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 선교사가 한국에 대해서 큰 유산으로 남긴 것은, ‘제중원’으로 시작되어 오늘날 ‘세브란스병원’으로 존재하는 병원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뉴욕공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알렌문서(The Horace Newton Allen Manuscript Collection)’로 일컬어지는 기록물이다. 이 기록물 중에서 『알렌의 일기』는 김원모 교수를 통해서 완역되었다. 근래 건양대학교 충남지역문화연구소 김현숙 교수는 뉴욕공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알렌의 문서를 전량 수집해 일반 대중과 연구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정리, 해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자료들이 완역되면 구한말 시대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아울러 호러스 N. 알렌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 세기를 지나, 또다시 한반도를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는 오늘의 시대 상황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 특히 우리 기독인들에게 알렌 박사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실까? 오늘도 그의 흉상(胸像)이 세브란스병원 한편에서 우리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 pp.36-37
헤론 선교사의 순직은 당시 조선에 들어왔던 모든 선교사들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 주었다. 특히 34세, 선교사로서 가장 아름답고 꽃다운 나이에, 아직도 주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는 그때에, 그렇게 홀연히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을까? 하는 물음들 말이다.
한편 닥터 헤론과 알렌, 언더우드, 엘러스 그리고 선교본부 총무 엘린우드 박사의 편지들을 볼 때, 헤론의 성격이 좀 까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융통성 있게 지낼 수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알렌이 병원장으로서 제중원을 운영하는 방식이나, 선교부를 운영방식에 대해서 불편해 했고, 엘러스의 의사자격 결격사유(헤론은 이를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 같다)에 대해서 거론 하는 등등. 왜 까다롭게 따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융통성 없고, 시샘이 많은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헤론에 대한 마펫 목사의 글을 읽으면서,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그렇게 까칠할 정도로 원리 원칙을 주장한 것은, 이제 막 시작되는 선교 초기에,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준을 분명히 세워 놓아야 실수나 실패하지 않을 것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가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헌신되기를 원하는 눈으로 볼 때, 초기에 온전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몸부림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그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에 인생을 걸고, 주님 말씀 따라 살기를 원했던 존 W. 헤론 선교사! 미국 의과대학 교수직을 물리치고, 주님의 부르심에 뜨겁게 반응했던 사람! 한국을 사랑하여,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한국에 살기를 자청한 사람! 그가 죽음으로 생겨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이제는 수많은 동료 선교사들과 가족들이 함께 누워 있어 이 나라의 선교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 pp.61-62
마펫 선교사 가문의 역사들을 살펴보면서, 이분들의 고마움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그분들을 그분들 되게 하신 그 주님이 나의 주님이기도 하시다’는 감격이었다. 아울러 우리 한국기독교계에도 마펫 목사 가문과 같은 가문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바로 ‘박용묵 목사의 가문’4이다. 박용묵 목사의 ‘10만 명 전도의 꿈’은 전국 방방곡곡을 향한 전도부흥의 발길이었다. 이 가문을 통하여 오늘도 우리는 또 다른 마포삼열과 마삼락과 마포화열, 그리고 엘리스 마펫과 루시아 마펫, 아일린 마펫과 그 후손들을 여전히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문들의 축복이 나의 가정과 가문에도, 그리고 묵묵히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의 가정과 가문에도 가득하기를 기대해 본다.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그 동력은 우리에게 특명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심에 있다. --- pp.153-154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포기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한 여인, 한국의 여성들과 어린이와 장애인을 가슴에 품고 사랑한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 그 한국을 사랑한 여인을 찾아 이 땅에 들어와서 사랑을 이루고, 자신의 몸보다 한국인들을 더욱 사랑하며 치유하다 산화한 의사 윌리엄 제임스 홀. 한국 땅에서 태어나 변치 않는 한국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이들을 앗아가는 망국(亡國)의 병인 결핵 퇴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참 한국사람 의사 셔우드 홀. 그리고 신실한 동역자이며,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이 땅의 병든 자들을 섬긴, 탁월한 외과의사 메리안 버텀리 홀. 이분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이 온 누리에 하나 가득 울려 퍼진다.
“I still love Korea(코리아, 그대는 아직도 내 사랑)!”
이분들이야말로 진정 우리 한국인들의 할아버지요, 할머니요, 아버지요 어머니이시다!
100년이 넘은 이분들의 일기와 편지와 보고서를 읽으며, 가슴 설레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가슴 깊이 져며 오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이 무엇’ 때문에,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혼자 남몰래 얼마나 세수를 하고 또 했는지!
“코리아, 그대는 아직도 내 사랑!”
나도 그런가? 너도 그런가? 우리들은 어떠한가? 여전히 내 나라, 내 백성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돌보는가? 주께서 가서 제자 삼으라고 명하신 그 땅과 그 사람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섬기고 있는가?
우리들이 열방으로 가서 예수의 증인으로서 섬겨야 할 ‘그 땅 끝(the ends of the earth)’은 어디인가? 주께로 부름 받은 자들의 ‘땅 끝’은 지금 각자 사명을 담당하고 있는 바로 ‘그 곳’이 ‘그 땅 끝’일 것이다. 그곳이 한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동남아든, 중동이든, 아프리카든, 유럽이든, 그 어디든지!
대를 이어 여전히 ‘이 땅과 이 백성들’을 사랑하고 섬긴 의료선교사 홀 일가(一家)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
--- pp.20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