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나는 소심해요>(이마주, 2020)는 어린 시절부터 소심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프랑스 작가 엘로드 페로탱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따라다닌 '나는 왜 소심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엘로드는 내향적인 소녀의 감정과 동작을 몇 개의 색과 선을 이용해서 보여주었다. 프랑스 작가 엘로드는 응용예술을 공부했고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그림을 지도하고 있다. 작가의 다른 책으로 일상을 지배하는 IT 기술에 대해 알아보는 <해커>, 철학적인 관점에서 인간 조건 한계를 개선하는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설명한 <트랜스 휴머니즘>, <가위바위보>가 있다.
표지 속 소심한 소녀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은 말려 올라가 있다. 한 올씩 위로 뻗어나간 머리카락은 '나는 소심해요'라는 제목 글자를 하나씩 가리킨다. 속지에 등장한 주인공 소심한 소녀는 책 중간에 끼어서 나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손은 주머니에 넣어서 보이지도 않고, 귀와 눈 아래부터 시작해서 부끄러움에 팔다리와 발가락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일까 아니면 자라면서 이렇게 된 걸까 왜 소심한 성격인지 계속 궁금해한다. 소심함을 떨쳐 버리고 싶어 하는 소녀는 자신만만한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하며 따라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어느 날 누군가에서 소녀는 소심함은 병이 아니고 오히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능력이라는 말을 듣는다. 소녀는 그 말을 계속 마음에 두면서 소심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아 가게 된다.
작가는 왜 나는 남과 다를까라고 고민하는 소심한 사람의 감정과 이후의 변화를 가각 색깔과 공간을 통해서 독자에게 보여준다. 먼저, 색깔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며 가장 눈에 띄는 장치로 이용된다. 소심한 소녀의 얼굴,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은 태어날 때부터 빨갛다. 주변 사람들의 몸은 모두 노란색으로 등장하는데 비해 커가면서도 소녀의 피부색은 여전히 빨갛다. 독자는 왜 자기만 다를까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지내고 있었다는 소녀의 궁금증을 피부의 빨간색이 그려진 장면으로 알 수 있다. 그 색은 부끄러움의 상징이지만, 어느 순간에 소녀가 변화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로도 작용한다. 계속 빨갛던 피부색은 소녀가 "소심함이 병이 아니라" 오히려 "깊이 생각하는 능력"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그 페이지에서 작가는 소녀의 피부에서 처음으로 빨간색을 벗겨내고 파랑 바탕과 흰 선만 사용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소녀의 변화는 극적으로 나타난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르지만 소심함으로 인해 피부가 빨갛된 소녀는 오른쪽 페이지를 여백으로 남겨둔 채 왼쪽에서 커다랗게 등장했고, 자신의 입술을 빨간 펜으로 그리고 있다. 소심할 때마다 말려 올라간 머리카락도 더 이상 꼬불거리지 않는다. 소녀는 "결국 나의 소심함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고백과 함께 자신을 다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연히 파고든 소심함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 "소심함을 내버려 두"는 소녀의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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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작품에서 소녀와 다른 사람의 몸이 어떻게 다른 크기로 표현되고 있는지도 보자. 언제 소심함이 시작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을 소녀가 가졌던 초반기 어디선가 불쑥 팔과 손가락이 나타난다. 이때 소녀는 왼쪽 구석에 조그만 공간 위에 서 있다. 팔과 손가락은 두 화면에 걸쳐 있을 정도로 커다란 크기로 등장했고, 소녀의 작은 몸을 가리키고 있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소녀의 몸은 자신만만한 사람들의 발보다도 작은 크기로 그려져있다. 어떤 여자는 "남들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요"라고 소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할 때 "더 크게 말하라"고 확성기를 들고 나왔다. 그 여자의 얼굴은 왼쪽 페이지에서 벗어나 부끄러워하는 소녀가 있는 오른쪽 페이지까지 넘어와 있다. 소녀가 "소심함을 나를 뒷걸음치게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걸" 깨닫자, 몸의 크기도 같이 달라진다. 언제나 조그맣게 그려져 있던 소녀는 다음 페이지에서 주변에 걷어 다니는 사람들과 비슷한 크기만큼 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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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엘로디의 내면에서 오랫동안 간직했던 사연에서 나왔기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생생하다. 작가는 빨강, 파랑, 노랑, 흰색 오직 네 개의 색만으로 소심한 사람의 내면과 그들에게 비쳐진 세상 모습을 간결하게 이미지화했다. 어쩌면 작가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 자서전'처럼 읽힐 수도 있겠다.
소심한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잘되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면 작가의 조언처럼 소심함의 단점보다 장점, 즉 세심함이나 배려심을 갖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다. 소녀처럼 '소심함'이란 무슨 능력일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림책 작가를 꿈꾸고 있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작가는 소심함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끌고 나가면서 머리카락, 색깔, 공간, 신체 크기를 자유롭게 변화시키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공감각을 이용해서 시인이 느낀 감각을 경험하게 하는 시처럼 색과 공간, 비율 변화 같은 다양한 장치로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의 기법을 배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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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 엘로디는 "언젠가는 남들의 시선 아래 숨으려 드는 비밀스럽고 내밀한 이 성향에 대해 사람들" 대화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어려워하는지를 작품 전체에서 여러 번 반복했다. 만일 엘로디가 활발한 성격의 사람들에게 소심한 사람들의 신호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들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이해해 주기를 원했다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소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작가가 경험했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겠지만, 반대 성향이라면 "소심함을 극복하기로 결심"하고 노력한 장면이 부족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자신감을 갖기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에피소드 대신 다른 시도를 넣고, 성향을 고치려고 시도한 분량도 두 페이지가 아니라 더 많은 장면을 넣었다면 어땠을까. 한편, 작가는 다른 작품으로 해커나 트팬스휴머니즘같은 미래기술을 다룬 책을 집필한 바 있다. '나는 소심해요'를 접한 독자라면 IT 분야보다는 이처럼 내면을 다룬 이야기를 기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