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1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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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8쪽 | 478g | 152*214*20mm |
ISBN13 | 9791156121299 |
ISBN10 | 1156121299 |
발행일 | 2019년 01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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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8쪽 | 478g | 152*214*20mm |
ISBN13 | 9791156121299 |
ISBN10 | 1156121299 |
아름다운 사람 김서령 먼저 한 꼭지_외로움에 사무쳐봐야 안다, 배추적 깊은 맛을 * ‘철철문장’ 상의 할매의 ‘보단지 타령’ 책을 내며_옛 부엌의 아침과 저녁들이 앞다퉈 떠오르니 * “편차고 하다 맛을 베레뿐다” 1부 아득하거나 아련하거나 어머니의 마술, 콩가루 국수 *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슴슴한 엄마의 레시피를 귓전으로 흘려들었다 내 제사상에는 호박뭉개미만 있어도 될따 그 순간 생에 감사했다 콩 간 데 에미 손 간데라 무언가 고프고 그리운 이들에게 찔레 순 맛을 여름 더위 물렀거라, 야생 취나물 무침 삶이 ‘삶은 나물보다’ 못할 리야 * 고요한 시간 겸허한 마음으로 입이 굼풋하믄 좋은 소리가 안 나오니, 군입거리 백석이 그리도 좋아하던 가자미 * 야위어서 푸르른 가자미 한 토막 육개장과 하수상한 토란의 만남 2부 고담하거나 의젓하거나 ‘명태 보푸름’의 개결한 맛이여 * “상미하게” “이식하시게” 슴슴한 무익지,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 손님상엔 꿀 넣은 ‘약지’ 달콤함을 옹호한다 수수 조청 고던 날 저녁 * 수수는 수수 몫이, 내게는 내 몫이 봄의 맛, 햇장 타령 * 콩나물밥에 달래 간장! 수박의 5덕德을 찬讚하노라 * 겨울 수박은 수박이 아니다 새근한 ‘증편’의 색깔 고운 자태라니 ‘난젓’, 물명태와 무가 빚어낸 싱그러운 단맛 샤또 오 브리옹도 흥칫뽕! 정향극렬주 두견주 한잔 받으시라 * 한겨울 사랑방에 핀 꽃, 안동 다과상 순하되 슬쩍 서러운 갱미죽 * 가을 새벽, 홀로 차를 마시며 3부 슴슴하거나 소박하거나 팥소 든 밀가루떡, ‘연변’을 아시나요 들큰 알싸, 먹을수록 당기는 집장 쑥국 한 그릇에 불쑥 와버린 봄 * “님은 쑥을 캐겠지” * 나의 「오감도」 * 쑥을 뜯으며 엄마를 생각하다 그 노랗고 발갛던 좁쌀 식혜는 어디로 가버렸나 * ‘식혜 르네상스’ 유감 * 안동 ‘알양반’은 안동식혜를 꺼렸다 덤덤하나 반가운 맛, 감자란 놈 * 아버지가 못내 잊지 못한, 그 제주 고구마 밤에 보늬가 있는 까닭 물고기잡이 인술 이야기 둘 끝내 다 못 쓴 간고등어 이야기 편집 후기_한 사람이 가고 한 문장이 지고 |
문장가로 이름 날린 칼럼리스트 고 김서령님의 산문집이다. 안동 임하마을 양반가 며느리인 어머니와 음식, 고향 산천, 추억에 대한 글을 모았다. 제목은 어린 시절 저자의 집으로 마실 온 여인들과 할미들에게 저자의 어머니가 간식으로 배추적을 부쳐 내놓은 에피소드에서 따 왔다. 그 대목을 저자는 이렇게 쓰는데, 생각의 깊이도 문장의 깊이도 남다르다.
'얕은 맛'이 혀가 느끼는 맛이라면 '깊은 맛'은 위가 느끼는 맛이다. 어쩌면 '깊은'과 '얕은'이란 수식은 그것을 느끼는 신체 부의의 심천(深淺)때문에 붙여진 것일 수도 있겠다! (중략) 그렇다면 맛의 심천이란 신체 부위의 심천이 아니라 연륜의 심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배추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이들은 처녀들을 빼고는 모두 외로움에 사무쳐 본 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 16쪽
가난하지만 자존심은 남다른 경북 내륙 양반가에서 있는 재료에서 최대한 맛과 품위를 뽑아내기 위해 고안해낸 여러 음식들. 덕분에 독자인 나도 '맛은 추억이다. 맛은 현재의 나를 돌연 다른 시점으로 공간 이동하게 만든다. (66쪽)'라는 문장처럼 저자의 추억 속으로 이동하는 간접 경험을 해 보게 된다. 엄마의 엄마, 엄마의 시엄마로부터 대대로 딸들에게 내려온 요리법 교육이 아슬아슬하게 저자의 대까지 내려온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저자의 어머니 등 당시 여성들이 짊어져야했던 노동의 무게를 생각하면 맛깔나게 읽어가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어머니의 음식을 얻어 먹으면서도 기껏 칭찬이랍시고 '개실댁, 자네는 죽더라도 그 아까운 손일랑 부디 끊어놓고 가게! (181쪽)'라는 무서운 말을 하는 노인들을 위해 청춘을 바쳐 음식을 해다 바쳐야 한다니. 오, 무섭다. 그런데, 글쓴이 역시 그랬나보다. '유교와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장점과 맹점이 내 안에서 뒤섞여 요동하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120쪽)'라고 토로한 부분을 보니 말이다.
흰 쌀가루 위에 염염하게 붉던 진달래 꽃잎 - 67쪽
맑고 슴슴하고 수수하고 의적하고 살뜰하고 고담하고 소박한 것 - 10쪽
그 순간 생에 감사했다. 천지가 이토록 고우니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 71
그러나 화가 나고 답답하기 보다, 위 부분처럼 단아하고 애틋한 표현으로 채워진 문장을 읽는 맛이 더 앞섰다. 맛있게 잘 읽었다. 읽고 나니 이 밤, 나도 배추적이 먹고 싶어진다. 외로운가?
일견 경북 안동지역 양반 가문에서 대대로 전수되어온 음식 레시피로 읽힌다. 메밀 전병 비슷한 연변의 감칠맛과, 고춧가루를 풀어 삭힌 식혜의 빨갛고 톡 쏘는 맛을 앞세우는 것 같다. 그러나 실은 징글징글한 인간의 관계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지역 특유의 문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을, 그리고 이를 아우르고 녹여낸 빼어난 문장을 맛볼 수 있는 것을 놓쳐선 안 된다. 특히 작가의 충만한 시적 감수성과 빼어난 필력을 엿볼 수 있어서 여간 호사가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그대가 세상 고락 말하는 날 밤에 / 숯막집 달도 지고 / 귀뚜라미 울어라~"를 처음 들은 것은 열아홉 살 이맘때 친구 미미를 통해서였다. 나는 그 시의 가락과 이미지가 몹시, 아주 몹시, 맘에 들었다. 그대라는 말의 감미로움과 세상 고락이라는 말의 쓸쓸함과 산골 숯막집에 지는 달의 고요함과 달이 져 음영이 깊어진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귀뚜라미 울음과 그 소리로 인해 아득하게 확장된 우주의 크기 같은 것이 살갗에 돋은 소름처럼 생생하게 감각되었다. (184쪽)
오감을 총동원해 느끼고 맞이한 공감각적 인식과 감동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어쩜 이렇게 고스란히 살려낼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것 외에도 작가의 눈부신 필력을 여기저기서 맘껏 누릴 수 있다. 감미로우면서도 쌉쌀한 알갱이의 여운이 오래 감도는 문장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레시피를 소개할 때도 리듬감 있고 상상력을 북돋우는 문장으로 살갑게 이끈다.
안동 어느 집의 얌전한 다과상이다. 어린 연근에 엷게 백련초 물을 들인 것 말고는 다 제 빛깔을 살려 만들었다. 생강을 얇게 저며 말린 편강과 거피한 들깨를 가루 내어 꿀에 버무려 꼭꼭 누른 강정과 금귤을 뭉근한 불에 졸인 정과 등속이다. 늦봄 송화 필 때 솔꽃을 송이째 따서 창호지에 널어 말린 송홧가루, 그걸 꿀에 녹여 송화다식을 만들었고 검은깨를 가우 내어 검은깨다식도 만들어 켜켜이 담았다. 우리 엄마는 우엉을 제 결대로 길쭉하게 썰어 정과를 졸이곤 했는데 이 집은 그냥 도시락 반찬 하듯 둥글게 썰었다. (187쪽)
작가는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전해져 자신에게 베풀어졌던 음식의 소중한 가치를 몰라보았다고 고백한다. 그 동안 잊고 살았다고 아쉬워 한다. 뒤늦게 자신이 재현해내려 애쓰고 있는 모습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래서 어떤 것은 살려내었고 더러는 재현 불가능하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곧 잊히고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다.
안동 양반 가문의 생활 습속과 의식 등 특유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묘미중 하나다. 나쁘게 말하면 시대착오적 옹고집이고 좋게 보자면 우리 고유의 심원한 문화이기도 한 이 하위문화는 이제 멸종위기종이 되어 버렸다. 몇 날 며칠 공을 들여 제사음식을 준비한다든지, 사랑어른을 찾아온 손님들을 각별하게 접대하고 내방에 모인 여인들이 음식을 해먹으며 수틀을 잡고 있는 모습은 현실성이 떨어진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민속사박물관에 박제된 전통 문화로 자리매김될 처지이다. 그런 문화를 살려내 마치 눈 앞에서 벌어지는 모습인듯 생생하게 그려낸다. 축첩이 가능했던 가부장 문화의 이면도 보여주어 안타깝게 만든다. 아들을 얻기 위해서였는지 작은댁을 얻어, 엄마를 아프게 했던 아빠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묻어 있는 글은 슬픔에 동참하게끔 이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글쓰기의 전범으로 읽었다. 처음엔 경탄하며, 나중엔 닮고자 표상으로 삼으며 읽다가 그예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지경은 내가 넘볼 수 없는 까마득한 마루였던 것이다. 그래서 말미에 덧붙인 김성희 칼럼리스트의 시새움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아득하고 심원한 글 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먹는 일이 이렇게나 장엄한 일인 줄을 이 책 이전에는 몰랐다. 제목에 끌려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인데, 내가 예상했던 가벼운 느낌의 글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어떤 음식도 함부로 먹어 치워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을 말해 주는 증거가 된다고도 하는데, 이 작가의 경우 먹는 일은 고고하고 장엄한 역사를 짓는 일인 것만 같다. 안동의 양반댁 며느리로 시어른을 모시면서 일 년에 열세 번의 제사상을 차려야 했던 작가의 어머니가 보여 주신 음식의 세계. 작가는 그 숭고한 음식의 맛을 그만큼이나 숭고한 글로 써서 보여 준다.
읽기에 힘겨웠다. 나는 이 책을 보는 내내 음식맛보다 글맛보다 고단했을 양반 며느리의 생으로만 자꾸 마음이 갔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렇게도 살았었지, 남의 생이자 지나가버린 생이지만 이제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을 지경으로.
작가의 단정하고 품격 있는 문체마저 나는 속상하게 읽혔다. 이럴 수 있도록 헌신했을 작가의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도 애틋하게 그려져서. 음식에 관한 글이니 음식에 초점을 맞춰 읽으면 좋으련만 그 하나하나의 음식을 만들겠다고 바친 정성과 수고로움이 도무지 반갑지가 않은 것이었다. 누구를 위한 정성, 누구를 위한 수고로움, 누구를 위한 삶이었을까, 한탄만 생기고.
물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품격 있는 음식을 나는 하나도 먹어 본 적이 없다. 먹어 봤다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면, 나도 작가처럼 그 깊은 그리움으로 모든 상황을 받아 안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작가의 글이 더 진하게 나를 울렸을지도.
음식을 대접하는 마음의 근원에 대해 내가 너무도 무지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도 원망하는 마음이 오래 남을 리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