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의 학』을 파악하는 데 요구되는 커다란 노력을 사람들이 포기하는 까닭은 그들이 세계관적으로 다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헤겔 철학에 따르면 논리적인 것das Logische은 세계 과정에 선행하고 그 근저에 놓여 있으며 또 그 목표인바, 바로 그 점에 또한 신에 대한 논리의 관계도 놓여 있다. 한편으로 『논리의 학』의 내용은 자연과 유한한 정신의 창조 이전의 신의 본질에 대한 서술이며, 다른 한편으로 신은 세계 과정의 끝에 이르러 스스로를 파악하는 순수한 개념으로서의 논리적 학문에서 자기 자신의 최상의 개념을 발견한다. 헤겔 『논리의 학』의 내용을 신의 본질에 대한 서술로 간주하거나 그 속에서 신이 자기를 파악한다고 가정하는 것은―전적으로―잘못이라는 견해를 가지는 사람이 도대체 무슨 까닭에 『논리의 학』을 철저히 연구하는 특별한 수고를 해야 한단 말인가?
--- 「머리말」 중에서
2019년, 올해는 한국에서의 헤겔 철학 연구나 출판과 관련해 특기할 만한 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의 이성, 국가, 역사』, 『헤겔』, 『다시 헤겔을 읽다』, 『정신 현상학 강독 1』, 『헤겔과 그 적들』, 『자유란 무엇인가―헤겔 법철학과 현대』, 『헤겔의 ‘정신현상학’ 입문』 등의 헤겔 관련 저서와 역서들이 잇따라 출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 현상학』의 경우 권영우, 김준수, 박병기, 이종철, 전대호 제씨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번역 작업들과 출판 준비가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흥분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몇몇 대학의 철학과에서 올해 새롭게 충원된 몇 분의 전공 영역이 헤겔 철학인 것도 아연한 느낌을 줄 정도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고 임석진 선생에 의한 헤겔 원전 번역들로 상징되는 이전의 헤겔 철학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라진 듯이 보였던 상황에서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꾸준하게 축적된 많은 연구자들의 역량이 강단과 출판 영역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펼쳐질 찰나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갑고도 희망에 찬 상황 전개 속에서도 무언가 아쉬움과 조급함이 뒤섞인 마음 불편함이 깃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헤겔 연구자들의 관심과 출판의 모습이 법철학이나 정치 철학 등의 특정한 영역과 『정신 현상학』이나 『법철학』과 같은 특정 텍스트에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만스러운 느낌은 이미 오래 전에 독일에서 새로운 교정판 『헤겔 전집』(Hegel: Gesammelte Werke)의 제1부 ‘저작집’의 출판이 마무리되고, 현재 제2부인 ‘강의록’ 출판도 상당히 진전되어 헤겔 연구의 원전 자료 상황이 완전히 새로워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강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논리학 강의’로부터 시작하여 ‘논리학?형이상학’, ‘자연 철학’, ‘정신 철학’, ‘법철학’, ‘국가학’, ‘역사 철학’, ‘미학’, ‘예술 철학’, ‘종교 철학’, ‘신학’, ‘철학사’ 강의들로 이어지는 『헤겔 전집』 ‘강의록’의 편제는 우리의 연구 관심이 더욱 넓어지고 한층 더 심화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작업이 새로운 방향과 체제를 갖추어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 점은 예를 들어 체계성을 핵심으로 하는 헤겔 철학에서 『논리의 학』이 차지하는 근본적인 의의를 고려할 때 우리의 헤겔 연구와 관심이 모종의 불균형이나 초점의 결여를 보여준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헤겔의 『논리의 학』에 대한 새로운 집중적인 관심과 연구를 요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본래 헤겔은 인류의 정신사 전체를 조망하고, 시간을 넘어서서 역사를 포섭하는 절대자의 철학을 지향한 사상가였다. 『논리의 학』도 좁은 의미의 사유의 법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유한한 정신의 창조에 앞서 그의 영원한 본질 속에 존재하는 신의 서술’,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철학에 상당하는 ‘본래적인 형이상학’으로서 기도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논리의 학』은 자연과 정신의 전 영역을 근거짓고, 또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 도달함으로써 스스로가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펼쳐 보이는 것이다.
---「옮긴이의 후기」중에서