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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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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406g | 127*188*25mm
ISBN13 9791188941346
ISBN10 118894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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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외르나르는 평소 퇴근을 할 때면 그렇듯 오늘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행복해 죽을 것처럼.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마침내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은 아무도 파괴시키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문득, 그의 행복한 순간을 매번 파괴시키는 것은 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가 현관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나는 내 동료들이 얼마나 머저리 같은지, 나의 하루가 얼마나 불행했는지, 또는 차에서 잠든 알바를 깨우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다툼을 하는 엡바와 제니를 말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등등의 불만 가득한 소리를 매일 폭포수처럼 쏟아냈던 것이다.
--- p.78~79

나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화면 속에 보이는 글자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finn.no’에도 한번 들어가보았다. 우리가 보았던 집의 사진 옆에는 팔렸다는 표시의 노란색 깃발이 붙어 있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인터넷의 집 사진을 차례차례 넘기다 보니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젠 이 모든 것이 우리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록 매일 죽만 끓여 먹고 벼룩시장에서 중고품만 구입해야 할지라도 멋진 정원과,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과 다락방이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은 바로 우리가 될 테니까.
--- p.113~114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가슴을 졸이며 기다려왔던 일. 지금껏 나의 의식 밖으로 밀쳐놓은 채 억지로 모른 척해왔던 일. 휴면 중에 있던 싱크홀이 활동을 개시할 수 있는 빌미로 작용하는 일.
나는 굴라크에 갇혀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빡빡 깎은 머리. 약물에 이성을 잃고 내 몸에 스스로 새긴 문신들. 내가 약물에 중독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헤로인을 손에 넣기 위해 매춘 행위를 하다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을 거둔 내 모습. 그 이름은 성화-빈테르.
--- p.291

성화. 문득, 그가 원하는 것은 성화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 성화를 첫날 그에게 전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에르미타시 국립미술관에 가기 전에 성화를 건네주며 ‘이것 좀 보세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걸 찾아냈어요’라든가, ‘페터가 학장실에서 뭘 가져왔는지 아세요? 글쎄 이것도 선물인 줄 알고 가져왔다는군요. 정신머리가 없어서……’라는 말로 둘러댔다면 한바탕 크게 웃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모르긴 해도 그들은 이미 어번 보울러 때문에 페터가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큰 의심을 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은 꼬이고 꼬여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내가 성화를 숨기고 모른 척하자며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죽음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 p.304

순간,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총장이 그곳에 올 리는 없었다! 경비원은 잘생긴 푸틴과 마찬가지로 전직 KGB 요원임에 틀림없었고, 이반과 이리나는 이미 그에게 우리의 움직임을 세세히 보고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법학과 학생들을 위한 강의실 겸 실제 법정으로도 사용되는 이 우스꽝스런 곳의 재판장 자리에 앉아 있다. 교회에서 펑크록을 연주했거나 값을 매길 수 없는 진귀한 예술 작품을 훔친 이들은 분명 이곳을 거쳐 감옥으로 갈 것이다.
나는 두 눈을 찔끔 감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곧 나를 덮칠 다차원적 공황 상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았다. 시계의 초침은 쉴 새 없이 앞으로 움직였지만 놀랍게도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다. 이 역시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빛의 요정을 보았던 것처럼 목감기 약의 부작용 중 하나가 아닐까 분석해보기도 전에, 더는 이대로 참을 수 없다는 울분이 강렬하게 치솟았다.
--- p.34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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