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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528g | 142*210*30mm
ISBN13 9791188941230
ISBN10 118894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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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우리 존재만으로도 우리가 들어서는 현장을 망치고 우리의 인상을 망친다는 사실을 인구조사원들은 주의 깊게, 심지어는 점잖게 묵살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는 기본적 일처리에 손도 대지 못할 것이다. 인구조사는 미지로 떠나는 원정과 비슷하다. 누구는 ‘달랑 호롱불 하나 들고 폭풍 속으로 걸어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호롱불을 들고 폭풍 속으로 걸어가다­나도 여러 번 이 말을 입 안으로 중얼거려보았지만, 영웅적이기보다는 희극적인 어감으로 들린다. 인구조사원에게는 특유의 무력함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아주 분명히 정해져 있는 탓이다. 바로 이런 요소 때문에 아무도 달가워하지 않는 이 끔찍한 작업에 이끌리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일처럼 보여도 실제로 이런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하물며 한 명의 인구조사원이 하는 일이란 엄청나게 커다란 사업에서 무한히 작은 한 부분이 아닌가. 지금은 세상에 없는 나의 아내가 낡은 코트를 입고 가가호호 방문하는 내 모습을 보면 웃으며 놀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폭풍 속 작은 호롱불의 온기를 생생히 느낀다.
무엇보다 이 일을 맡을 준비를 도와준 건 아들이었다. 아들은 말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통해 내게 한 가지를 보여주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를 가지고 타고나서 매 순간 서로를 잰다는 사실을. 그 애는 태어나자마자 이런 식으로 인구조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내 아들의 인구조사가 우리의 작업을, 우리의 여행을 북쪽으로 이끌었다.
--- p.18~19

항상 어려웠다. 아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는 일은. 나도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를 정말 좋아하고 아들도, 아내도 여행을 정말 좋아했는데도 여행이 힘들었던 건 사람들이 아들을 대하는 태도 탓이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간단한 일마저 턱없이 힘든 일이 되기 일쑤였다. 우리는 가게에 도착해 줄을 서서 모든 일이 제대로 되어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김없이, 줄을 선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제대로 통솔되지 않는 아이들이 못살게 굴기도 한다. 아니면 물끄러미 아들을 쳐다보던 사람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야비한 질문을 던진다. 여전히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가 즐길 만한 상황은 이미 끝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우리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집 안에 들어가면 털썩 주저앉는다. 그럴 때 아들은 나와 아내만 그 감각에 파묻힌 채로 남겨두고 혼자 행복하게 뭔가를 하러 다른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나와 아내만 남아서 우리 인간 특유의 감정인 소외감이, 너무나도 완만하게, 또 넉넉하게, 그리고 또 철저하게 가슴을 적시는 그 속에 파묻히게 된다.
--- p.67

밀턴에 대해서는 한 가지 가설이 있다. 밀턴이 사탄을 가마우지 모양으로 만든 것은 신비로운 물새인 가마우지가 나는 데에는 전혀 재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마우지의 날개는 날기에는 너무 짧다. 가마우지가 아예 날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반박도 있다. 사실은, 가마우지도 날 수 있지만 날려면 피곤하게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유는 이렇다. 가마우지는 헤엄을 잘 쳐야만 하는데 창공을 위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날개는 헤엄치는 데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밀턴이 일종의 경계 조치로, 혹은 색채를 구분하려고 사탄이 하늘에서 조금 어색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은 일리가 있지만, 여전히 우리가 아는 악마의 우화와는 동떨어져 보인다. 이를테면 마녀는 미약한 박동만으로도 공기를 가르고 날아가지 않던가? 사탄은 원래 천사가 아니었던가?
--- p.132

아들이 떠났다. 기차는 가고 기차와 함께 아들도 가고 없다.
선한 죽음이 찾아오기까지 채 몇 분이 남지 않았다. 눈에서 뭔가 변화가 느껴진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낯선 변화다. 자진해서 죽음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남이 대신해주게 만들면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아직은 그리로 내려가고 싶지 않다, 아직은. 수많은 몸, 수많은 시신, 늙고 아픈 몸뚱어리들, 방금 죽은 몸, 오래전에 죽은 몸들을 굽어보던 나인데, 막상 이 몸뚱어리 속에 든 나는 사망동의서를 쓰는 게 혼란스럽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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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볼은 의문점들을 영민하게 눈으로 탐색한다. 철학자의 논리는 완벽한 타이밍으로 정곡을 찌르며 새로운 관점들을 드러낸다.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심오하게 윤리적인 작가, 훌륭한 비극의 감각. 그의 세계관은 다정한 허무주의라고 묘사할 수 있다. 제시 볼의 소설들은 변칙성과 기괴한 미스터리, 무분별하게 자행되는 폭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인간의 고통을 막아주는 최고의 울타리로서 측은지심을 찬미한다.
- 애틀랜틱
이야기꾼으로서, 또 산문작가로서 제시 볼의 재능은 구조의 경계를 혁파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언어는 순결한 서정성과 차분한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 뉴요커
제시 볼은 우리 시대에 가장 설득력 있고 대담한 작가다.
-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범상과 음침한 엽기성의 대조와 병치는 이제 제시 볼의 전문 분야가 된 듯하다. 그의 저서들은 출중한 기교로 순응 기반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사투를 벌이는 개인에 대해 사색한다.
- 시카고 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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