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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368g | 120*188*30mm
ISBN13 9788931011456
ISBN10 893101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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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이 고동 밑에 따스한 붉은 피가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이것이 바로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 흐르는 생명에 손바닥을 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바닥에 전해오는 시곗바늘 같은 울림은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경종(警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경종을 듣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피를 담은 자루가 시간을 담은 자루를 겸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는 마음껏 삶을 즐길 수 있으리라. 하지만…….’ --- p.8

히라오카와 가까이 지내던 때의 다이스케는 남을 위해 기꺼이 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점차 울 수 없게 되었다. 울지 않는 편이 더 현대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울지 않으니까 현대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서양 문명의 압박을 받으며 그 무거운 짐 아래에서 신음하는 극렬한 생존경쟁 속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진정으로 남을 위해 능히 울 수 있는 사람을 다이스케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 p.147

미치요가 들고 온 백합꽃이 여전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달콤하고 짙은 향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감돌았다. 다이스케는 코앞의 짙은 자극을 견딜 수 없었다. --- p.176

인간의 목적은 태어난 본인이 본인 자신에게 만든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본인이라도 이것을 마음 내키는 대로 쉽사리 만들 수는 없다. 이미 세상에 발표된 자기 존재의 경험 그 자체가 바로 자기 존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 의의에서 출발한 다이스케는, 자기 본래의 활동을 자기 본래의 목적으로 하였다. 걷고 싶기 때문에 걸었다. 그러면 걷는 것이 목적이 되었다. 생각하고 싶기 때문에 생각했다. 그러면 생각하는 것이 목적이 되었다. 그 이외의 목적으로 걷거나 생각하는 것은 보행과 사고의 타락이 되는 것처럼 자기 활동 이외에 어떤 목적을 세우고 활동하는 것은 활동의 타락이 되었다. 따라서 자기 전체의 활동을 수단으로 삼는 것은 스스로 자기 존재의 목적을 파괴한 것과 다름없었다. --- p.185~186

만약 한 인간에게 감자가 다이아몬드보다 소중해진다면 그 인간은 끝장이라고 다이스케는 예전부터 생각했다. 앞으로 부친의 분노로 인해 만일 금전상의 관계가 끊어진다면 그는 싫어도 다이아몬드를 내던지고 감자를 먹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자연의 사랑이 남을 뿐이다. 그 사랑의 대상은 남의 아내였다. --- p.237

그는 속으로 ‘오늘 비로소 자연의 옛날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최근 몇 년간 없었던 위안을 온몸으로 느꼈다. 왜 더 빨리 돌아가지 못했던가 생각했다. 처음부터 왜 자연에 저항했던가 생각했다. 그는 빗속의 백합꽃으로 재현된 과거 속에서 순수하고 평화로운 생명을 발견했다. 그 생명의 속과 바깥에는 욕심이나 이해타산은 없었다. 자기를 압박하는 도덕은 없었다. 구름 같은 자유와 물 같은 자연이 있었다. 모든 것이 축복이었고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 p.284

담뱃가게의 포렴이 붉었다. 광고 깃발도 붉었다. 전봇대가 붉었다. 붉은 페인트의 간판이 계속 이어졌다. 마침내 온 세상이 새빨개졌다. 그리고 다이스케의 머리를 중심으로 화염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빙빙 회전했다. 다이스케는 자신의 머리가 모두 타서 없어질 때까지 전차를 타고 가자고 결심했다.
--- p.358~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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