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미디어가 브랜드 파워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는 주요 미디어와 함께 일을 하며 기존의 브랜드 파워를 빌리는 길입니다. 또 하나는 역시 물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온라인 속에서만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앞서 언급한 호보니치도, 수첩이라는 구체적인 물건이 있었기 때문에 브랜드력이 높아진 거라고 보고요. 특히 일본인은 실재하는 물건을 좋아해서 추상적인 무언가만 보여주고는 신뢰를 얻기 어려우니, 온라인에 쏟는 정성을 물건을 만드는 데도 쏟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 장소를 만드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카’ 같은 곳이 있으면 브랜드 파워가 높아집니다. _「1강 앞으로의 미디어 -사사키 노리히코」24~25쪽
-하라 씨는 일본적 단순함을 대변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느끼고 계신가요?
2001년 다나카 잇코의 뒤를 이어 무인양품의 일을 하던 시절에, 무인無印의 간결함과 서구의 심플함은 뭔가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 여백emptiness에 주목하게 된 동기입니다. 다나카 잇코는 무인양품을 두고 “호화로움에 주눅 들지 않고, 간결한 것을 오히려 긍지로 여길 수 있도록”이라고 말했어요. 분명 무인양품에는 사물과 사람의 관계를 빠르게 연결 짓는 것 이상의 놀랄 만한 간소함(여백)이 있었습니다. 또 저에게도 그런 것에 공명하는 감각이 있다고 느꼈죠. 그래서 이런 미의식의 뿌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지금까지 일본의 문장 같은 전통 형태를 디자인 속에 도입하는 일을 피해왔고, 저를 일본의 디자이너라고 의식한 적도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그때 처음으로, 저 여백이라는 것이 제 디자인과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_「2강 앞으로의 디자인 -하라 켄야」 55~56쪽
-기존 사고방식과 역할을 넘어서 생각하고, 새롭게 깨닫는 일은 무척 어려운데, 이걸 해내는 방법이 따로 있으신가요?
사람들은 여태껏 파자마는 뭘 입든 상관없다고 여겼지만, 파자마 소재에 따라 수면의 질이 달라진다는 게 알려지자, 비싼 파자마를 사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죠. 이때 디자인은 파자마의 소재를 살리는 일에 있지 않고 ‘그 소재를 알아보는 감각이 당신에게 있다’라는 발견을 선사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그런 걸 원하고 있어요. 자기 감각에 어두운 사람을 우연한 계기에 ‘아, 그런 건가’ 하고 깨닫게 만드는 게, 누구나 아는 장식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또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_「3장 앞으로의 프로덕트 -후카사와 나오토」 84~85쪽
-이토 씨는 소위 격자형 수직 직선 그리드 시스템에 거부감이 있으신가요?
거부감까지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건 있네요. 단, 저도 고층 빌딩을 만들 때는 격자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층 건축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연 체계에 접근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인간은 기하학을 이용해야만 건물을 지을 수 있죠. 반면 그 건축물이 놓이는 대지는 기하학적으로 되어 있지 않아요. 자연물 중에는 직각으로 교차하는 형태가 없으니까요. 그 지점이 모순입니다. 인간은 기하학을 써서 건축을 하는데, 그것이 서 있게 될 환경에는 직선이 전혀 없죠. 그럼 이 둘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쟁점이 됩니다. 둘 사이에 어떻게 접점을 만들 것인지가 제가 가장 흥미를 가진 지점입니다._「4장 앞으로의 건축 -이토 도요」 104~105쪽
-아즈마 씨는 『약한 연결』에서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강한 연결이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인터넷이 강한 연결을 강화하고 있다고 하셨죠.
공동체 중심 사회에서 우리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우연(=약한 연결)에 의해 지배되었죠. 우연히 이 도시에서 태어나 우연히 옆집에 살던 사람이 귀여웠기 때문에 결혼하는 사회에서, 인간관계란 우연성에 지배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결혼 중매 사이트에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 취향에 따른 필연적 목록이 표시되죠. 인터넷을 비롯한 자본주의 사회는 우연적 관계를 가급적 배제하고 필연성이 있는 인간관계만을 점점 강화시키는 장치입니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에 우연성을 도입해야 하고요._「5강 앞으로의 사상 -아즈마 히로키」143~144쪽
-앞으로 ‘소설 쓰는 법’은 어떻게 바뀔까요?
꽤 가까운 미래에 인간과 인공 지능이 협업해서 소설을 쓰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공 지능을 쓰면 플롯의 패턴을 얼마든지 분류할 수 있고, 다양한 등장인물과 상황을 부여해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가치를 과하게 두면, 그 소설은 이미 별 볼 일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런 발상을 하다니, 엄청나지?’하는 요소만으로 승부하는 소설이 참신한 느낌을 주기는 힘들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인간 소설가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너무 뻔한 소리 같기도 하지만, 독자가 왜 감동하는지를 잘 생각해보면 소설가로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시 소설을 읽고 감동하는 게 독자의 가장 귀중한 체험이기 때문입니다._「7강 앞으로의 문학 -히라노 게이치로」208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