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러드의 동료 작가가 학생의 질문을 받는다. “제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작가는 반문한다. “글쎄요, 문장을 좋아하나요?” 학생은 이러한 반문에 놀란다. 그러나 딜러드는 질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안다. 동료 작가가 학생에게 던진 질문은 “문장을 좋아하는 일이야말로 작가 생활의 출발점”이라는 의미였다. --- p.9
19세기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딱 맞는 단어mot juste’를 모색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찾는 것은 홀로 빛나는 단어가 아니다. 정확하게 자리를 잡아 다른 단어들?역시 제자리를 잡은 다른 단어들?과 결합하여, 잘 깎은 다이아몬드처럼 시공간 속에서 빛나는 단어야말로 플로베르가 모색한 ‘딱 맞는 단어’다. --- p.11
나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에 실린 문장들을 곱씹으면서 내가 느낀 기쁨과 경외감을 함께 느꼈으면 한다.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이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위대한 문장까지는 아니어도 꽤 괜찮은 문장을 지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면 한다. 약속건대, 이 책을 통해 문장이 주는 기쁨과 문장의 기교, 좋은 문장을 음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빚어낼 수 있는 능력을 드리겠다. 문장을 음미하는 능력과 빚어내는 능력은 서로 접점 없이 따로 굴러간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 이들은 나란히 습득되는 능력들이다. --- p.21
모든 기술이 그렇듯 문장을 읽고 쓰는 기술도 서서히 발전한다. 소박하게 세 단어짜리 문장에서 시작해, 필요에 따라 문장 구조를 줄줄 말하는 단계까지 능력을 키운 뒤에, 그다음 단계의 연습을 실행하면 된다. 짧은 문장?잠결에서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간단한 문장 (‘존은 공을 쳤다’ 등의 문장)?을 연습하고 나서, 열다섯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 그다음에는 서른 단어짜리 문장, 또 백 단어짜리 문장으로 확장해가라. --- p.40
문장을 고칠 때 어떤 일을 하는지 떠올려보자. 뭔가를 보태고, 빼고, 시제를 바꾸고, 절과 구를 재배열한다. 변화를 줄 때마다 독자에게 제공하는 ‘현실’도 바뀐다. --- p.62
킹 목사의 문장은 어마어마한 수사학적 성취다. 몇 세대가 면면히 기릴 만한 문장이다. 여러분은 이 문장을 대적할만한 문장까지는 쓰지 못하더라도 이와 비슷한 문장을 쓰는 방법 또한 습득할 수 있다. 사소한 주제라도 좋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에 맞서 굳이 일어나는 상황은 어떨까. 영화 [록키] 를 스무 번째 보느라 밤을 꼴딱 새웠을 때,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이불 속은 따뜻할 때, 낮이라고 해봐야 허드렛일과 멸시밖에 기다리는 게 없을 때, 삶의 이유도 없고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없어 보일 때, 좋아하던 모든 사람이 죽거나 내게 화가 나 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즐거움이라야 간신히 사먹을 수 있는 커피 한잔뿐일 때, 아주 싫어하는 일을 하루 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스칼릿 오하라(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주인공)가 한 말을 떠올린다. “내일은 좀 더 나을 거야 Tomorrow is another day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로 잘 알려진 문장 ?옮긴이.” 진부한 점강법인 데다 딱할 정도로 평범한 문장이지만 형식만큼은 킹의 문장과 동일하다. 이 형식에 숙달하도록 연습한다면 중요한 말을 해야 할 때 이 형식을 ‘자연스럽게’ 차용해 쓸 수 있다. --- p.92
헤밍웨이가 작가들에게 제공한 유명한 조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문장을 짧게 써라. 명료하게 써라. 영어에 어원을 둔 간단한 단어를 써라. 중복을 피해라. 형용사를 피해라(에즈라 파운드에게서 배운 교훈이다). 자신을 빼라. 헤밍웨이는 이러한 조언을 충실히 이행하여 사실적이고 하드보일드한 문체, 장식이라고는 없는 건조한 미니멀리즘 스타일, 보석을 세공하듯 정교한 문장들을 만들어냈다. 미니멀리즘과 정교함은 헤밍웨이의 문체를 설명할 때 특히 적절한 표현이다. 문장을 세심하게 깎아 투명해질 때까지 다듬는다는 뜻이다. 별로 다듬지 않은 듯 보이는 문체, 읽는 데 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어 보이는 문체를 만드는 일은 자기를 지워버리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대상의 아름다움이 스스로 빛을 낼 때까지 층층이 깎아나가는 세공사의 작업과 같다. --- p.124
첫 문장은 그 뒤에 따라올 모든 문장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첫 문장의 각도는 ‘앞으로 기울어’ 있다(내가 만든 표현이다). 앞으로 쏠렸다는 뜻인데, 즉 그것이 예상하는 전개 방향으로 이미 향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펼쳐질 내용을 미리 갖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 문장’은 형식 범주인 동시에 내용 범주다. 첫 문장의 구성 인자들은 다른 문장들처럼 혼자서는 설 수 없다. 가장 간단한 첫 문장도 물샐 틈 없는 짜임새를 갖추었으며, 독자를 다음 문장으로 초대하고 그다음 문장, 또 그다음 문장으로 인도하며 복잡한 문제와 위기를 비롯한 통찰, 때로는 해결책까지 약속해준다. 첫 문장을 쓰는 공식은 존재할 수 없다. 그 문장이 내놓는 약속은 그것이 소개하는 상상의 세계마다 다르고, 상상의 세계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 p.167
마지막 문장은 시동을 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시동을 꺼야 한다. 이 때문에 대개 애수를 띤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독자는 정든 것을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작가의 고별사인 마지막 문장을 인심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 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