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 모임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책나눔 행사가 있었습니다.
각자 집에 있는 책 중 회원들과 나누고 싶은 책을 한 권 이상 가져와서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해 원하는 책을 가져가는 행사였어요.
저는 행운의 1번 제비를 뽑아서 첫번째로 책을 선택할 수 있었고, 모임에서 가장 연장자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이 책을 골랐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와 올해 첫 책으로 [박완서의 말]을 천천히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박완서 선생님의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총 일곱 개의 인터뷰가 실려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인터뷰는 뭔가 좀 옛스러운 느낌이 많이 들어서 크게 와닿지않고 오히려 좀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1997년 문학평론가 권영민과의 인터뷰인 "상처 속에 박혀 있는 말뚝"과 1998년 피천득 선생님과의 대담인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상처 속에 박혀있는 말뚝"은 박완서 선생님의 삶과 작품세계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인터뷰였고, 피천득 선생님과의 대담은 원래 좋아했던 거장 작가 두 분의 잔잔하고 소박한 이야기들이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올해도 열독! 숙고! 공감! 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책갈피☆
39. 진정한 해방의 세계란 과학도 지식도 이론도 아니고 '사랑의 힘'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42. 말하자면 어머니가 딸에게 건 최고의 기대인 신여성은 당시로선 가장 팔자 사나운 여자들이었지요. 그러면서도 딸이 팔자 사나울까 봐 두려워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우습고 슬프게 느껴져요.
43. 그런데 가정을 가진 여자가 일을 갖기 위해서 딴 여자를 하나 희생시켜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느낌은 매우 낭패스러운 것이었어요. 결국 나는 나의 일이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가정을 잘 지키고 아이 잘 기르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쪽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말았어요.
67. 저는 중산층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저계층이라고 봐요. 다만 이런 말을 하는 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중산층의 허위의식, 안이한 태도, 속물근성, 기회주의적 속성 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중략)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중산층적 삶이 어떻게 확립되어야 하는가가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
89. 자기가 이 사회에 필요한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항상 떳떳할 필요가 있고, 자기 일을 남에게 존중받고 싶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만큼 남에게 대접하는 게 옳고, 남에게 당하기 싫으면 남한테 그러지 않는다든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 있잖아요.
119. 아주 재미있고 특이한 소재를 갖고 썼는데, 그런데도 글의 문법이 안 돼 있었어요. 그건 문장이 참신하다는 것과는 다른데, 그런 건 참 아깝더라구요 바르게 말하기, 그런 기초는 글 쓴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같아요.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는 게 참 힘들어요.
128-130.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괴테의 말로 더 유명해져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말은 더욱 큰 실감으로 다가온다. 자기 몸속에서 귀한 생명을 다섯이나 창조해내고, 먹은 음식을 핏속에서 삭여 고인 젖을 물려보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올망졸망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생명들을 건사하고 돌본 여서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144. 보통 겪으면서 안게 되는 상처를 묻어두고, 행복한 척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어요. 남하고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구요. 내 생각을 전달해서 남에게 공감을 얻어내고 싶은 것도 있지요.
165. 독재 치하에 민주화 투쟁이 활발히 일어나는 것처럼. 지금 여성들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성적 편견에 대해 저항하는 건 이해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방법이 좀 투박해 보일지라도요.
174. 피천득 그래요. 만난 지 오래되었어요. 글로도 만나고 사람으로도 만나고, 박 선생님과 나는 언제나 만나고 있지요.
188. 피천득 ..., 아무튼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게 제일 안 좋아요. 그래서 서영이가 온다고 하면 반가우면서도 곧 다시 떠날 것을 생각하면 겁나고 아프고 싫어요. 안 만나면 그리웁지만 이별하는 아픔은 없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