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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의 힘

묘사의 힘

: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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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의 힘 (큰글자도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224g | 135*205*20mm
ISBN13 9791155814024
ISBN10 115581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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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은 아마도 글쓰기를 막 시작한 초보 작가들이 편집자와 글쓰기 교사에게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일 것이다.
---「첫문장」중에서

하지만 수많은 작가들이 이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로 작품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심지어 이미 책을 몇 권 출간한 작가들조차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섬세하고 미묘한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구가 적지 않다.
--- p.7

우리가 왜 소설을 읽는지 생각해보자. 논픽션을 읽는 독자와 달리 소설을 읽는 독자는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읽지 않는다. 소설 독자들은 재미를 느끼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세상으로 도피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 p.19

‘말하기’로는 독자의 마음에 어떤 심상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말하기’는 독자를 위해 정보를 통역해주는 일로, 독자가 스스로 이야기 속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그 세계를 발견할 기회를 박탈한다.
--- p.20

부사를 사용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능한 한 부사를 빼버리자. 어떤 문장은 부사가 없어도 괜찮다. 부사를 뺐는데 어색하다면 문장을 다시 쓰는 편이 좋다.
--- p.28

하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하라. 가끔은 인물이 발을 구르거나 거닐거나 어슬렁거리면서 시선을 끄는 대신 그저 방을 가로질러야 할 때가 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행동에는 힘이 약한 동사를 써도 괜찮다. 하지만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쌓아올리고 싶은 장면에서는 힘이 강한 동사를 이용하여 인물이 걸을 때 어떤 느낌인지 보여주라.
--- p.39

가장 뛰어난 은유와 직유는 언제나 인물의 배경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베티의 손바닥이 마치 사포같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면 분명히 사포를 만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 p.41

독자에게 어떤 인물이 심술궂고 못된 여자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독자가 그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반면 여자가 강아지를 걷어차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독자는 바로 그 순간 못된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 p.44

검은색의 짧고 몸에 딱 달라붙은 치마에 여자의 길고 날씬한 다리가 드러났다.

나라면 여기에서 형용사 몇 개를 아예 뺄 것이다. 이를테면 ‘짧고’라는 형용사는 불필요하다. 여자의 다리가 드러나 있다면 독자는 치마가 짧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81

여러분이 자주 사용하는 감정 언어 목록을 작성하라. 모든 원고를 퇴고할 때 이 목록을 참고하고 문서 프로그램의 검색 기능을 활용하여 이 목록에 실린 감정 표현을 찾는다. 각 표현의 명사, 형용사, 부사 활용형을 모두 찾아야만 한다. 예를 들어 ‘격분’, ‘격분한’, ‘격분하여’. ‘격분하여’.
--- p.85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충고를 극단적으로 따른 나머지 사소한 세부 사항들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까지 전부 다 ‘보여주려’ 한다면 여러분의 이야기는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 p.111

어쩌면 작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조언은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가 아니라 ‘보여주고 말해주라’일 것이다. 뛰어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며 작가들은 자신의 집필 도구함에 ‘보여주기’ 기술과 ‘말하기’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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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란, 필연적으로 작품 뒤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닌 사람이다. 그 운명을 거부하고 작품 앞으로 나서는 순간, 소설은 소설가의 부록처럼 그 빛을 잃고 하나의 입장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소설가의 문장은 ‘말하기’보단 ‘보여주기’로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문장을 대하는 소설가의 윤리다. 이 작은 책은 마치 소설 쓰기의 은밀한 기술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역시나 소설 쓰기의 태도다.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쓰기가 아닌, 독자와 함께 경험하고 감각하는 글쓰기, 주장을 밀고 나가는 글쓰기가 아닌,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는 글쓰기. 그래서 쓰는 자와 읽는 자 모두 감응할 수 있는 글쓰기의 맨투맨 프로그램. 이제 우리는 이 책을 옆에 두고 미뤄두었던 소설 쓰기를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두려운 건 없다. 다 쏟아낸 뒤 고치면 된다.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가르침이다.
-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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