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는 인간의 개성이 없어진다. 인간은 처리해버려야 할 사소한 문제로 전락하여 보고서의 몇 가지 항목을 기입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했는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일생 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상관 않는다. 말썽을 피우지 않는 한 아무도 그 사람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못살게 구는 사람도 없다. 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이라고는 맞는 감방을 찾아 들어가 얌전히 있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여 사립탐정의 하루가 지나갔다. 정확히 전형적인 날은 아니었지만 아주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한 남자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이유를 아무도 알 수 없다. 부자가 될 수도 없고, 대부분 재미도 별로 없다. 때로는 얻어터지거나 총을 맞거나 감옥에 던져지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죽을 수도 있다. 두 달마다 한 번씩, 이 일을 그만두고 아직 머리가 흔들리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을 때 번듯한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면 문에서 버저가 울리고 대기실로 향하는 안쪽 문을 열면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여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슬픔, 약간의 돈을 안고 들어온다. "들어오세요, 아무개 씨. 뭘 도와드릴까요?" 틀림없이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다.
전화 한 통이면 면허증을 뺏을 수도 있소, 말로. 내 앞에서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은 마시지. 참지 않을 테니까." “전화 두 통이면, 길바닥에 입을 맞춘 꼴로 깨어날 수도 있겠군요. 뒤통수는 날아간 채로 말입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진 않지. 당신 하는 일이 기묘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당신한테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한 것 같군. 집사를 불러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안내해주라고 하지.”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얘기를 들었으니까요.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와줘서 고맙소. 당신은 꽤나 정직한 사내인 것 같군. 영웅 행세는 하지 마시오, 젊은이.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고급 레스토랑 ‘더 댄서스’ 앞에서 우연히 만난 백발 남자 테리 레녹스, 인사불성이 된 사람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말로는 알 수 없는 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어 흉금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어딘지 불길한 예감을 감출 수 없었던 말로. 결국 그의 예감대로 레녹스는 사고를 친다. 어느 날 아침 완전 장전된 권총을 들고 찾아와 억만장자의 딸인 아내가 끔찍하게 살해당했으며 자신은 멕시코로 도주하려고 하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레녹스의 영혼까지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말로는 레녹스의 말을 믿고 그의 도피를 돕는다. 그러나 경찰은 범죄 현장과 도피 과정에서 말로가 이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었음을 확인하고 그를 연행한다. 꼼짝없이 궁지에 몰린 말로는 모욕적인 취조를 받고 감옥에 처박히지만, 갑자기 사건은 종결되고 언론은 입을 다물어버린다. 테리 레녹스가 멕시코에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테리가 멕시코에서 보낸 편지가 도착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