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3월 26일 |
---|---|
쪽수, 무게, 크기 | 208쪽 | 278g | 127*188*20mm |
ISBN13 | 9791189166793 |
ISBN10 | 1189166798 |
발행일 | 2019년 03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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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08쪽 | 278g | 127*188*20mm |
ISBN13 | 9791189166793 |
ISBN10 | 1189166798 |
일러두기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시 한 잔을 마십니다 PART 1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첫사랑 · 고재종 꽃을 위한 서시(序詩) ·김춘수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 도종환 언제 오셔요 · 김억 입술 · 이성복 치자꽃 설화 · 박규리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밤 · 윤동주 별 하나 · 김형영 술 노래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Drinking Song 사랑법 · 강은교 임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 설야(雪夜) · 김광균 PART 2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하물며’라는 말 · 김승희 푸른 하늘을 · 김수영 아이들에 대하여 · 칼릴 지브란 나무 · 이성선 순수의 전조 · 윌리엄 블레이크 Auguries of Innocence 숲 · 강은교 한 숟가락 흙 속에 · 정현종 수라(修羅) · 백석 밭 한 뙤기 · 권정생 낙화 · 조지훈 깊은 물 · 도종환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 글로리아 밴더빌트 그집 앞 · 기형도 봄 저녁 · 장석남 장날 · 노천명 PART 3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그리움 · 나태주 노래(사랑하는 이여, 내가 죽거든) · 크리스티나 G. 로세티 Song(When I am dead, my dearest) 낙화, 첫사랑 · 김선우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 장석남 꽃이 하고픈 말 · 하인리히 하이네 젖지 않는 마음 ― 편지 3 · 나희덕 다리 위에서 · 이용악 무서운 시간 · 윤동주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 윌리엄 워즈워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강가에서 · 고정희 가을 편지 · 이성선 귀뚜라미 소리 · 방정환 아들에게 · 문정희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첫눈 오는 날 · 곽재구 PART 4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미안하다 · 정호승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쓸쓸한 날의 연가 · 고정희 초원의 빛 · 윌리엄 워즈워스 Splendor in the Grass 길 · 김기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싸늘한 이마 · 박용철 달팽이 · 권태응 우리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않으리 · 조지 고든 바이런 So We’l Go No More A-Roving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통곡 · 이상화 땅 · 안도현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꿈과 상처 · 김승희 PART 5 기다리지 않아도 너는 온다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잊으시구려 · 사라 티즈데일 이름 없는 여인 되어 · 노천명 첫사랑 그 사람은 · 박재삼 봄은 간다 · 김억 선우사(膳友辭) ― 함주시초 4 · 백석 씨앗 · 허영자 아름답게 나이 들게 하소서 · 칼 윌슨 베이커 Let Me Grow Lovely 임의 노래 · 김소월 사랑 · 김수영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감각 · 아르튀르 랭보 봄 · 이성부 해당화 · 한용운 시인 이름으로 찾아보기 (가나다순) 이 책에 실린 시의 출처 |
[ 나무 ]
- 이성선
나무는 몰랐다
자신이 나무인 줄을
더구나 자기가
하늘의 우주의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그러나 늦은 가을날
잎이 다 떨어지고
알몸으로 남은 어느 날
그는 보았다
고인 빗물에 비치는
제 모습을
떨고 있는 사람 하나
가지가 모두 현이 되어
온종일 그렇게 조용히
하늘 아래
울고 있는 자신을
[ 젖지 않는 마음 ]
- 나희덕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 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 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로 모르고 비에 젖어습니다
젖지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잠든 사이..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빗소리가 좋아서
커피 한잔이 더 좋았지요..
빗소리를 한달만에 들어서
좋았지만..
이 비덕에 와일드카드 1차전은
취소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 그집 앞 ]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네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너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 기형도
눈오는 날.. 막걸리 한잔..
늘.. 맑고, 밝아보였던 그녀는 왜 세상을 떠났을까요..
그곳에선 아프지 말아요..아픔잊고 웃어요..
[ 낙화 ]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오니
꽃이 피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조지훈
[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외로운 여름과 거짓 꽃이 시들고도 기다긴 세월이 흐를 때 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 얼어붙은 물속으로 파고드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 조용히 내려앉는 눈과 같이 조용히 천천히 땅속에 뿌리박는 풀처럼 사랑은 더디고 조용한 것 내리다가 흩날리는 눈처럼 |
사랑은 살며시 뿌리로 스며드는 것
씨앗이 싹트듯달이
커지듯 천천히
- 글로리아 밴더빌트
[ 첫눈 오는 날 ]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켜 들고
허공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 곽재구
[ 정거장에서의 충고 ]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뻑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무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기형도
[ 가을편지 ]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어가고 있습니다
그 빈 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 이성선
[ 귀뚜라미 소리 ]
귀뚜라미 귀뚜르르 가느단 소리
달님도 추워서 파랗습니다
울 밑에 과꽃이 네 밤만 자면
눈 오는 겨울이 찾아온다고
귀뚜라미 귀뚜르르 가느단 소리
달밤에 오동잎 떨어집니다
- 방정환
[ 이름 없는 여인 되어 ]
어느 조그마한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게소
- 노천명
[씨앗]
가을에는
씨앗만 남는다
달콤하고 물 많은
살은 탐식하는 입속에 녹고
단단한 씨앗만 남는다
화사한
거짓 웃음
거짓말
거짓 사랑은 썩고
가을에는 까맣게 익은 고독한 혼의
씨앗만 남는다
- 허영자
[아름답게 나이 들게 하소서]
아름답게 나이 들게 하소서.
수많은 멋진 것들이 그러하듯이.
레이스와 상아와 황금, 그리고 비단도
꼭 새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나무에 치유력이 있고
오래된 거리에 영화가 깃들듯
저도 나이 들수록
더욱 아름다워지게 하소서.
- 칼 윌슨 베이커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 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를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정호승
우리.. 매일, 시한잔 해요..
... 소/라/향/기 ...
책에 들어가면서
멋진 시 모음집을 한 권 읽고 있다.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평소에 좋아했던 작품들이 많이 들어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우리들의 마음에 회자되었던 작품들이다. 물론 편찬자가 선택해 준 작품들이고, 그것밖에 읽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있다. 하지만 선별한 사람들의 의식이 들어가 있는 작품들이고, 그들의 얼굴이기에 그것을 자의로 무엇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엮은 사람들의 의식을, 정서를, 의도를 찾아가면서 공유해 보고, 그 마음에 녹아들어 보는 일뿐이다.
많은 작품들이 있다. 이것을 <한 잔, 오늘 시를 골라보세요> <한 잔, 오늘 시를 읽어 보세요> <한 잔, 오늘 시를 따라 써보세요> <한 잔, 오늘 시를 마셔보세요>라고 유혹하고 있다. 감각적인 언어들이 우리들의 가슴으로 날라 온다.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래도 수용하며 공유하면 된다. 언어들이 무척 흥겹다. 언어들이 무척 따뜻하다. 언어들이 무척 아름답다. 언어들이 가슴에 스민다. 새벽 마당에 섰을 때 서쪽으로 흘러가던 달이 되돌아보고 웃음 짓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시편들을 읽어본다. 무척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언어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작품 읽기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여/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언,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을로 차디찬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설야(雪夜)-김광균>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밤, 불빛 속에서 화자는 뜰에 나가고 눈은 내려서 소복소복 쌓인다. 어느 누군가 소식을 전하듯이 내리는 깨끗한 눈, 화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차디찬 의상이 되고 화자의 슬픔이 아스라이 전해지는 한 장면이 된다. 이미지의 표현이 멋지다. 언어로 그린 한 폭의 그림이다. 시인이 모더니즘 계열의 회화적인 시를 쓴 사람이고, 이 시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멋진 언어의 조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물며라는 말이여, 참으로 아름답도다./ 그 말에는/ 슬픔 가득한 눈동자가 들어 있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다시 한 번 돌아다보는 사랑이 들어 있다./ 비천한 것들에 대한 굉장한 비탄이 들어 있다// 사랑하지 않는 마음에는/ 하물며가 없다./ 마음이 마음이 아닐 때 들려오는 말이여,/ 하물며라는 증오를 거부하는 말이여,/ 아무것도 아닌 네가 아무것도 아닌 나를/ 한 번 더 은은히 돌아보는 눈길 같은 말이여/ 한없는 바닥에서 굉장히 쟁쟁한 말이여
<‘하물며’라는 말-김승희>
<하물며>라는 말은 “그도 그러한데 더욱이. 앞의 사실이 그러하다면 뒤의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는 뜻의 접속 부사”다. 이 단어를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슬픔과 사랑으로 치환해 표현하고 있고, 비탄이 들어 있다. 증오를 거부하는 말이고 따뜻한 눈길이 머무는 말이다. 이 말이 품고 있는 어떤 사실에 대한 다함없는 마음이 진하게 들어있는 언어의 숨길을 느낄 수 있게 표현하고 있다. 정말 우리말 부사의 적절한 묘미를 일깨워 있고 있는 멋진 글이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푸른 하늘을-김수영>
선각자들의 길은 늘 외롭다. 미지의 길을 홀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길을 이끌어 가는 자들은 그러므로 아프다. 앞장서 길을 가다보면 가시밭길도 가야하고 돌길도 가야한다. 황무지도 가야하고 사막도 건너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장애물도 많이 만나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피도 흘려야 한다. 피의 냄새가 나는 자유에의 길, 노고지리도 그런 것을 보기 때문에 외롭고 힘든 상황을 울고 있는 것이리라. <혁명>, 생명과 피와 긴장의 시간을 함께하는 그런 길이리라. 시인의 자유를 향한 고독한 노래가, 강한 의지가 보여 지는 글이다.
나무는 몰랐다
자신이 나무인 줄을
더구나 자기가
하늘의 우주의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그러다 늦은 가을날
잎이 다 떨어지고
알몸으로 남은 어느 날
그는 보았다
고인 빗물에 비치는
제 모습을
떨고 있는 사람 하나
온종일 그렇게 조용히
하늘 아래
울고 있는 자신을
<나무-이성선>
나무의 속성을 그려나간다. 나무를 통해서 나무와 같은 존재를 그려나간다. 그는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자신은 모른다. 자신이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하지만 어느 날 자신에 대해 자각을 하고 순수하고 여린 자신을 인식하면서 모든 것들을 수용한다. 자신의 진면목을 바라보면서 인지의 지평을 넓힌다. 그것은 헐벗은 가운데 겨울을 견디는 자신의 모습이다.
글은 5 Part로 이루어진다. 각 Part에 15-16편의 작품을 실어 놓았다. 도합 78편의 명품 시들이 실려 있다. 하나하나가 보석 같은 글들이다. 그 울림은 상당하다. 손에 넣은, 마음에 담은, 그림을 그린, 향기를 품은 언어들이 내 의식을 이끌어 간다. 황홀경에 젖어 있는 시간들이 많다. 언어들의 향연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마음까지 지닌다. 영롱한 언어들의 실체에 마음을 빼앗기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 시간은 수영장에서 물속에 들어가 머물고 있는 시간과 진배없다. 나에겐 고마운 시간이고, 보람의 시간이고, 여유의 시간이다. 감사의 노래를 깊은 마음속에 품는다. |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젖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젖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젖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젖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숲-강은교>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공간이다. 혼자서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그것은 미약함이다. 서로 어울릴 때 힘이 된다.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다. 촛불도 함께했을 때 의미가 있었다. 커다란 불꽃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숲을 보라, 나무들을 보라, 어디 바람에 혼자 견디더냐.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리믈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아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수라-백석>
가족들의 참람한 상황을 거미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일제시대 유리걸식을 했던 우리 민족의 아픈 상황을 생각해도 될 듯하다. 유랑민이 되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을 거미들을 통해서 보고, 그들을 보듬는 아름다운 마음을, 따뜻한 마음을 일깨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음에 따뜻하게 일어오는 화자의 행위를 함께해 본다.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외로운 여름과/ 거짓 꽃이 시들고도/ 기나긴 세월이 흐를 때/ 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 얼어붙은 물속으로 파고드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조용히 내려앉은 눈과 같이/ 조용히 천천히/ 땅속에 뿌리박는/ 풀처럼 사랑은/ 더디고 조용한 것/ 내리다가 흩날리는 눈처럼/ 사랑은 살며시 뿌리로 스며드는 것/ 씨앗이 싹트듯/ 달이 커지듯 천천히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글로리아 밴더빌트>
이 글의 포인트는 <천천히> <조용히>다. 그렇게 과격하지 않고 그렇게 요란스럽지 않고 그렇게 부대끼지 않고 스며들 듯이 사랑은 움직인다. 사랑이 열정적이라고 하는 누군가의 이미지를 완전히 소멸하게 만드는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 글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용어들은 모두가 잔잔하고 따스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들이다. <물속> <별> <눈> <풀> <뿌리> <달> 등의 이미지가 그들이다. 잔잔하게, 차분하게, 아늑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랑이라는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주로 열거의 표현 방법을 사용해 번역된 율문이다. 리듬감이 열거에 의해서 드러난다. 원본이 어떤지 몰라 리듬을 잘 살필 수는 없지만 번역된 글을 보면 대충 열거가 리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사랑의 <끈기> <은근>을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는 글이다.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차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장날-노천명>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장날을 소재로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잘 표현하고 있고, 간절함이란 정서가 멋지게 나타나고 있다. 기다림의 정서를 삽살개를 통해서 그려주고 있고, 장터에 오가는 집안 풍경이 그리움이 되어 나타난다. 장터에서 돌아오는 그림 같은 시골풍경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사슴의 시인 노천명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시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뛰노나니,
나 어려서 그리하였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도 그리할지어다.
아니면 이제라도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소원하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자연에 대한 숭배로 이루어질진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월리엄 워즈워스>
무지개를 보면서 삶의 성찰하고 있는 시다. 아이가 어른들의 지혜로 표현 되고 있는 것은 순수 때문이리라. 자연을 보면서 가슴 뛰는 것은 순수의 다른 이름이다. 자연에 모든 것을 의탁하듯이 무지개를 보면서 황홀해 하는 화자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그것은 경탄이다. 그것은 생명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 경탄이다. 이 시는 자연이 주는 신비와 지혜에 대한 놀라움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이 무지개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이 시는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시다.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땅-안도현>
맑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그대로 누리겠다는 겸허한 삶의 자세가 잘 드러난다. 땅이 있다면 나팔꽃을 심겠다. 그 나팔꽃이 주는 혜택을 누리겠다. 맑고 깨끗한 심성만이 누릴 수 있는 경관이다. 나팔꽃이 종일 들려주는 소리를 <보랏빛 나팔소리>로 표현한다. 얼마나 감각적이고 매력적이랴. 그리고 땅을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겠다. 땅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만 물려주겠다는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인가를 일깨운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자식에게 유산으로 주겠다는 말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도 연결될 수 있으리라.
책에서 나오면서
날개가 달린 언어의 흐름에 숱한 시간 마음을 주고 있다. 잘도 모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한 편씩 음미해 보는 글들은 영혼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진한 감사의 마음이 되는 것은 그만큼 풍족한 마음이 되었다는 뜻이리라. 날마다 아침의 문을 열면서 만난 언어들의 조각이 낱낱이 고운 꽃씨가 되어 내 삶의 길 앞에 있다. 이제는 그 꽃들을 심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오늘도 꽃씨를 잘 갈무리하면서 척박한 땅이라도 씨앗을 뿌려본다. 다시 꽃 피는 그날들을 그려본다.
봄, 보다. 만나다. 푸릇푸릇하다. 어여쁘다. 설레다... ... .
'봄'이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다채로운 단어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히 '시'가, 그런 '시'를 좋아했던 그 사람이 떠오른다. 그랬다. 또 한동안 '시'를 만나지 못했다. 만났어도 마음으로 안아 읽어주지 못했다. '시'는 어떤 마음으로 읽느냐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듯 하다. 두근두근대는 설레임도, 반짝거리는 순간보다도 내내 전하지 못한 마음이 더 크게 느껴져 훅- 안겨온다.
너는 내게 그런 존재인가보다.
좋으면 좋다. 이상하면 이상하다. 싫으면 싫다. 따스하면 따스하다. 슬프면 슬프다. 행복하면 행복하다.
누가 어떻게 너를 썼는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무엇을 담고 있는지 보다도 그냥 느끼고 느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존재. 그런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두고 싶게 만든다. 이 '시'도 그랬다.
그리움 -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쉽고 간결해보이는 짧은 말들에 참으로 많은 걸 담고 있다. 묘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설레이게 하는 느낌, 느낌들. 이름은 많이 들어보고 궁금했지만 만나보지 못한 이 시인의 시가 문득 읽어보고 싶어졌다. 어렵지 않아 쉽게 다가오면서 마음까지 툭-하고 건드리는, 애틋한 그리움을 간직한 '시'를 말이다.
***
햇살 좋은 날, 강가를 걸으면 강물에 반짝이는 햇빛과 분홍분홍한 꽃들, 점점 푸릇푸릇해지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고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나는 '시 한 잔'을 매일 마시고 또 끄적여보면 넘 좋을 것 같다.
글을 끄적이다 보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 부산스럽고 소란했던 마음이 차츰 가라앉으며 아주 조금씩 편안해진다. 글은 이처럼 묘한 매력을 가졌지만 감정을 풀어놓다보면 마음이 다시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기 마련인데 그럴 때 끄적이면 참 좋을 것 같은 '시'다.
짧다면 짧은 그 글 속에 참으로 많은 게 담겼다. 상상하기에 따라 다르게도 보여지고 때론 깊이까지 느껴진다. 한 잔 또 한 잔 마시다보면 시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만 같다. 다시 돌아온 따스한 봄날, 향긋한 차와 닮은 '시'를 매일 한 잔 마신다면 마음까지 잔잔해지지 않을까?
봄... 너는...
어여쁜 꽃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따스한 햇살과 기분좋은 설렘을 가져다주곤 해.
다시 돌아온 봄, 너는...
너만이 가진 '시'를 떠올리고 끄적이게 해.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매일, 한 잔하려 해. 너와 함께.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