는 중력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나이듦에 협력’할 때 얻게 되는 것들에 대한 경험을 들려준다. 노인들만 대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젊은이들을 향하고 있다. 젊음에게 노년은 낯선 것이고, 낯선 것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못 보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스물네 편의 에세이와 여러 편의 시로 이루어진 이 책은 나이듦에 대한 안내서가 아니다. 대신 저자의 경험을 비추는 프리즘을 일곱 번 바꿔가면서 독자들도 그런 작업을 해보도록 북돋운다. 여기에 삶을 붙잡고 놓아주는 그 속에 자신을 풀어놓는 얼마나 놀라운 힘이 스며 있는지, 느끼고 생각하는 건 우리 몫이다. 쇠퇴와 무기력이 아닌 발견과 참여를 통해 프레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경험에 열린 눈을 뜨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장 긴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노년, 부서지는 존재를 끌어안는

노년에 깊이 다가갈수록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질문은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이다. 자기 삶에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면 타인의 위로와 포용도 별 의미가 없다고, 반드시 스스로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파머는 생각했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질문이 그릇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질문은 고통스런 세상이 펼쳐질 때 아무리 곱씹어도 답을 낼 수 없고, 스스로에게 ‘좋아요’를 누르든 ‘싫어요’를 누르든 거기엔 우쭐대는 자아가 만들어낸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인정할 것은 이것이다. “나는 태양계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 만물 가운데 하나인 나는 삶의 의미를 지시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태양 아래 서서 자신과 타인들이 성숙해가도록 도울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무엇인가.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 모두가 나 자신이다. 어둠으로 내려앉는 것, 빛 속으로 다시 떠오르는 것 모두 나 자신이다. 배반과 충성심, 실패와 성공 모두 나 자신이다. 나는 나의 무지이고 통찰이며, 의심이고 확신이다. 또한 나의 두려움이고 희망이다.”
완전함과는 거리가 먼 생애 동안 마구잡이로 헤쳐온 오르막 내리막 길에서 삶은 여전히 최고 속도로 거칠게 펼쳐지고 있다. 붙잡고 싶은 욕망과 그로 인한 결핍은 공포를 자아낸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름다운 것이 둘러싸고 있고, 늙었다는 것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뜻이므로 공공선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싶다는 욕망도 자아낸다. 이제 나이든 저자는 너그러움을 품고 그 안으로 시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노인임을 무릅쓰고 발언하는 이유

내가 태양이 아니라면, 노인인 나는 찬란한 젊은이들을 가로막으면서 그림자를 드리우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파머는 인종, 계급, 성차별이 여전한 미국 사회에서 중산층의 백인 남자로서 생계 걱정이 없었다. 이런 행운아는 기성세대이자 기득권이므로 목소리를 내지 말고 가만있어야 하는가. 파머는 노년에 안전하게 제 목소리를 감추는 것은 ‘책임 회피’라고 말한다. 노년은 쭈그리고 앉아 보낼 시기가 아니다. ‘분노’와 ‘항의’는 그때에도 지속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다.
열 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에세이를 써온 저자는 자신이 쓴 문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됐어”라는 한 단어라고 말한다. 나이 들면서 이 말은 쉽게 나왔다. 생명을 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 주저 없이 “됐거든”이라 말하고, 광란, 과로, 개인적 편견, 건강하지 않은 관계, 사회적 잔인함이나 부정의, 종교나 정치에서의 무모한 권력 행사, 인종주의, 성차별, 외국인 혐오에 대해 ‘됐다’고 말한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회를 향해 그는 분노한다. 카페의 옆 테이블을 보자. 여기 있는 여성들은 사랑스러운 엄마로서, 친구로서, 파트너로서, 이웃으로서 놀라운 일을 하고 있다. 파머는 “이런 여성들이 스스로 목적을 지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당신들 눈에는 젊은이들이 현명하지 않은 것 같은가? 그건 당신의 마음이 ‘고물’이 됐기 때문이다. 파커는 노년에 정말로 버리고 싶은 것은 오래된 확신 같은 거라고 말한다. “우리가 했던 실수를 젊은이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노인들에게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수를 할 테지만, 우리와 같은 실수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고, 그들의 세계는 우리가 살아온 세계가 아니며, 그들은 우리의 젊었을 적보다 더 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돌아보지 않는 삶은 타인에게 위협이 된다

누구나 자기 삶을 ‘쓰고’ 있다. 탄탄한 서사를 구축하면 삶은 그제야 의미의 그물망으로 들어오고 더 단단하고 응집된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자기 삶에 대한 작가적 구성력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쓸 것인가.
중요한 덕목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사르트르는 ‘타인이 지옥’이라고 말했다. 파머는 이 문장을 수정한다. “나의 지옥은 대학 학위와 재정적 안정성을 가진 50세 이상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즉 나 같은 사람들)만이 거주하는 곳이다.” 그는 다양성이 삶의 즐거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온전하게 잘 사는 삶의 기본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인종, 민족성, 종교, 성적 지향 등에서 ‘타자성’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재생renewal을 일으키지 못할 거라고 파머는 말한다. 그들의 두려움 때문에, 생기 넘쳤던 미국은 뒷걸음질하면서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바깥세계에 있는 생경한 모든 것은 반갑게 맞아들여야 한다. 나와 타자의 경계를 허무는 이방인 담론의 출발점은 바로 타자의 낯섦을 끌어안고 자기방어를 해제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방인이 때론 불쾌하고 기이하며 무서운 존재로 여겨지더라도.
사실 이것은 매우 도전적인 과제다. 타자에 대해 열린 마음을 지닌 이는 ‘환대’의 결과가 아름다울 거라 상상하지만, 어쩌면 당신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버리고 가구를 몽땅 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곤란한 상황, 감정들은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전체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 중 하나다. 그 여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타인을 자기 삶으로 끌어들이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자신을 면밀히 돌아보지 않는 삶은 타인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저자는 백인의 특권과 거기서 비롯된 불의 및 비인간성에 자기도 모르게 공모했던 것, 백인우월주의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그 독성에 오염돼왔던 것을 고백한다. 그것은 자기 우월감이었고, 올바른 렌즈로 세상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는 삶을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에 대한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우울증의 늪

그늘 없는 영혼에는 삶이 비밀을 감추는 걸까. 삶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파커는 세 차례나 겪었다. 수개월 동안 차양을 내린 채 어두운 방에 머물자, 친구는 그에게 외출을 좀 자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그때 파머가 한 대답은 우울증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럴 수 없어. 세상이 칼로 가득 찬 느낌이야.”
40년 동안 그는 ‘더 위로 더 멀리’ 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가 추구한 것은 네 가지인데, 이것들은 그 자체로서는 좋은 가치다. 하지만 이를 뒤쫓다보면 인간 능력의 오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네 가지는 이렇다. 첫째, 지성(생각하기)의 능력에 가치를 두었다―즉 가슴으로 사고하지 못했다. 둘째, 자아의 힘을 과신했다―신경증적 두려움을 위장하면서. 셋째, 지상을 넘어선 비상하는 영성을 추구했다―그러나 그것들은 일상의 자잘한 요소들과 연결되지 못했다. 넷째, 도달할 수 없는 윤리를 추구했다―그러나 그것들은 타인들의 이미지로 형성되는 윤리였을 뿐이다. 이 네 가지 당위에 도달하는 데 실패하자 파머는 죄의식을 갖게 됐고, 스스로를 나약하고 미덥지 못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됐다.
이때 우울증이라는 친구가 나타나 파머의 이름을 부르며, 관심을 끌려 하면서 계속 쫓아왔다. 그 목소리가 두려워 파머는 애써 무시한 채 계속 걸었다. 그러자 친구는 더 가까이 다가와 그의 이름을 큰 목소리를 불렀고, 급기야 소리를 질렀다. 묵묵부답이 계속되자 그 친구는 돌을 던지며 막대기로 파머를 치기 시작했다. 막대기와 돌로도 안 되자 그 친구는 우울증이라는 바위를 파머에게 떨어뜨렸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 친구가 바위로 친 것은 그를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돌려세우기 위함이었다.
“저는 높은 성취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왜냐하면, 음, 낮은 곳보다 높은 곳이 더 좋으니까요.” 그런가? 틀렸다. 이제야 지상으로 내려온 파머는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누구든 넘어질 때가 있다. 높은 데서 넘어지면 멀리 떨어질 것이고, 그런 추락은 죽음을 가져올 수도 있다. 반면 땅에서의 삶은 (우리 본성과 더불어, 세상과 진짜 맺고 있는 땅에 발 딛고 있는 삶은) 우리가 발을 헛딛거나 넘어져도 큰 상처 없이 스스로 일어나 툭툭 털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도록 해준다.

내면과 외면에 관여하면서 살아가기

마음이 부서지는 것(비통함)은 인간적이라 불리는 영역과 함께 나타난다. 사랑과 신뢰가 우리를 저버릴 때, 한때 의미를 지녔던 것이 메말라버릴 때,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꿈이 표류할 때, 치명적인 병을 앓게 될 때, 소중한 사람이 죽을 때, 우리는 비통함에 빠지고 괴로워한다.
우리는 어떻게 고통을 끌어안으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새로운 생명의 힘으로 바뀔 수 있을까. 고통은 우리 마음을 부서지게 하지만, 마음은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부서질 수 있다. 우선 마음이 메마르면 조각조각 파편나기 쉬운데, 그 폭발력은 고통의 당사자를 산산이 부숴버린다. 그리고 고통의 표면적인 원천을 향해 수류탄처럼 던져지면서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기도 한다. 반면 마음이 유연하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리는데, 이는 여러 형태의 사랑을 위한 더 큰 능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마음이다. 오직 유연한 마음만이 새로운 생명으로 열리는 방식으로 고통을 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마음을 더 유연하게 할 수 있을까? 파머는 육상 선수가 부상을 입지 않기 위해 다리 근육을 스트레칭하듯이, 마음의 스트레칭 훈련을 권한다. 규칙적인 훈련을 하면 마음이 파편들로 부서질 가능성이 줄어들고, 부서짐으로써 더 넓게 열릴 가능성이 높다. 노년에 들어선 자들에게는 갖은 상실이 늘어나면서 마음 스트레칭의 기회도 함께 늘어난다. 파머는 이렇게 요약한다. “그것을 받아들여라.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마취제 없이 인생의 작은 죽음들을 받아들일 때마다 파머의 마음은 스트레칭이 되었다. 틀어진 우정, 그의 글에 대한 비열한 비평, 중요한 과제의 실패 같은 것 말이다. 이때 더 큰 의미로 찾아오는 것은 인생의 작은 즐거움들이다. 낯선 사람의 작은 친절, 유년기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두 살배기 아이의 깔깔 웃음소리…….
그렇지만 개인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 삶을 가장 큰 규모에서 직간접적으로 규제하는 국가도 과연 유연해질 수 있을까.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그는 냉소주의에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가 실재 세계에 가능성과 희망을 품고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개인적, 정치적 삶 속에서 고통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 고통을 이용할 것인가. 이는 우리에게 고통이 일어날 때 그것이 새로운 삶을 열어젖히도록 개인적, 집단적으로 마음을 운동시킬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파머의 글은 눈가리개를 벗은 가장자리의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조건들을 성찰하고 해체한다. 그는 영원, 초월, 구원, 해탈 같은 환상적 위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죽어야 할 운명에 순응하는 중생의 한계 안에서 중생의 언어로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말한다. 그가 개념의 굴레를 벗어나서 언어를 작동시킬 때, 그의 글은 편안하게 스민다. 그의 몇몇 문장은 언어라기보다는 물감에 가깝다. 그의 글은 사변이나 논리가 아니라 이 속세에서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분노, 젊음과 늙음이 함께 흘러가는 삶의 리듬에 실려서 출렁거린다. 노래로 부르기에 알맞은 글이다.”
- 소설가 김훈

“파머는 우리 시대의 가장 현명한 정신과 삶의 소유자다. 이 책은 균열된 세계에서 살아남는 데, 그리고 삶의 모든 단계에서 요구되는 정직하고 품위 있는 전체성을 치열하게 구현하는 데 동반자가 될 것이다.”
- 크리스타 티피트·온빙스튜디오 설립자, 『아인슈타인의 신』 저자

“80년의 세월 동안 그는 많은 것을 봤고, 모든 것에 질문을 던졌으며, 모두에게 꼭 필요한 지혜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 책은 나이듦에 대한 성찰로서, 크고 작은 것에 대한 거장의 시야를 제시한다.”
- 마크 네포·『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저자

“파머의 이 책은 현실과 가능성, 위로와 이야기, 조언과 시詩를 친구의 목소리로 놀랍도록 섞어내고 있다. 이 책은 모든 시간을 손에 쥐고 과거와 현재를 함께 휘저으면서 영혼을 새롭게 한다.”
- 나오미 시야브 나이·『이전移轉』 저자

“우리 문화는 진정한 노인을 필요로 한다. 파머는 그런 노인의 타이틀을 분명하게 얻은 작가다. 그의 책은 쉽게 읽히며 유머로 가득할 뿐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적인 문명을 향한 우리의 시도를 격려해준다.”
- 리처드 로어·명상과 행동 센터 설립자

“맑은 시선과 유머로 가득 차 있다. 선명하게 시적이며 상대방을 무장해제하는 정직함을 깔고 있다. 사려 깊은 노년을 탐구하고 어려운 시대에 의미를 발견하며, 삶의 모든 단계에서 내적인 삶을 심화하고 외면적 풍경과의 균형을 기하는 방법을 알게 해준다.”
- 캐리 뉴커머·뮤지션, 『스며들 수 있는 삶』 저자

“팔십대의 파머는 육십대인 내가, 앞에 놓인 생애를 ‘신비 속에 세 겹으로 싸여 있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당장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것이었다.”
- 브라리언 매클래런·『위대한 영적 이민』 저자

“어둠 속에 있을 때, 파머는 밤하늘에 경탄하고 마음의 눈으로 죽음을 간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나의 가장 큰 열망은 인생의 모든 여정을 통과하고 나서 파머가 다다른 가장자리에 이르는 것이다. 겸허함과 충실함 그리고 보석이 가득한 주머니를 가지고.”
- 밸러리 카우어·인권운동가, 혁명적 사랑 프로젝트 설립자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에 대한 가장 훌륭한 책 한 권을 썼다.”
- 리처드 라이더·『당신의 짐을 다시 싸고, 삶을 다시 상상하라』 저자

회원리뷰 (17건) 리뷰 총점9.1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노년의 삶에 대하여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YES마니아 : 로얄 동**미 | 2021.02.11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파커 J. 파머의 책은 훌륭하다. 파커 J. 파머의 책은 지루하다, 졸립다. 300쪽도 안되는 한 권을 읽기 위하여 여러 차례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아내 샤론 파머는 내가 쓴 모든 글을 가장 처음 접하고, 예술가의 눈으로 읽어준다. 원고를 어떻게 편집하는지 물어보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세 가지 질문을 해요.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명료한가? 아름다운;
리뷰제목

파커 J. 파머의 책은 훌륭하다.

파커 J. 파머의 책은 지루하다, 졸립다.

300쪽도 안되는 한 권을 읽기 위하여 여러 차례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아내 샤론 파머는 내가 쓴 모든 글을 가장 처음 접하고, 예술가의 눈으로 읽어준다. 원고를 어떻게 편집하는지 물어보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세 가지 질문을 해요.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명료한가? 아름다운가?'...(256쪽)"

 

파머의 책은 말할 만한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것은 맞는데, 명료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말하지 못하겠다. 

 

"...이 책에는 주관적인 느낌을 묘사하는 형용사가 많이 나온다. 추상적인 개념과 달리 그런 단어는 한국어로 정확한 대응어를 찾기가 어렵다. 사전에 여러 가지 한국어 풀이가 나와 있지만, 어느 것으로 번역하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크게 달라진다...(265쪽)"

 

명료하지 못한 이유는 번역자의 넋두리에 잘 나와있다.

그래도 천천히 곱씹으며 읽다보면 순수한 지성의 향기를 흠향할 수 있을 것이다.

 

파머 선생이 말년에 출간한 책이다. 노년의 삶에 대한 깊고 아름다운 사색이 돋보인다. 

나는 아직까지 파머 선생만큼 살지 못했다. 이제 겨우 반 백 년 이상 살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또는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수많은 책을 보고 강연을 들어보았다. 책과 강연들엔 정말 좋은 말들이 많다. 그러나 산전수전 겪어보니 삶의 가치관에 거창한 철학이 필요한 것이 아니더라. 딱 두 가지만 각골난망할 수 있다면 소크라테스도 필요 없겠더라.

첫째, 황금률. 누구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대로 대접하라.

둘째, 세상에 공짜는 없다.

파머 선생의 이 훌륭한 작품도 저 두 가지에 대한 변주곡에 다름 아닐 수도...

댓글 0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소명에 대한 고민_003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J*y | 2020.01.04 | 추천6 | 댓글2 리뷰제목
지난 가을 만난 책인데, 저자에 대해서도,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채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모두들 중심을 향해, 모든 것의 가운데에 서기 위해 달려가는데, 그 와중에 ’모든 것의 가장자리‘라니. 뭔가 초연한 느낌도 들지만 동시에 세상물정 모르는 비현실적인 소리라 삐딱하게 봤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자꾸만 눈길을 끌더니 결국은 집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책날개에 적힌 저자 파;
리뷰제목

지난 가을 만난 책인데, 저자에 대해서도,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채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모두들 중심을 향해, 모든 것의 가운데에 서기 위해 달려가는데, 그 와중에 모든 것의 가장자리라니. 뭔가 초연한 느낌도 들지만 동시에 세상물정 모르는 비현실적인 소리라 삐딱하게 봤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자꾸만 눈길을 끌더니 결국은 집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책날개에 적힌 저자 파커. J. 파머에 대한 소개를 옮겨적으면 아래와 같다.


미국 고등교육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왕성한 저술과 다양한 강연으로 미국 각계각층의 뜨거운 지지를 얻으며 시민들의 멘토로 추앙받는 사회운동가, 작가이자 교사, 활동가서로 그의 가르침은 교육, 의료 종교, 법률, 자선사업, 정치, 사회 변혁 등에서 커다란 영감을 주고 있다.


솔직히 저자 소개를 읽다가 너무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에 책 읽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왠지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훌륭한' 분의 이야기는 내 일상에 적용하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나의 삐딱함이 다시 한번).

다행히 이런 망설임은 책을 읽으며 해소되었는데, 저자의 글은 담백하고 간결한 느낌을 주었다.


이 책을 읽을 무렵 나는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멘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대단한 고민은 아니지만, 나의 가치 기준에 대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노년의 나이(저자는 1939년에 태어났다)라 말하는 저자의 글에 반가움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해서 멘토라거나 진정한 '어른'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왠지 나보다 많은 시간동안 쌓인 연륜을 엿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있는 곳에 있었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했다. 우리는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섰고, 실패로부터 배웠으며 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았다. 그리고 몇 가지를 바로잡기 위해 뭔가를 해왔다. p.58


저자의 글이 좋았던 부분 중 하나는, 저자가 어린 세대(저자의 기준으로)에 대해 인정하고 그들과 시선을 맞추려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젊은이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노인들에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수를 하겠지만, 우리가 저지른 것과 똑같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고, 그들의 세계는 우리가 살아온 세계가 아니며, 그들은 젊은 날의 우리보다 더 현명할 수 있다. p.60


내용 중 직업과 소명을 이야기하는 챕터가 눈길을 끌었는데, 내 스스로 나의 소명에 대해, 그리고 나의 직업에 대해 종종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는 '을 버는 수단은 꽤 자주 바뀌었지만, 내 소명은 언제나 한결같았다(p.122).'고 말한다.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나이가 들수록, 직업과 소명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노인, 특히 남자들이 퇴직 이후 절망에 빠지는데, 이는 주요 수입원만이 아니라,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밥벌이를 위한 직업이 있었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명, 즉 사람이 죽을 때까지 추구할 수 있는 소명이 없었다. p.122


나는 어떠한가? 솔직히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이 두가지의 구분이 명확치 않은 것 같다. 마음의 한쪽에서는 그 둘을 구분하여 생각하고 정의내리지만, 또 한쪽에서는 한데 엉켜서 나를 움츠리게도 또 아무것도 아닌 일로 허세를 부리게도 하니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아직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기르지는 못했다. 그리고 아직은 가장자리보다는 가운데에 있고 싶은 욕심도 있는 듯 하다. 지금 당장 나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겠다 다짐하지도 못하겠다. 다만, 그 욕심으로 나의 일상을 외면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언젠가 가장자리에 닿았을때 저자처럼 의연히  그 여행을 즐기고 싶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여기에 오기까지 일생이 걸렸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풍경과 얼굴에 스치는 산들바람은 그 여행을 가치 있게 해준다. p.24


제법 오래전에 읽은 책이어서 그때 적어둔 문장들을 보면서도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들도 있다(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책을 읽자마자 글을 남겨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와닿는 문장들을 만나고 그 중 2020년의 첫주말을 보내는 지금, 내게 들려주고 싶은 글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만 매달리면, 생기 잃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초심자의 정신을 기르십시오. 모르는 것을 향해 곧장 나아가세요. p.72



*나에게 적용하기

나의 소명과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그 둘의 균형을 맞춰가기(적용기한 : 지속)


*기억에 남는 문장

우리는 쇠퇴와 무기력이 아닌 발견과 참여의 통로로 나이듦의 프레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p.22


미래에 대한 책임을 젊은 세대에게 모두 지우는 것은 불공정하다. 그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일정 부분 우리 기성세대가 저질러놓은 것이다. p.56


모든 실수와 혼란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나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나이가 들어가며 때로 복잡함의 이면에 있는 단순함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몇 가지 답이 분명해졌습니다. 은총, 용서, 가족과 친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내 고군분투에서 외로움을 덜어준 사람들의 개방성이 그것입니다. p.69


어느 누구도 죽을 때 그동안 자기중심적으로, 나만을 보살피며, 나를 지키면서 살아올 수 있어서 참 기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열린 마음과 너그러움으로 여러분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세요. p.72


다양성은 내게 있어 삶의 재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는 충만하고 건강한 삶의 기본 요소다. p.180


배경이 다른 사람들은 다른 것들을 알고, 아는 것을 다르게 해석한다. 우리가 다름의 대화안으로 모일 때, 집단은 그 안에 있는 개인들보다 더 현명해진다. p.183


둘 다 both-and 의 복잡성보다 이것 아니면 저것 either-or 의 용이성을 선호하는 문화에서 사는 우리는 대립하는 것들을 붙들고 있느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어둠 없는 빛, 가을과 겨울이 필요 없는 봄여름의 장관, 죽음의 고통이 없는 삶의 쾌락을 원한다. p.228


오늘, 여든 살에 다가서며 나는 온전함에 이르는 지름길이란 없음을 안다. 유일한 길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애정 어린 팔로 감싸 안는 것이다. 이기적이되 관대한, 악의적이되 동정적인, 비겁하되 용감한, 기만적이되 신뢰할 수 있는 모습들 말이다. p.238


자기 모습 전체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법(노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되는 과제)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첫째, 젊은 세대와 접촉하라. 그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우며, 에너지를 얻고, 그들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하라.

둘째, 당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회피하지 말고, 그것을 향해 움직여라.

셋째,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자연에서 보내라. p.239, p.240


한 번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진정한 자아로, 자신이 아는 한 최선의 방식으로 여기에 존재했으며, 현실에 치열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삶을 영위했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은혜로운 일이 있을까. p.241



*분류 :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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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운데서 보지 못한 온갖 것 볼 수 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헌*가 | 2019.12.30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창조는 변방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심부는 지키는 것에 급급할 뿐입니다. 변방이 창조공간입니다. - 신영복, 「변방과 중심」  가장자리에 관한 글을 읽으며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이 자꾸 생각났다.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은 공간 개념이고 파머의 가장자리는 기간 개념이지만 일맥상통하는 게 있기 때문일 테다. 신영복 선생님은 인류의 역사에서 변방의 개념을 끌어왔다. 인류 문;
리뷰제목

창조는 변방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심부는 지키는 것에 급급할 뿐입니다.

변방이 창조공간입니다.

- 신영복, 「변방과 중심」

 

가장자리에 관한 글을 읽으며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이 자꾸 생각났다.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은 공간 개념이고 파머의 가장자리는 기간 개념이지만 일맥상통하는 게 있기 때문일 테다. 신영복 선생님은 인류의 역사에서 변방의 개념을 끌어왔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언제나 변방이 새로운 역사의 중심이 되어 왔다고 한다. 오리엔트의 변방인 그리스·로마, 그리스·로마의 변방인 합스부르크와 비잔틴, 근대사의 시작이 된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미국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은 그 중심지가 부단히 변방으로 변방으로 이동해 간 역사라는 한다. 역사에 사표가 된 인물들 역시 변방의 삶을 살았다. 마하트마 간디의 삶이 그러했고, 공자(孔子)의 삶이 그러했다. 조선의 이성계 또한 변방인이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변방에서 역사의 중심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변방은 단순히 공간적 개념이 아니다. 변방은 ‘변방성’, ‘변방 의식’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자신을 주변화하는 것이다. 비록 현재 내가 어떤 장세(場勢)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더라도 변방 의식을 내면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변방 의식을 통해 성찰(省察)하고 이를 통해 부단한 변화와 소통을 이루어야만, 생명체로서의 존재가 가능하다. 생의 가장자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파머는 가장자리를 중심에서 밀려난 소외 지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애가 완전한 파노라마로 보이는 확장성의 자리로 여긴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바로 이 순간의 은총을 새삼 깨닫고 만무에 깃든 경이로움에 눈을 뜨는 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단지 더 이상 잃을 게 남아 있지 많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신비로부터 왔고 신비로 돌아간다는 것. 또 이것도 안다. 죽음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면 삶의 선물에 눈이 뜨이며 경외감을 느낀다는 것. (32쪽)

 

나는 지금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거나 그에 대해 답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편안하게 머문다. 내가 할 일은 여럿 가운데 하나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뿐이다. 태양 아래 서서 자신과 타인들의 생명과 사랑으로 성숙해갈 수 있도록 돕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38쪽)

 

죽음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지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안다. 이 행성에 도착했을 때 내가 떠나온 곳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고, 따라서 떠날 때 어디로 갈지에 대한 두려움을 사질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48쪽)

 

명상은 환상을 꿰뚫어 실재에 가닿는 하나의 방법이다. (86쪽)

 

결과에 연연하는 한, 우리는 결과가 나오는 점점 더 작은 과업에만 매달리게 될 것이다. 사랑, 진실, 정의 같은 가치들(결코 완전하게 성취되지 않을 가치)을 따라 살고자 할 때는, 오직 ‘충실함’만이 판단 기준이다. 내가 죽을 때, 최종 결산으로 질문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내 재능에, 주변의 필요에, 그 필요와 나의 재능을 연결시키는 방식에 충실했는지를 질문받을 것이다. 내가 가진 최상의 것을 최선을 다해 세상에 내어주는 일의 가치, 정의와 진실에 충실했는가를. (102쪽)

 

참자아는 우리가 지상에 도달할 때 함께하는 자아이며, 그저 태어난 모습 그대로의 우리가 되길 원하는 자아다. 참자아는 우리가 누구이며, 삶의 생태계 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어떠한 ‘올바른 행동’이 우리를 위한 것일지, 그리고 어떻게 좀더 온전하게 우리 자신의 잠재성 안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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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14건) 한줄평 총점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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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나이를 돌아보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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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b******6 | 202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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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나이듦을 근사하게 통찰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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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c*****o |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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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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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람 | 201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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